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엔딩에 소름 돋았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6. 2. 9. 07:30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우리의 오늘을 날카롭게 비판하다
영화 <내부자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히 허구가 섞인 영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내부자들> 영화 속에 언급된 성 접대 파문을 비롯하여 권력과 원론의 유착 관계를 현실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언론과 권력 세 개의 기구가 트라이앵글로 엮이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영화가 편집한 장면을 살려서 3시간 분량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시리즈로 나온다고 했을 때, 꼭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비록 영화 극장에서 영화를 볼 시간을 만들 순 없었지만, 지난 설날 연휴동안 IPTV VOD 서비스를 통해서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볼 수 있었다.
전편과 달리 3시간 분량이라 상당히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이야기를 보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금새 영화에 몰입하여 깡패와 정치인과 언론인과 검사가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을 진지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편보다 확실한 복선이 있어 이야기는 더 깔끔했다.
영화를 보면서 성공하기 위해서 학연·지연으로 얽히는 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악습, 아무리 미친개처럼 발버둥 쳐도 족보가 없으면 어디서든 까일 수밖에 없는 모습은 참 착잡했다. 어떤 사람은 "영화 한 편으로 지랄을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현실을 겹쳐볼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고 싶어서 나 찾아온 거 아니냐?, ⓒ내부자들 디오리지널
총선을 앞둔 우리는 지금도 종편으로 분류되는 언론이 열심히 여당과 현 정부를 떠받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권력과 언론 기관의 이런 유착 관계는 기업 스폰서로 이어져 서로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삼각관계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서 우리는 과연 '정의'라는 단어를 누가 쉽게 입을 담을까.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보게 도면, 서로 선후배라고 부르면서 친동생의 초등학교 동기까지 따져가면서 줄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도 한참 예비 후보자 선거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누가 누구와 동기, 같은 초등학교' 등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맺어지는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오랫동안 부패하게 한 대표적인 원인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선거기간이 되면 어김없이 이런 것을 하나둘 알아보면서 점접을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어떤 예비 후보의 부인이 생뚱맞게 어떤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도 그 과정이다.
어떤 도지사는 영화 <내부자들>에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아마 구린내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내부자들>을 보면서 석연치 않았을 것이다. 영화가 찌르는 핵심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보고들은 경험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을까?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이야기다. <내부자들> 첫 시리즈보다 사람들이 개연성 있게 볼 수 있는 구성은 우리가 마주한 '헬 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의 현실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엿보는 그런 장면 중에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엔딩이 가장 소름 돋았다. <내부자들>에서는 볼 수 없던 교도소에 구속된 이강희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콩밥도 먹을 만 합니다.'이라는 대사와 함께 언급한 대중에 대한 비아냥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섬뜩했다.
"오징어 씹어보셨죠? 근데 그게 무지하게 질긴 겁니다.
계속 씹으시겠습니까? 그쵸? 이빨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씹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 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겐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겐 울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 제풀에 지치지 않겠습니까?
오른손요? 까짓거 왼손을 쓰면 되죠. (비장한 웃음)"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CM 영상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도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이 말을 어느 하나도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는 권력형 언론과 정치를 비판하고, 청문회 때마다 논란이 되는 그들이 부정부패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한국에서 짧으면 3주, 길면 3개월만 버티면 된다는 말이 있다.
총선을 맞아 유세를 다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마약 사위에 대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저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설치 반대 시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우리는 그저 눈앞에 던져진 먹이만 아작아작 씹어댈 뿐, 시간이 지나면 뭘 씹은 지도 모른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라는 책을 집필한 저자 다니엘 튜더도 지적한 한국 대중의 냄비 근성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쁜 우리는 '저놈이나 그놈이나 똑같아.'라며 한순간 버럭하고 만다. 그래서 구린내가 잔뜩 풍기는 어쭙잖은 인물이 아직도 꼴값을 떨고 있는 아닐지.
총선을 불과 2달 앞둔 우리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시민 의식이 성장했을까? 아직도 여기저기서 족보를 따지고, '내 고향이 XX거든. 난 무조건 XXX당.'이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구린내가 나는 녀석들의 똥을 닦아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오늘이다. 플라톤이 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잊지 말자. 지금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는 사람만 진실한 사람이라며 구린내를 팍팍 풍기고 있으니까.
* 글을 쓴 오늘(7일) 북한의 위성 발사를 두고, 사드 배치부터 시작해 대테러방지법까지 이어지는 정부와 언론의 자극적인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는 <내부자들>의 소수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정한 주제에 놀아나는 개, 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여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오직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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