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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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논어)


 인문 고전을 읽는다는 건, 인문 고전을 공부한다는 건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가 사는 2015년의 세상은 인문 고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왜냐하면, 서로 부딪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안이 텅텅 비어있고, 젊은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이라는 질문 앞에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서로 주장하는 정의가 달라 부딪히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뉴스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삶을 고민하는 청춘의 모습은 바로 우리(나)의 모습이니까.


 그런 까닭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점점 인문 고전이 필수적으로 접해야 하는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라는 교육이었지만, 인문 고전은 '왜?'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 선생도 "의문을 갖는 것은 의문을 없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며 학문에서 의문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공부를 할 때는 그만큼 의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들은 질문과 토론을 가장 중요한 공부 방법의 하나로 삼았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라고 묻지만 유대인 어머니들은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주입하는 일을 교육으로 아는 우리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해소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知)'라는 것을 단순히 지식의 개념으로 인식하지만, 유대인들은 인격적인 교류가 있어야 진정으로 '아는 것'으로 인식한다. (p110)


 윗글은 오늘 소개할 책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윗글을 읽어보면 유대인의 접근 방식이 평소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평범한 질문 한 개에 담긴 시선의 차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당신은 두 질문 중 어떤 질문을 하는 사람인가?


 분명히 한국 부모라면, 후자 유대인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질문이 아니라 전자의 질문을 아이들에게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왜?'이라는 질문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하지 않고, 아직도 그저 하나를 그대로 받아들여 익숙해지는 것만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우리는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사회, 정치, 경제 문제에서도 '왜?'이라는 질문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언론이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부분적으로 옳지 않은 부분이 있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확실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안팎으로 많은 갈등을 겪는다. 지금 당장 눈앞의 가장 큰 문제인 세월호 사고로 번진 갈등과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번진 갈등 모두 '왜?' '무엇을?' '어떻게?' 같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조금 더 확실히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노지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노지


 앞에서 짧게 언급을 했지만, 다시 여기서 정리를 하고 넘어가자. 오늘 소개하려는 책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글의 도입부에서 던진 '인문 고전을 공부한다는 건 무엇일까?'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가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아마 제목만 보더라도 대충 내용이 짐작 가지 않을까?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고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독자가 먼저 읽으면서 그 이야기에 담긴 주제를 생각해보고, 거기에 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우리 사회의 모습에 적용하면서 어떻게 생각해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우리 고전에서는 좀 더 적나라하게 정치인들을 이야기한다. 조선시대 탁월한 학자였던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서는 당쟁에 열중하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닭을 길러보면 당쟁의 이치를 안다."

닭은 모이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때로는 밭을 망치거나 사람에게 몰려들어 지팡이로 얻어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먹을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닭의 모습이 정치인이 보여주는 행태와 똑같다고 이익은 이야기한다. 권력과 명예를 찾아 모여들고 이익을 정신없이 추구하고 무리의 우두머리를 쫓아 열심히 따르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은 없는 것이다. 어떤 때 정치인들은 닭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닭은 먹이를 다툴 때는 못할 짓이 없지만 먹는 일이 끝나면 다시 사이좋게 지낸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상대편은 물론 자기편끼리도 이권 다툼이 되면 끝없이 비방하면서 인격모독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닭은 생존을 위해 다투지만 이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싸운다. (p247)


 위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은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과거 고전에서 정치 모습을 비판한 모습이지만,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정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서로 이득이 되는 부분에서는 힘을 합치지만, 시민의 권리가 주제로 올라오면 치고 박는 모습이 참으로 옹졸하기 그지 없다.


 한국 정치에서 '성완종 리스트' 이후 보여주는 우리 정치 모습은 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언론 자유도 평가에서 OECD 35개 국가 중 30위를 차지(전체 197개 평가 대상국 가운데 68위)[각주:1]하는 모습이나 서로 부정부패가 있다면서 오리발을 내미는 식으로 나오는 인물이나 '유감'을 표하는 대통령이나… 정말 한숨만 나오게 한다.


 다시 책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책의 주제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내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이라는 질문을 하고, 우리가 답을 찾기 위해서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의 주제이다. 먼저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맹자는 당시 사람들이 흔들리며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가 없어지면 열심히 찾지만 자기 마음은 내놓고서도 찾을 줄을 모른다."

맹자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래 전에 했던 말이지만 물질에 현혹된 현대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을 잃어버리면 안타까워하면서 찾지만, 우리의 머리가 비어 있고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맹자는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사실은 정말 중요한 것을 잃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나 부유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내 마음이며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의미다. (p164)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독자, 즉, 우리가 경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너무 세속적인 것에서 찾는 경향이 짙다. 뭐, 솔직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한 학교에서 배운 것은 '도덕과 철학'아 아니라 '성적과 경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형태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0대 시절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에 다닐 때와 직장인으로 취업할 때에도 형태가 유지된다. 그런 내가 원하지 않은 형태 속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이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소주 한 잔 속의 상상 속에서나 삶을 그린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늦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말고, 지금에라도 당장 시간을 내어서 살아온 날을 되짚어보며 살아갈 날을 바라본다면, 지금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남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서 말이다.



 솔직히 내 삶을 나를 위해서 산다는 건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을 다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번에 나는 블로그를 통해 <미움받을 용기>[각주:2]를 소개하면서 아들러의 철학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책 <미움받을 용기>는 그 용기와 삶의 자세를 말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한 책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고전을 통해 내 삶을 어떻게 형성해나가야 할지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크게 보면 어떤 결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작게 보면 어떤 결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전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사람으로서 타당한 도리를 지닌, 그리고 내 삶을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저력을 위해 고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장점을 발휘하면 모든 것인 순조롭지만, 단점을 밀어붙이면 일을 이룰 수 없다."[각주:3]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삶을 대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단점만 바라보며 '난 그래서 안 돼.'하며 포기하느니, 장점을 성장시켜 그 일을 하며 사는 게 좋지 않겠는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 인문학은 '왜'를 통해 본질을 찾게 하며 변화의 시대에 변하지 않는 진실을 찾는 학문이다.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를 통해 해답을 외우는 것에서 벋어나 해답을 찾는 길을 통해 내 삶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대인의 지혜를 담은 책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은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전의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



  1. [허핑턴 포스트] 한국 언론자유지수 또 하락 68위 http://goo.gl/DHrfMd [본문으로]
  2. 미움 받을 용기 : http://nohji.com/2781 [본문으로]
  3.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p18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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