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직장인을 위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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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직장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직장인 소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고, 나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굴곡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남들처럼 고생하더라도 좀 덜 고생하고, 좀 더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당연한 생각이다. 인생을 사는 사람 중 어느 누가 '나는 더 불행해지고 싶어.'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때때로 갖은 고초와 수모를 겪으면서….


 오늘은 굉장히 멋진 소설을 한 권 만났다. 이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살펴보다 우연히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 덕분이다. 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니 당연히 소설도 무척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망설이지 않고 소설을 구매했다. 그 제목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제목을 통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소설의 띠지에는 만화에 '미생', '송곳'이 있다면 소설에는 이 책이 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 한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작품과 견줄 정도라 생각하니 소설이 무척 기대되었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곧바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직 직장에 취직한 경험이 없는 대학생에 불과하지만,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경험과 지금 직장 내에서 작은 마찰을 겪으면서도 직장을 다니는 남동생의 모습을 대입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시작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독백은 이렇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승강장 맨 앞에서 집으로 향하는 전차를 기다렸다.

돌풍에 나부끼는 앞머리가 몹시 거슬린다. 슬슬 자를 때가 됐지만 미용실에 가는 시간이 아깝다.

내 뒤로는 전부 똑같이 어두운색 양복을 입은 회사원 대열. 나이 대는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비디오를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이 늘어간다.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내 담당이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본문 8)


 딱 이 한 장면만으로도 직장인들이 겪을 무수한 그림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남동생 또한 항상 상사가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담당이 아닌 일을 빨리빨리 하라고 외친다고 말한다. 이것은 직장인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 같은 걸까?


 어떤 일을 하면서 웃을 수 없다는 건 굉장히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취업하고자 하는 것은 돈을 적게 벌어도 웃으면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손쉽게 그런 일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직장은 늘 새로운 배움과 경쟁의 시작이니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주인공 아오야마 다카시는 반복되는 비루한 삶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강장에서 눈을 감은 채로 허공에 발을 디디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점점 더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에 갑자기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을 걸었다.


 과거 초등학교 동창 야마모토라며 자기소개를 한 인물이 무척 반갑게 아오야마를 반겼다. 아오야마는 '도대체 누구지?'라며 얼떨떨해 하면서도 그의 손에 이끌려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와 만나 신기한 시간을 보내고,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덕분에 다시 힘을 내게 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야마모토가 사실은 자신의 동창인 야마모토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는 무려 자신보다 세 살 연상의 인물이었는데, 야마모토는 그저 그때가 운명이라고 말하며 얼버무린다. 사실 야마모토가 아오야마를 붙잡은 이유는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보고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는 입가에서 살포시 미소를 지므여 말했다.

"개찰구에서 보고 뒤쫓았어."

"왜?"

야마모토는 슬픈 눈을 한 채 어렴풋이 미소 지엇다.

"걱정됐으니까. ……죽어 버릴 것 같아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야마모토는 눈을 잠깐 감고 작게 숨을 들이쉬더니 후우 하고 토해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선을 들고 나를 상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의 너와 똑같은 표정을 한 녀석을 아니까."

그래서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나는 묻지 못했다.

우리 주위에는 그저 고요한 시간만 흘렀다. (본문 106)


 이 장면을 통해서 야마모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디 어림짐작 추측할 수 있었다. 아오야마는 야아모토 덕분에 더 열심히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또 한 번의 실수가 발생했다는 지적을 부장에게 받으면서 끝없는 나락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적 당한 일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그에게 손을 내민 인물은 야마모토였다.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중요한 장면은 이때부터 그려지기 시작한다. "네 인생은 무엇을 위해 있다고 생각해?"라는 야마모토의 질문에 아오야마는 잊고 지낸 소중한 걸 떠올린다.


 아오야마가 도쿄에 올라오고 나서 좀처럼 연락하지 않은 부모님과 통화하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이었다. 아오야마의 부모님은 아오야마에게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도망쳐도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장면에서 아오야마 어머니가 덧붙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아오야마는 전화를 끊은 이후 어머니가 부탁한 생일 케이크와 덧붙인 말을 되새긴다. 어머니는 일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올 구실을 만들 수 있도록,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도록 해준 것이다.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고, 도망쳐도 받아주는 장소가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야마모토의 정체에 접근한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의 어머니와 만나게 된다. 그 어머니가 아오야마에게 후회의 감정을 담아 한 말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늘 버텨야 한다, 지금 버티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다며 호통만 들은 사람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제가 가장 원통한 건 말이죠. 그 아이에게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 일이에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한 번 사진을 바라보았다.

"도망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했죠. 나도 남편도 늘 힘내라, 열심히 해라 격려하면서 길렀고요.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으니까 힘내라고 말이에요."

처음 만났지만, 그녀의 그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혼자 애를 쓰고 또 쓰고. 손 쓸 도리가 없는데도 계속 애를 쓰다..... 도망치지도, 앓는 소리도 하지 못하고 결국 망가져 버렸어요. 어째서 알아채 주지 못했을까요. 지금도 생각해요. 혹시 곁에 있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장 마지막에 그 아이와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내가 말했어요. '괜찮아, 너라면'이라고. 정말로 무책임하죠. 그 아이는 이미 괜찮지 않았는데. 정 안 되겠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 주지 못했어요. 그 아이의 괴로움을 알아채 주지 못했어요."

그녀는 손수건을 눈가에 살며시 댔다.

"도망치는 법을 몰랐던 그 아이는 회사를 그만두지도, 누군가에게 상담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해 버렸어요."

손수권을 쥔 그녀의 손이 조금 떨렸다.

사랑하는 이를 돕지 못한 원통함과 후회. (본문 179)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잠시 책을 읽는 걸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비가 올 듯 말듯한 날씨의 잿빛 색으로 물든 대학 캠퍼스 내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너라면 할 수 있다, 너라면 버틸 수 있다는 말은 격려의 말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도망칠 구실과 여유를 빼앗는 말이기도 하다.


 '괜찮아, 너라면.'이라는 말은 절대 악의가 담긴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믿기 때문에,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응원하고 싶은 선의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의 상냥함이 더욱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때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버텨야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걸까?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서 주인공이 드디어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서 사표를 쓰는 장면은 이 질문에 무척 통쾌한 정답을 보여준다.


내가 입을 다물자 겁먹었다고 착각했는지 부장이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얼굴로 지껄였다.

"어차피 너 같은 놈은 평생 패배자로 끝나는 거야!"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내 인생을 댁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내 고함에 부장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내 인생은 댁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딴 회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야. 내 인생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졌다.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본문 197)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하는 아오야마의 모습은 시원한 사이다 같았다. 도대체 우리의 인생을 왜 남이 멋대로 승패를 결정하는 걸까? 우리는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잔업과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상태에서 대학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친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금방 발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찾아볼 시간조차 없이 고만고만한 시간을 보내면서 소맥 한 잔을 들이켜는 것으로 잊으려고 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되뇌며 지금에 머무르고자 한다.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오늘도 슬픈 표정으로 집을 나서 직장으로 출근하거나 학교로 등교하는 사람을 위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일본 직장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는지 알 수 있었고, 곧 개봉할(한국 상영 소식은 불명) 영화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오늘, 고개를 들어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을 추천하고 싶다. 오늘 곧장 직장을 그만두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숨이 꽉 막히는 생활 속에서 잊고 지낸 무언가를 떠올리며 작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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