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발언 논란, 결국 아프니까 청춘이니 참아라?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12. 29. 07:30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요, 아프면 그냥 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은 많은 청춘의 공감을 얻었던 말이었다.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은 힘들었던 청춘을 대상으로 정말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 해의 트렌드가 되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청춘은 그저 공감해주는 것으로도 위로를 받지 못했고, 해당 출판사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아니요, 아프면 그냥 환자입니다.'이라는 말이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청춘이라서 아파야 한다는 건, 청춘이라서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청춘이라는 시기는 그냥 즐겁게 하루를 보내면서 내일 뭐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보내야 하는 시기다. 오늘의 불행을 담보로 내일의 행복을 사려고 하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청춘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사회적 정의에 반발하면서 '우리도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청춘의 정치·사회 문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인디밴드의 음악을 즐기면서 내일로 미루던 즐거움을 오늘 즐기는 모습은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그들에게 손뼉을 쳐주지 않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무릇 학교에서 스펙을 쌓아서 공부를 해야지. 쓸데없는 곳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이라는 말을 하면서 새장에 가두려고 하고, '청춘 열정 페이' 같은 말을 만들어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대학생들을 함부로 부리거나 졸업 후에 인턴으로 취직한 새내기 사회인이 된 대학생을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청춘이 "이 문제를 잘못되었습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고 외치지만,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야 할 정치인들은 모른 척하기 바쁘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으며('부자 증세는 없다'는 철저히 지키고 있다.), '아프다' '힘들다'… 하고 말하는 청년들에게 '참아야 합니다.'는 잔인한 말을 하고 있다.
ⓒKBS
얼마 전에는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이 청춘과 만나는 자리에서 한 여러 말이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열악한 아르바이트 처우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한 대학생에게 "젊어서 그런 고생을 하는 것도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뭐, 그 말도 맞기는 맞다. 젊어서 고생을 하면,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어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주장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이 단순히 힘들어서 고생하는 게 아니라 대우를 똑바로 받지 못하는 것에 있다. 김무성 대표는 "학생들이 알바를 했는데 제대로 비용도 안 주고 그런 나쁜 사람들이 많다. 알바를 구하러 가서 그런 사람인가 아닌가 구분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해 마음을 바꾸는 것도 여러분 능력."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출처)
이 말은 결국,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그 대우를 고치는 게 개인의 능력이라는 거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결국 개인이 소송을 걸거나 법적인 절차를 동원해서 해결하라는 이야기인데, 이를 생각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사정을 다 알면서 청년들을 고용하려는 사장님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경제가 내려앉다 못 해서 점점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계 부채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가계 부채를 덜어주는 정책은커녕 서민 증세만 늘리는 창조 경제를 실천하는 정부 덕분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지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하고, 그 고통은 또 청년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서로 끙끙 앓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김무성의 말대로 젊어서 고생할 수도 있고, 젊을 때 겪은 부당한 일을 통해서 설득법이나 법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유익한 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런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순간에 "너만 그렇게 힘든 줄 알아? 다른 사람도 다 힘들어. 염병할 자식아!" 같은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튀는 돌이 되면, 한국에서는 바로 손가락으로 쳐버리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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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니 참으라고 말하는 건 비록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한 말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과거에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공감도 할 수 없고, 그저 사용자의 입장에서 피고용인에게 조언하는 듯한 태도는 오히려 갈등만 더 일으킬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논란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청춘에게 너무 가혹한 것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불행과 아픔을 감수하라고 한다. 오늘 웃지 않고 참으면, 내일 웃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어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꼭꼭 숨긴 채… '아프니까 청춘이다. 참아야 한다. 그게 다 배움이다.' 하고 허울 좋은 변명만 붙일 뿐이다.
"기타무라, 설마 벌써 입사시험 공부 시작한 건 아니겠죠?"
"사실은 맞아. 얼마 전부터 시작했어."
"아니 이런. 정말입니까? 아니, 어쩌다 이런 학생들이 된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안타까움에 겨운 듯했다.
"저기 말입니다."
그러더니만 한층 소리를 높였다.
"아니, 입학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란 말입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쉴 틈도 없이, 졸업한 다음 일까지 생각해야 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시스템이란 말입니까?"
'딱히 시스템이라고 말할 건 없는데.' 하면서도 나는 니시지마의 '일장연설'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이러니, 학생들이 세계 정세를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제 한 몸 챙기기에도 벅차니까요. 회사에 들어가면 나아질 거 같습니까? 마찬가집니다. 다음 일, 또 그 다음 일, 언제까지고 장래를 생각하느라 현재를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 보십쇼."
니시지마는 그런 다음,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 중동에서 일어나는 미국 전쟁에 대해 언급했다. 자기도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있으면서 니시지마는 직접 그 고통의 최전선에 나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사람들이 부상을 입든 죽어 나가든 상관들을 안 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이겁니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나랑은 상관없소 하고 아주 합창을 한다고요." (p289_사막)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만들어준 시스템은 현재를 즐길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언제나 열정을 지급하면서 한껏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기량을 갈고닦으라고 한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철저히 타인에 의한 평가와 철저히 타인에 의해서 삶의 만족도가 결정되는 건 절대 옳지 못하다. 내 삶은 내가 평가해야 하고, 내가 만족해야 삶을 즐길 수 있다. 그게 진짜 청춘이 아닐까?
나는 아직 이십 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올해가 가면, 내년부터는 20대 중반의 나이 카운트가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 있기에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집의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모든 가계가 부채를 갚아나가느라 허덕이고 있고,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하는 건 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대학교에 가거나 정처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환경이라도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는 게 지금 2014년 대한민국의 청춘이다. 비록 모든 청춘이 그런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정치인들에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녕 청춘은 당신들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합니까?" 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청춘이 바로 그런 청년들이다. 이런 사람이 있어 우리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실 수 있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생'을 언급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그들의 발언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늘 논란이 되는 건 그들은 절대 역지사지를 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걸어온 길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그들은 가볍게 말하지만, 그 가벼운 말에 허덕이는 시민을 생각해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은 감정 싸움이 되면서 서로를 잘못을 모른 채로 수평선을 그린다.
아프니까 참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상하 관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수평 관계에서 마주 앉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는 고민을 하면서 좀 더 나은 대책을 찾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부분부터 고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2015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다, 아프면 환자인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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