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에서 김태호까지, 예능PD 6인의 리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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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예능PD는 어떻게 놀면서 일할까?


 사람은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싶어 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면서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아, 하기 싫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이라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그 인생은 값어치가 없는 작은 인생이 되어버리는 걸까?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은 절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없게 되어 있다.'이라는 불편한 진실도 잘 알고 있다. 일을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맞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스트레스를 겪고, 마찰을 빚으면서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지금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미생》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것을 직장인의 시선으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


 그럼에도 우리는 '신나게 일하고 싶다'는 갈증을 쉽게 잊어버리지 못한다. 종종 사람들이 '나는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이라며 자책하는 이유도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있다. 직장인이 삶을 살다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같은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그러다 우리는 TV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간판 예능인 《무한도전》과 《1박 2일》,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부럽다. 정말 나도 저렇게 놀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을 텐데.'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냥 그들이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강한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나도 그랬었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웃을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내가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블로그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많지 않다. 매달 지출되는 비용을 제외하면, 거의 잔액이 0에 가까워진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기에 그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언제나 다큐처럼 일해도 사는 것이 예능처럼 신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책은 우리에게 당장 삶을 즐겁게 바꾸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책의 저자가 인터뷰한 예능PD 6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산더미처럼 쌓인 자기 일을 즐기면서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노지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이라는 제목은 조금 우리에게 괴리감을 가져다주는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다큐처럼 일하더라도 예능처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언제나 경제적인 문제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로 신나게 웃으며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삶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책의 저자가 인터뷰한 예능PD 6인도 그렇다. 우리는 그들이 언제나 즐겁게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항상 산더미처럼 쌓인 일과 마주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언제나 계획 대로가 아니라 불분명한 일이 터지면서 계획을 수정해나가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갑작스럽게 출연진이 나타나지 않거나 배가 운항을 하지 않는 등….


 그러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에 삶이 즐거운 게 아닐까? 비록 내가 세웠던 계획대로 인생이 착착 진행되지 않더라도 그 불분명한 길에서 즐거움이 있으니까. 인생이 그냥 곧은 직선 도로라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나영석 PD는 "늘 100퍼센트 이상을 기획하지만, 50퍼센트 정도만 기획을 충족시킬 때 《1박 2일》만의 재미가 만들어집니다."이라고 말하는데, 인생도 그와 같은 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또 그의 삶이 흥미로운 건 그가 말한 50퍼센트 기획과 50퍼센트 우연의 법칙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한 대로 굴러가는 삶만큼 재미없는 게 있을까. 사람들은 계획된 궤도 바깥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늘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삶은 늘 변화하고 그때마다 계획 바깥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떤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어떤 것은 의외로 얻어질 수 있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신의 계획대로 100퍼센트 이루며 살겠다는 건 오만이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신의 100퍼센트는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니까. 우리는 어쨌든 한정된 자원과 환경 속에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무수히 많은 지구적인 위기는 결국 누군가 홀로 계획한 100퍼센트의 빗나간 확신과 오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자와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만일 100퍼센트 모든 걸 계획해 방송으로 내보낸다면 그것은 어쩌면 시청자들이 참여할 공간을 빼앗는 것이다. 쌍방향 소통 시대의 방송이란 제작진 혼자 계획한대로 가는 패키지여행이 아니고 시청자와 더불어 그때그때 만들어가는 자유여행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리저리 끌고 다니거나 끌려 다니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듯 독불장군식의 방송은 횡포와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영석 PD가 견지하고 있는 50:50의 법칙은 방송에도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p37)


나영석, ⓒ이투데이


1,000개의 답, 두려운 게 아니라 즐거운 것이다.


물론 PD도 직장인이다. 나영석 PD 역시 직장인의 자세는 결국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잘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간관리자가 된 그 역시 후배를 볼 때 성과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태도를 본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새 선배가 된 자신이 후배에게 해줘야 할 것은 이명한 선배가 그랬듯 그들이 잘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능하면 칭찬해주고 가능하면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런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로서 그도 트렌디한 것과 유행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트렌디한 걸 챙겨보지는 않는다. 챙겨보자니 동화될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노하우가 2차 저작물을 보는 것이다.

"<겨울왕국>을 보는 대신 <겨울왕국>을 보고 쓴 감상 글을 봐요. 그러면 유추해서 생각할 수 있거든요. 이랬을라나? 일부러 안 보는 부분도 있어요. 굉장히 좋은 예능이 있다고 치면 옛날에는 저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그런 버릇을 일부러 갖게 됐어요. 보지 않고 상상만 하는 거죠."

