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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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일간의 묵언으로 얻은 단순한 삶의 기록


 나는 종종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절거리고, 마치 자신의 입에서 '바쁘다' '힘들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인생을 똑바로 살지 못하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쫓기는 것처럼 쉴 틈 없이 말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막상 혼자 있어야 하는 경우에 놓이면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말을 할 준비를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가식 거리를 찾아보는 것일까?


 비록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옳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가식 거리를 가지고 떠들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인 것처럼 말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지인을 만났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말 없이 이렇게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p126)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가 친구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불편하지 않다. 단순히 같이 있으면 무조건 어떤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땀을 흘깃 흘릴 정도로 머리를 굴리는 관계는 친구에 가깝다고 말하기보다 불편한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노지


 얼마 전에 우연히 제목이 상당히 마음이 끌리는 책을 만났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제목을 읽는 것부터 벌써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저자는 어떤 것을 느꼈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다.


 말을 하지 않고 43일의 시간을 보낸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어려울 것 같다. 말을 하지 못하니 전화를 걸어서 치킨을 시켜 먹지도 못하고, 택배 기사분이 왔을 때 '나가요' 하고 대답도 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지도 못하니까. 가만 생각해보면 말을 하지 않는 건 어려움만 가득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겪는 불편함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실수로 흘리는 말을 통해 상처받는 일이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에서 묵언이 우리가 좀 더 현명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또한, 우리는 밖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되면 나 자신과 대화가 깊어지고, 그 누구도 아닌 나와의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앉아 가만히 생각하는 일을 자주 하는데, 다음 브런치에 기록하는 글은 그때의 생각을 옮긴 글이다. 나와의 대화. 그건 밖으로 말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마음속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에 고요하게 들어가 깊이 숨을 들이쉬어 보는 것과 같다.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답을 찾끼 위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속 깊이 침잠하는 울림은 묵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p155)


애두름마당, ⓒ노지


모든 화의 근원은 말에서 나온다. 화를 다스리고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말을 아끼는 것이다. 말을 안 한다는 것이 쉬울 듯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경쟁 사회 속에서 이미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참는 일은 쉬워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자기 수양의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스님들이 묵언 수행을 하셨나보다.

나와의 대화가 깊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p155)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우리는 '벙어리'라며 놀리고, 자기주장을 힘껏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학교와 사회에서 종종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인생은 언제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현명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일은 솔직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묵언을 통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면, 나는 그런 일을 당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도 억지로 노출되는 곳에서 크게 내 말을 말하지 못해 언제나 뒤로 한 발짝 물러서는 나에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토닥이면서 '괜찮아.'는 말을 건넨다.


 그저 몇 분의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나를 마주할 수 있다. 대체 저자는 43일간의 묵언을 하는 시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자신의 43일간의 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했지만, 분명 책에 담긴 것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책은 묵언 수행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글이 나열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긴 여백과 함께 한 글을 천천히 음미해보며 내가 했던 말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자극적인 말이 상시 들리는 시대에 쉴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글의 앞에서 말했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말임에도 말을 꺼내다가 서로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말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시험해보면서 자신을 평가하는 옹졸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세상에서 가장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위험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가 묵언을 하면서 느낀 말에 대한 여러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늘 사람과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람으로 평범히 지낼 수 있었다.


 우리는 딱히 불필요한 말을 억지로 꺼내서 대화를 이끌어갈 필요가 없다. 내가 앉은 자리의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억지로 많은 말을 하면서 달변가인 것처럼 보이려고 하다가 얕은 지식이 드러나고, 다투거나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내가 43일간의 긴 시간 동안 묵언 수행을 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운 주말에라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을 몇 달 동안 반복해보는 것도 가치 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주말에 늘 혼자 있어서 말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만, 일상 속에서도 최대한 필요 없는 말을 줄여볼 생각이다.)


말이 지닌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을 한마디 하기 전에 열 번은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우호적이지 않은 상대에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 번 뱉은 말은 언제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p92)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일까? 무조건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말을 적절히 하는 것이 좋다. 말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진짜 필요한 말보다 불필요한 말이 많아지고, 그 말이 오해를 일으켜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말을 줄이고 적절히 하는 것이 좋은 말 습관이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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