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박준영 변호사, 법과 약자를 말하다

한국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뜨고 있는 이유


 내가 법에 최초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사회문화와 정치 과목을 통해서 법의 기본적인 이름을 알게 되었고, '법과 사회'라는 과목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법을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 만약 내 성적이 지금보다 좋았다면, 나는 정말 법대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법대를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지 못했다. 사회탐구 과목 법과 사회에서는 고득점을 받았지만, 역시 수능시험의 수학을 비롯한 주요 세 과목을 너무나 못 봤었다. 아마 그 당시 나는 법대를 가겠다는 확고한 목표보다 그냥 대학을 가고자 할 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간절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법대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했다. 그 당시에 조금만 더 간절한 심정으로 공qn했으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런 아쉬움을 토로해도 내가 만든 결과니 큰 불만은 없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외대에도 법 경찰학부가 있어 법 강의를 교양 과목으로 들을 수 있었다.


 교양 과목이라고 하더라도 법에 대해 전반적인 부분을 공부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법에 관심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식 수준에서 알아두면 무척 유익하다. 게다가 우리 도서 시장에는 생활 법률 도서가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법은 단순히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는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많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늘 글은 생활 속의 법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어제(21일) 방영된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 들은 박준영 변호사가 들려준 '법과 약자'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적게 되었다.



 박준영 변호사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말하는 대로>를 통해서다. 그 당시 박준영 변호사는 국선 변호인으로서 변호를 맡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억울한 사람을 위한 변호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그 이야기 중에서 살해용의자로 체포된 3명의 지적 장애인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었다.


 그 3명의 지적 장애인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속에서 억지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사 출신의 지금 국내 최대 로펌의 변호사를 상대하여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 다시 들어도 충격적이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찰의 회유와 협박에 쉽게 무릎을 꿇고, 잘못에 저항하려고 해도 좀처럼 저항할 수 없으니까. 속된 말로 굉장히 죄질이 나쁜 사람도 돈만 있으면 최대 로펌의 변호사로 이익을 볼 수 있다.


 유전무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을 비롯한 몇 인물이 거물급 변호인을 데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는 덴마크의 최고 실력 있는 변호인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법은 강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박준영 변호사는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약자를 위한 법과 제도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준영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묻지 마 범죄 같은 범죄의 자극적인 보도 안에서 보도되지 않은 '문제'를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잔혹하게 보도된 오원춘 사건을 수사 과정 변호인을 맡았다고 한다. 당시 오원춘은 그에게 "제가 조선족이라서 재판에서 차별을 받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런 범죄는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다."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오원춘 또한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이라고 많은 차별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어렵게 입을 떼었다 오원춘이 약자를 대상으로 분풀이를 한 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차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오원춘 사건은 경찰의 늦장 대응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오원춘 사건에 대해서 경찰의 늦장 대응에 분노하고, 언론의 칼질로 연일 자극적인 보도를 보았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이 경찰의 늦장 대응에 대해 국가 손배소를 청구했다가 2심에서 전부 패배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지금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오원춘 사건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뿐더러, 언론의 보도에 따라 경찰을 비판하거나 범인을 욕만 했지, 피해자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하고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어떤 큰 논쟁이 되는 사건에 대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에 관심을 기울일 뿐, 그 사건에서 소외된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언론조차 그 일에 대해서 자세히 보도하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사는 아무리 적어도 돈이 되지 않는 기사이니까.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 박준영 변호사는 소외된 약자의 처지를 말하며 우리 헌법에 적힌 진술 거부권의 한계를 지적했다. 진술 거부권은 약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지만, 강한 힘 앞에서는 좀처럼 지키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최순실 같은 인물이 침묵하며 그 기능이 작용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박준영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법은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하는가, 약자를 위해 집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법은 약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평하게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논리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이고, 국회에 입김이 닿는 것은 늘 강한 사람일 때가 많다. 때로는 법 자체가 공평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실을 지적하며 '과연 법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나?'고 물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법 집행은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법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면?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변호사를 산다고 말하지,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잘 말하지 않는다. 내가 강하면 강할수록 법은 우리에게 유리한 '룰(Rule)'이 된다.


 박준영 변호사는 '법이 때로는 약자에 맞춰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몇 사람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법과 제도의 목적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기에 제법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법정에서 80대 노인이 빵을 훔친 죄로 판결을 받기 위해 서 있었다.

판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왜 빵을 훔쳤습니까?"

80대 노인은 답했다.

"늙어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4일을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파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판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선고를 내렸다.

"피고를 벌금 10달러에 처합니다."

판사봉이 세 번 울렸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판사가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노인에게 건넨 것이다.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가 있습니다. 혹시 방청석에서도 저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방청석에서도 목소리가 나왔고, 노인 앞에는 47달러의 금액이 전달되었다.


 이 이야기는 박준영 변호사가 들려준 어느 판례의 이야기다. 약자 앞에서 어느 정도 유연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이런 판례를 보도를 통해 짧게나마 들을 때가 있다. 나쁜 소식은 자극적으로 보도되며 시간이 길지만, 이렇게 훈훈한 판례는 잠시 언급되었다가 자취를 감춘다.


 박준영 변호사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거나 눈을 뜬 모습을 말하며 '시대에 따라 눈을 뜨거나 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며, 앞으로 우리 시민의 힘이 소외당하는 약자를 위해 사회가 바뀌는 데에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고, 누구나 법을 통해 이익을 볼 수도 있다. 법은 공평해야 하고,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렇다면 약자와 강자 앞에서 명백히 다른 법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 질문을 잠시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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