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 너무 개탄스러웠던 드라마였던 이유
- 문화/문화와 방송
- 2015. 9. 19. 08:03
진한 감동과 여운, 그리고 가슴 속에 분함을 남겼던 드라마 '어셈블리'
그동안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어셈블리>가 지난 17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어셈블리>는 우리 정치의 사실적인 모습을 부각해 약간의 허구적 요소를 넣은 정치 드라마로, 과거 방영되었던 드라마 <추적자> 이후로 정말 살벌한 정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추적자>는 한 소녀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자신의 손에 절대적 권력을 쥐려고 하는 한 명의 정치인을 파헤치는 이야기였다면, <어셈블리>는 한 동료를 잃어버린 평범한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어 국민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셈블리>는 마지막에도 큰 갈채를 받았다.
비록 <어셈블리>의 시청률은 다른 드라마처럼 높지 못했고, 정치에 관심을 두는 사람만 드라마를 본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상당히 아쉽다. 블로그에 발행했던 <드라마 어셈블리의 시청률이 부진을 겪는 유>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에서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블로그 댓글 반응, ⓒ노지
다른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을 나무라는 건 아니지만, 이런 드라마가 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확실히 어려운 정치를 다룬 드라마보다 잘생긴 배우가 나와서 풋풋한 사랑을 그리거나 막장 요소가 들어간 드라마는 분명히 눈과 귀를 유혹하기 쉽다.
마치 패스트푸드에 사용된 과도한 양의 소금과 MSG 성분이 '맛있다.'고 우리의 혀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패스트푸드를 자주 섭취하면 사람의 몸이 망가지는 것처럼 우리가 오직 가볍게 떠들 수 있는 이야기만 고집한다면, 우리가 가진 사고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글의 제목에 '너무나 개탄스러웠던 드라마'이라고 말하고, '진한 감동과 여운이 있었던 드라마'이라고 수식어를 붙여도 됐었지만, '작은 분함을 남겼던'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분명히 드라마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드라마에서 보았던 현실은 깊은 한숨이 나왔다.
드라마 어셈블리
아마 나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어셈블리>를 꾸준히 시청했던 시청자는 모두 같은 마음일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 진상 진상필 같은 정치인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과 아직도 제대로 국민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물만 정치인이 되는 현실이 가을 하늘을 보더라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을 거다.
<어셈블리>의 진상필은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 중 하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셨죠? 그런데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습니다."이라는 말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작은 계란에 불과했던 국민 진상 진상필이 진심으로 진짜 정치를 하는 모습은 분명하게 시민의 마음을 움직였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치는 아직 드라마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진상필처럼 정말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던 한 대통령이 있었지만, 그는 정치 공학의 희생물이 되어 피눈물을 흘렀던 죽음을 맞이해버렸으니까.
드라마 어셈블리
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나는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진짜 정치는 무엇이며, 그런 정치를 요구하는 우리 시민의 수준은 과연 어떠한지. 과거 한 정치인의 아들이 SNS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미개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말을 떳떳이 반박할 수 있는지….
부자들을 위한 세금 감면을 해주는 정치인을 평균 소득도 벌지 못하는 시민이 지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소맥 한 잔을 들이켜면서 작은 의지와 행동도 하지 않고 욕만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드라마 <어셈블리>는 우리에게 진짜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가상의 인물 진상필을 통해서 우리가 들었던 그 말, 하나하나가 전부 정치가 가진 진짜 목적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 공학을 하는 정치인에게 무엇을 기대했으며, 우리 시민은 또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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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준 드라마 <어셈블리>가 정말 고맙다. 그리고 그런 고마움만큼, 정반대로 흘러간 현실의 모습을 보았기에 개탄스럽다. 아직도 우리는 시민의식이 너무 부족하다. 앞으로 우리가 똑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가, 정치다워질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바로 선 시민이 있어야 한다. 투표일에 지정된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지 않고 카페에 들어가서 '내가 어제 누구랑 만났는데~' 같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시민이 아니라, '저 정치인의 과거 이력은 이렇고, 저 정치인은 과거에 이런 잘못을 숨겼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이 말이다.
시민이 정치에서 등을 돌리게 해버린 건 정치인과 기성세대의 잘못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남 탓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런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탓하고, 작은 윤리를 실천할 때, 우리는 진상필 같은 정치인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어셈블리> 마지막 화에서 들었던 진상필의 명연설을 남긴다.
"박춘섭 의원님, 국가는 물주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러면, 국민은 물주입니까? 물주에요? 우리 국민이 뼈빠지게 일하고, 나라 지키고, 세금도 냅니다. 그게 의무라고 헌법에 나와 있으니까!
배달수 씨도 그래요. (중략)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어요! 그 사람 누가 일어서게 도와줍니까? 누가 일어서게 도와줘요!?
국가에요. 국가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국가의 의무니까.
국민은, 호구도 물주도 아닙니다! 국민들은 이 국가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국민들에게 믿게끔 해주고 싶어요. 국가가! 나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국가가! 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그래서 나는, 나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내가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중략)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국가가...! 의무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아아!"
>동영상으로 보기 : http://youtu.be/Wd8-rXWX5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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