사람들은 너무 많은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특히 획일적인 사지선다형 문제 속에서 인생을 바라봤던 우리는 100가지, 1,000가지의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에 당황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다. 1,000개의 답이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낯설음을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스스로 즐거워지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나영석 PD는 은연중에 알고 있다. 그것이 여행이든 삶이든 아니면 일이든. (p51)


 나는 이 책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를 지금 일을 하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내 일이 즐겁지 않다.',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그 방식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 일에 잘 모르기 때문에 즐겁지 않을 때도 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반복하면서 박자를 맞추는 법과 힘을 빼는 법을 배운다. 이런 단순한 연습만 반복하다 보면 사람은 지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나는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본을 다지는 시간이 지나 연주를 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는 내가 원했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에서 읽을 수 있는 여러 PD의 사연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냥 일로 했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나갔고,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씩 야근이나 밤샘을 해야만 하는 고된 편집을 힘들어도 할 수 있고,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만의 방식으로 신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도전은 무모해 보일 것이다. 또한, 계획 없이 출발하는 여행은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갈 수밖에 없다. 내 즐거움과 행복이 거기에 있다면,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 건 불행이다. 안 해보고 말하지 말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는 이 이야기를 멋지게 잘 담았다. 우리의 웃음을 만들어주는 예능PD 6인의 이야기를 통해 다큐처럼 일하면서도 예능처럼 신나게 사는 법을 읽어보자. 어쩌면 그들이 전하는 진심이 단긴 어떤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금 그저 슬픈 분위기의 다큐멘터리 BGM만 흐르는 내 일상을 신나는 예능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힌트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신원호 PD와 김태호 PD의 이야기 중 인상 싶었던 부분을 남긴다.


신원호 PD는 누군가 그어놓은 구별 짓기의 선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이리 넘고 저리 넘어갔다. 그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경계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일 뿐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스스로도 처음부터 그것을 깨닫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역시 만만찮은 장르의 경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고집조차 남달랐다. 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신원호 PD에게 유연함을 부여했고, 그 유연함이 차츰 경계를 무력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자꾸만 빠른 성공의 길을 제시하는 사회에서는 꿈조차 경계와 구별 짓기의 산물이 되기 쉽다. 의사, 변호사 같은 '사'자 직업은 성공의 지름길이고 소설가, 시인, 화가는 가난한 삶의 지름길처럼 인식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꿈조차 강박이 된다. 그리고 그 강박은 성공과 실패, 부유함과 가난함, 행복과 불행 나아가 호불호로 갈리는 취향의 경계까지를 만들어낸다. 이 길로 가면 성공가도일 것이고 저 길로 가면 험난할 것이다. 경계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해체해버린 신원호 PD. 그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 경계 해체가 가진 가능성의 지대다. 어느 하나의 원칙에 손을 들어주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모두 닫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경계의 위에 서게 되면 그간 보지 못했던 가능성이 열린다. 누군가 낸 길에 구획되는 삶은 결코 경계 바깥이 주는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누군가 낸 길 위를 그저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 위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것인가. (p100)


<무한도전>에서는 가끔식 실패한 미션이 등장한다.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는 어마어마한 인력이 투입됐지만 소심한 박명수 때문에 순식간에 망가져버린 '좀비 특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실패 사례는 오히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입증하는 하나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도전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것이 기존의 틀에 박힌 다른 프로그램들의 스토리였다면 실패해도 계속 도전한다는 것은 <무한도전>의 스토리가 되었다.

무언가를 하다가 잘 안됐을 때 우리는 흔히 "이건 나랑 잘 안 맞나 봐" 하며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무한도전>의 세계에서 이런 포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애초에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은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시도해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그냥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렇게 삶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넉넉한 체험과 도전의 공간으로 바뀐다.

<무한도전>이라는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주는 것은 출연자들이 성장한 이후부터 이 프로그램이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해왔다는 점이다.

김태호 PD가 행하는 끝없는 실험과 도전 정신은 그래서 현대의 아티스트들의 도전과 상당히 닮아 있다. 무엇이 나올지 스스로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할 거라는 것이다.


김태호 PD, ⓒ오마이뉴스


세상은 어떤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계관에 의해 움직인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얘기하기 전까지 세상 사람들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살았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인간이 중심인 세계관. 그러니 신 또한 인간을 각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입증이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 투영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많은 행성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은 또 다른 세계관을 담아낸다. 그것은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 또한 무수한 행성과 그 행성에 사는 생명체 중 하나라는 세계관이다. 온리 원의 세계가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

달라진 세계관은 달라진 삶을 요구한다. 그러니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며, 누가 더 잘 산 것이고 누가 못 산 것이라는 기준 따위는 없다.

<무한도전>을 통해 김태호 PD가 매번 하는 것처러 일단 던져보는 것이다. 결과가 예상 밖이어도 그리 놀랄 필요는 없다. '아니면 말고' 하는 삶의 태도. 김태호 PD는 어쩌면 <무한도전>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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