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저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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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저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하자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마치 생명이 메말라가는 황량한 사막 같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찾기 위해서 오늘 당장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직장에 나가 재미없는 일을 하거나 학교와 학원에 나가 재미없는 공부를 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해 뜰 날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현상 유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해가 지면, 내일은 해가 뜨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글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융통성 있는 사회생활'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규칙을 준수하고,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상형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건 썩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시키는 대로 평범히 사는 게 좋은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삶에 '나 자신'이 없으면 그건 정말 좋은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에 내 책장에 있던 《사막》이라는 소설을 다시 한 번 더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에 다시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사막》은 이전에 읽으면서 그냥 가볍게 넘어간 부분을 곱씹으며 읽을 수 있었는데, 오늘 여기서는 소설 《사막》에서 읽을 수 있었던 몇 개의 부분을 인용해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막과 그 사막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막, ⓒ노지

 

"당신들, 계속 그렇게 냉담한 얼굴로 앉아 계십니다만."

니시지마의 연설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주위의 반응은 싸늘해져 갔다.

"그런 식으로 주변과 거리를 두고, 나만 잘살면 된다, 대충 남들만큼만 살면……. 그렇게 사는 걸로 괜찮겠냐는 말이에요. 니체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죽기 살기로 싸우는 칼잡이에게나 배만 부르면 좋아라 하는 돼지에게나 똑같이 거리를 두고 있다면, 그것은 그저 범인(凡人)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요." (p20)


 위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은 《사막》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명인 니시지마가 신입생 환영회 때 갑자기 들어와 연설하는 부분의 이야기이다. 단순히 그는 마작에서 평화(핑후라고 함.) 역을 쌓다가 실패하고 와서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인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단순히 패배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그의 '대충 남만큼만 살면…'이라는 말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 이 소설이 발매되었을 때에는 어떤 배경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니시지마가 말하는 사람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더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면서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주변과 거리를 두고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갖은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 중 대표적으로 예로 들 수 있는 직업군이 정치인과 기업인이 아닐까. 물론, 정말 좋은 정치인과 기업인도 있겠지만, 그저 그들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과 거리를 두고 언제나 계산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그 밑에서 사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 '불만이면 너도 저렇게 되던가?'는 말을 하면서 문제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그 문제를 일으키는 한 사람이 되려고 할 뿐이다. 그저 남들만큼만 하면 된다, 중간만 하면 된다… 이게 우리나라의 문화적 성장을 멈추고 있었던 거다.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대는 그냥 일본이라도 괜찮습니다. 일본의 어느 시골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산다고 칩시다."

니시지마자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여자들의 시선이 침의 궤적을 따라가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떨어졌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주민이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말이죠. 고열로 곧 죽어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니?"

내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야기는 지금부텁니다."

니시지마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 '바로 그때 당신들 주머니에 항생제가 들어 있습니다. 타임 슬립을 하기 전에 병원에서 받은 약이 들어 있다고요. 그래서 그것을 마을 주민에게 줄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깨달은 겁니다. '내가 거슬러 올라온 이 시대에는 아직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여기서 항생제를 사용하면 역사를 바꾸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아, 그거야 흔히 있는 얘기지. 영화라든가 소설 소에 말이야. 타임 슬립해서 역사가 바뀐다는 하는 얘기."

"그건 안 되지, 음."

야마다가 충혈된 눈으로 니시지마를 쳐다보았다.

"자기 맘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당장 눈앞의 일만 생각해서 역사 전체를 좌우하면 되겠냐?"

"바로 그겁니다." 니시지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까 말한 모금 활동도 마찬가집니다. 역사라든가 세계라든가 하곤 상관이 없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 위기! 그걸 해결하면 되는 겁니다. 항생제가 있으면, 그냥 주면 됩니다.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그냥 막 주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도 못 구하는 인간이 더 큰 일에 일조할 리 있겠습니까. 역사는 무슨 얼어 죽을 여삽니까.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면 되는 거라고요. 지금 내 눈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이 내일, 이 세계를 무슨 수로 구한답니까." (p119)


