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는 비로소 예술 속의 인문학을 보게 되었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6. 1. 07:30
<아트 인문학 여행>, 이탈리아를 걸으며 직접 눈으로 보는 듯했던 책
어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은 단순히 '예술성'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예술 작품 속에 스며든 그 시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 더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문화재와 문학 작품이 그런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대중적 관심은 꽤 미미한 편이다.
종종 유홍준 교수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한구석에 방치되어 제대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박 2일> 같은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유산이 가끔 등장할 때마다 갑작스러운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관심이 사라지는 것도 벼락 같이 한순간이다.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이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모르고, 우리의 건축 양식과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가끔,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기만 할 뿐, 숨은 이야기를 찾으려고 한 적이 없었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단순히 어려운 질문 속에서 답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 실생활에 녹아있는 여러 요소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학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과 문화유산에서 그 이야기를 통해 배운다면, 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아트 인문학 여행, ⓒ노지
아트 인문학 여행, ⓒ노지
비록 우리나라의 예술 작품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에서 보는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책을 얼마 전에 읽어보게 되었다. 바로 <아트인문학 여행>이라는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꽤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유럽 문화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시절에 들은 세계사 수업과 대학교 시절에 교양 수업으로 들은 유럽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분야를 다루는 책을 읽는다는 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트 인문학 여행>을 읽으면서 나는 괜히 그런 걱정을 했음을 바로 알게 되었다. <아트 인문학>은 유럽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선풍기 한 개에 의존해 물리치던 여름 더위를 말끔히 잊을 정도로 책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여행기 형식으로 이탈리아의 도시를 걸으면서 어떤 건축물과 미술 작품에 멈춰 서서,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을 갖춘 <아트 인문학 여행>은 제목 그대로 아트 인문학 여행이었다. 논리만 파악하는 학교 수업과 달리 작품 속의 문화와 배경을 읽을 수 있어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아트 인문학 여행, ⓒ노지
모든 예술 작품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그저 알몸의 여인이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 그림도 파헤치면 긴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일은 당시 로렌초의 철학적 바탕이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티첼리는 폴리치아노의 시를 그림에 담곤 했는데 그 시를 듣거나 읽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림의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인문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척 보면 그림이 무슨 뜻인지 알고 미소를 지었는데 반대로 교양이 없는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되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공개되는 날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림에 대해 미리 과외를 받고는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처럼 남에게 설명해주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지자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대 신화를 포함한 인문 교양 공부가 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보티첼리가 '당시 교양인의 기준'을 제시한 셈이었다. (p95)
책 <아트 인문학 여행>을 읽는 내내 이렇게 내가 모르는 지식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은 쉽게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배고픔에 굶주려 있다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느낌이었다. 특히 평소 유럽 문화에 작은 흥미를 두고 있었기에 책을 통해 만나는 르네상스 철학은 눈을 즐겁게 했다.
여름이 되기 전에 나는 서울에서 <크레이지 호스 파리>이라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유명한 공연이라고 해서 찾아가서 보았고, 가기 전에 지식을 습득하고자 검색도 해봤었지만, 솔직히 나는 공연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왜냐하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
나에게 <크레이지 호스 파리> 공연은 몸매 좋은 서양 여성이 맨몸의 곡선으로 펼치는 퍼포먼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어떤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을까?' 고민도 했지만, 나는 끝내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식 없이 바라보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 작품도 이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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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우리가 대충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격차가 있다. 나는 이 책 <아트 인문학 여행>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철학과 문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흔하게 들어본 예술 작품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직접 내가 이탈리아에서 거리를 걸으면서 그 시절에 만들어진 작품을 눈에 새기면서 해설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이탈리아를 방문해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갈증도 생겼다. 정말이지 인문학이 끌어당기는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아니, 단순히 인문학이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말하기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단순히 아무 설명이 없는 예술 작품은 사람의 머릿속에 '???' 기호를 띄울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예술 작품은 사람의 머릿속에 '!!!' 기호를 띄우게 한다.
평소 미술과 건축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유럽의 문화와 예술가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아트 인문학 여행>은 정말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대해 지식이 없었던 나도 쉽게 책을 읽으면서 책의 여백만큼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기에 아낌없이 추천을 해주고 싶다.
창조는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일이니 익숙한 것들과 완전히 다른 생각과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브루넬레스키와 그의 일당들은 창조성의 가장 첫 단계가 다름 아닌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생각대로 해보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과 만나야 한다. 주위의 몰이해와 선입견도 장벽이 된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핑계가 갑자기 초라해진다. 이들의 강력한 무기는 수학적 사고력이다. 이를 통해 원근법이 창조되었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예술을 선보이면서 철옹성과 같던 국제 고딕의 시대를 허물어버렸다. 이들이 걸어간 길은 예전의 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이들은 도전했고 어려움을 당연히 받아 들였다. 그리고 묵묵히 갔다. 남들은 길이 없다며 말렸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그래도 갔다. 그러자 길이 없던 곳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무식한가? 이런 태도로 들이대는 앞에 불가능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해보자.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레 안 된다고 물러서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들 흉내 내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낙오자가 되기 쉬운 세상이 오고 있다. 도전하자. 이 시대엔 브루넬레스키와 그 일당 같은 도전자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길을 만들어줄 사람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 스스로가 길을 내야 한다. (p66)
- 크레이지호스 파리 공연을 보다 : http://nohji.com/27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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