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4. 6. 28. 07:30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어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아, 정말 좋은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이때까지 쉽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런 책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호기심으로 읽은 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아, 정말 좋은 책이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뭐, 개인적인 감상이라 다른 사람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 책을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인터넷 서점 응24에서 이 책 저 책을 카트에 담고 있을 때 '오늘의 책' 코너에서 우연히 그 책을 보게 되었다. 꽤 흥미로운 제목이라 관심이 갔었는데, 짧은 요약 설명을 읽어보니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구매하기로 했고, 비로소 며칠 전에 책과 만나볼 수 있었던 거다.
내가 우연히 만나고, 책을 다 읽었을 때 '아, 정말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책은, …바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노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구우면서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한 소박한 시골 빵집 주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뭔가 책의 이름이 상당히 신기한데,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제목 덕분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흥미가 생겨서 이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된 한 사람이니까.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극하며 공산주의를 이야기하는 그런 책으로 알려졌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서점에서 구매한 자본론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라며 체포된 대학생의 사연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렇게 무서운 책이 아니다. 무서운 건 그 당시의 권력이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권력이라는 폭력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단순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론을 직접 파고들기에는 꽤 어려움이 있는데, 이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그 자본론에서 우리가 읽어보면 좋은 이야기를 정말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크게 '제1부 부패하지 않는 경제'와 '제2부 부패하는 경제'라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 부패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저자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만나게 된 계기와 마르크스와 노동력과 관련된 이야기, 균과 기술혁신 이야기 등을 비롯해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책은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정말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다.
자본가가 기술혁신으로 얻은 커다란 이윤을 가격경쟁으로 잃는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노동자에게 즐거운 소식이다. 분명 생활이 편해질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임금도 떨어진다.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가 생활비와 기술습득 비용, 자녀 양육비의 합계액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상품의 가격이 싸지면 생활비와 양육비까지 모두(경우에 따라서는 기술습득 비용까지) 낮아진다. 그 결과 노동력의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상품의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돌고돌아 임금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다.
그뿐이 아니다. 기술혁신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을 단순하게(또는 쉽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이스트를 환영했던 이유도 노동의 수고를 확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뜻 제빵 기술자에게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사실은 노동자의 목을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도 역시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노동이 단순해지면 기술은 필요 없어진다. 그러면 기술습득 비용이 굳는 만큼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다. (p67)
첨가물과 농약 같은 식품가공 분야의 기술혁신도 마찬가지 작용을 일으킨다.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섭리에 반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이 같은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나아가 싸구려 먹거리는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시키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써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간다. 실상은 지금까지 본 그대로다.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돈이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금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바로 이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내용이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의 절반을 차지 한다. (p80)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노지
그리고 '제2부 부패하는 경제' 편에서는 저자가 시골 빵집에 자리 잡는 과정과 누룩균을 이용해 주종빵을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빵 굽는 과정을 왜 이야기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누룩균이라는 효모를 발효시켜 빵의 반죽을 숙성시키는 과정 그 자체가 저자가 말하고 싶은 부패하지 않는 돈이 낳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거다.
이 부분에서는 그가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가고, 주종빵을 만들기 위해 자연재배를 한 재료와 좋은 물을 찾아 고민하는 부분을 소박한 일상 이야기로 읽어볼 수 있다. 단순히 저자 한 명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가 만났던 여러 사람, 그리고 아내 마리와 그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다. 그래서 책은 소박한 일상이면서도 그가 걷는 발자취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끝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시골빵집에서 누룩균을 채취해 빵을 굽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건 나만 아니라 이 책을 읽었던, 혹은 읽은 다른 독자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렵지 않지만, 정말 좋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책이기에 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상품을 정성껏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만든 상품이라도 무의미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빵에 포함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부당하게 부풀리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으면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중하고 공손하게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의심스럽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 즉 품질과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는 재료는 쓰지 않는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재료 및 균과 제법만을 이용해,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빵을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에는 정당한 가격을 제대로 지불한다.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돈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올바르게 쓰고, 상품을 정당하게 '비싼' 가격에 팔 것이다. 착취 없는 경영이야말로 돈이 새끼를 치지 않는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p196)
언제였던가. 단골손님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빵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빵을 참 좋아하셨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꼭 빵을 대접하고 싶어요. 다루마리의 빵을 드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의뢰였다.
늦지 않게 보내드릴 수 있을까? 평소보다 더 진심을 담아 빵을 구웠다. 그 빵에 쏟은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택배 포장에도 온갖 정성을 쏟아 급히 보냈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을 받았다.
"저희 아버지는 다루마리의 빵을 드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입에 문 빵 한 조각을 맛있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댁 빵이 저희 아버지의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빵은 생명의 양식이 되고 마음의 양식이 된다. 빵은 먹는 이의 몸과 마음을 살찌운다. 우리 집 빵은 정말 그렇게 하고 있을까?
그렇게 매일 나 자신에게 물으며 빵을 굽다보니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주변에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렇게 기쁘고 고마운 일은 또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윤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빵을 굽고 싶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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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나는 무엇보다 저자 와타나베 이나루 씨가 다루마리에서 만드는 빵을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만든 빵은 얼마나 맛있을까?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정말 궁금하다. 누룩균과 자연재배로 재배한 밀과 쌀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주종빵. 언젠가 다시 일본을 가게 된다면 가츠야마에 있는 다루마리를 찾아가 보고 싶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저자의 말을 따라가며 즐길 수 있었던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지도 않은 이 책은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굽는 주종빵의 그 맛있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주종빵의 맛을 다른 사람도 느껴보았으면 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 이런 책을 읽는다는 건 분명히 내게 도움이 되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만난다면, 긴 고민 필요 없이 꼭 집에서 한 번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이런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독자에게 맛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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