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언어의 정원>, 비가 내리면… 다시 만날지도.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4. 9. 07:30
비 내리는 날에 읽기 좋은 <언어의 정원>, 산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읽다!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언어의 정원>은 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여운이 남았던 애니메이션이었다. 비 오는 날의 느낌을 잘 묘사한 <언어의 정원>은 빗소리를 들으며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아름답다.'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었다. (다시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도 그렇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 한국에 소설로 발매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다. 이미 책을 구매하려고 했을 때부터 '책을 너무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커서 택배로 받았을 때 바로 읽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내가 <언어의 정원> 책을 읽었던 건 4월 6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서울로 가기 위해서 KTX를 타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도 비가 오는 날에 <언어의 정원>을 읽게 되었는데, 창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들리는 빗소리가 깊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해주었다.
언어의 정원, ⓒ노지
한 장,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이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표현이 페이지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살아서 내게 이미지로 전해져 오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언젠가 이 책이 끝난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 정도로 소설 <언어의 정원>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고독했고, 슬펐다.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언어의 정원>도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지만, 역시 좀 더 긴 운율을 읽어볼 수 있는 소설은 그 이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 한 장, 한 장이 너무 소중했다.
소설 <언어의 정원>은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보다 훨씬 더 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던 인물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는 애니메이션 결말 뒤를 읽어볼 수 있는 에필로그까지 있었다.
아마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을 감탄하면서 보았다면, 소설 <언어의 정원>도 무척 감탄하면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미지가 펼쳐진다. 잿빛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가 선율을 연주하는 어느 공원의 정자에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몹시도 가냘픈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언어의 정원
또한,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좀 더 다양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혼자 길가에 서서 '아, 어쩌면 좋지?'이라는 고민을 하는 내게는 그래서 소설 <언어의 정원>이 마음 깊숙이 들어와서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문득 책에서 읽었던 "…자신만 특별히 가엾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꼴불견이야."이라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에 나도 이런 말을 친구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문제로 아파는 내 곁에서 고민을 들어줬던 친구의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1
(당시에 그 친구의 어머니가 위독한 상태였었다는 것을 후일에 알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난 특별한 아픔을 가지고 있어.'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정당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은 학교 폭력도, 가정 폭력도,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는 일일 테니까. 아마 우리 자신은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언어의 정원>은 마음 한구석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이 뭔가 공백이 느껴지는 사랑을 통해 조용히 어른이 되는 이야기였다. 주민등록증에 나온 나이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 아이로 남아있는 나는 그래서 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한다.
|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을 처음 보았을 때도 나는 '어떻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절실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이라며 감탄했었다. 그리고 소설로 읽은 <언어의 정원>은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감동을 주면서 내게 큰 울림을 줬었다. 마치 지금 책을 사랑하며 읽는 그런 감정까지.
책에는 "살면서 자기 자신보다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꼭 찾아내 거라. 그것만 성공하면 인생은 성공이지." 2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그런 상대를 찾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이윽고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이라는 조금은 슬플지도 모로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직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솔직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글에서 사용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겠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도대체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문장으로 읽어도, 상상해도, 좀처럼 확 와 닿지 않는다.
아마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찾는 내 여정은 긴 장마가 지속할 것 같다. 언젠가 소설 <언어의 정원>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해줄지 모르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여기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읽은 소설 <언어의 정원>은 그런 책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아직 소설 <언어의 정원>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이번 기회에 책을 찾아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셋톱박스를 이용한다면, 결제해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작품은, 충분히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