 언제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그런 예가 없었다'고 우물쭈물하며 새로운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건 정치인만 아니다. 평범히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조금 더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지만, 막상 그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인재가 개혁안을 가지고 나왔을 때에는 '그래도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거 아니냐?', '그래. 아직 우리나라는 일러.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거야.'하고 뒤로 미루기 바쁘다. 그게 현실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바란다는 말인가. 이러니 어느 정치인 아들의 입을 통해 '미개한 국민'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느 정치인의 아내로부터 '옳은 말이지만,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다'는 말을 들어도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뭐야!?'하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거다. 역사는 무슨 얼어 죽을 역사인가. 그저 과거에 그런 예가 없었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 내 손에 쥔 이익을 놓치기 싫은 한 명의 소인일 뿐이다. 정치인이나 국민이나.


 우리가 이 불편한 진실을 억지로 계속 외면하는 이상, 우리는 절대로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할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 황량하게 생명이 메말라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니 반성해야 한다. 어휴.)



"기타무라, 설마 벌써 입사시험 공부 시작한 건 아니겠죠?"

"사실은 맞아. 얼마 전부터 시작했어."

"아니 이런. 정말입니까? 아니, 어쩌다 이런 학생들이 된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안타까움에 겨운 듯했다.

"저기 말입니다."

그러더니만 한층 소리를 높였다.

"아니, 입학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란 말입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쉴 틈도 없이, 졸업한 다음 일까지 생각해야 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시스템이란 말입니까?"

'딱히 시스템이랄 건 없는데.' 하면서도 나는 니시지마의 '일장연설'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이러니, 학생들이 세계 정세를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제 한 몸 챙기기에도 벅차니까요. 회사에 들어가면 나아질 거 같습니까? 마찬가집니다. 다음 일, 또 그 다음 일, 언제까지고 장래를 생각하느라 현재를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 보십쇼."

니시지마는 그런 다음,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 중동에서 일어나는 미국 전쟁에 대해 언급했다. 자기도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있으면서 니시지마는 직접 그 고통의 최전선에 나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사람들이 부상을 입든 죽어 나가든 상관들을 안 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이겁니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나랑은 상관없소 하고 아주 합창을 한다고요." (p289)


여름방학이 끝나고 클래스 전체 술자리가 있는 날, 누군가 미 공군의 오폭으로 피해를 입은 마을 이야기를 꺼내며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끝맺은 데 대해 니시지마가 흥분하며 맞섰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는 이 상황이 나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말은 장광설로 이어졌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런 술집에서, 학생들이 맥주를 마시며 어디선가 죽어간 사람들을 두고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같이 마음 아파하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원조차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적어도 그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은 갖고서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니시지마는 개탄하면서 덧붙였다.

"전쟁에 대해 말할 때는 좀 더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302)


"만나는 사람마다 날 붙잡고 장래를 생각하라고 채근입니다. 나는 아직 학생인데 왜 벌써들 그렇게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야, 너도 네 장래에 대해 생각해 두는 게 좋아. 딴 데 정신 팔고 있다간 학교 생활도 금방 끝이라니까."

"나한테는 지금이 바로 황금기입니다. 지금 이때뿐이라고요. 과거나 앞으로의 일은 관심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아니, 사람들은 뭐 하는 겁니까.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다든가, 공무원이 되겠다든가, 사법고시에 붙겠다든가 하는데, 그게 다 뭘 위한 겁니까? 말로는 그러면서들, 요즘보면 개나소나 빈둥빈둥 할 일 없어 보이는데요, 뭘." (p450)


 위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낮은 이유는 지금을 즐길 권리가 내게는 없다는 잘못된 착각에 있다. 아니, 잘못된 착각이 아니라 어른들이 '너희에겐 그런 권리가 없다. 내일을 걱정하며 공부나 해라'고 몰아붙이기 때문에 감히 사회 문제에 관심을 여유조차,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조금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거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자신도 엉망으로 살면서 '너는 그러지 마라'고 하고 있으니 어찌 모순된 행동이라고 지적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건 지금 내가 앞에 놓인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또 내일이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나도 아직 20대에 불과하지만, 주변에서 '일해야 한다' '졸업해서 취직해야 한다'고 강박 관념에 휩싸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않은 채 그저 남이 가는 대로 가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참 아쉽다. 아쉬우면서도 괜스레 '도대체 무엇이 우리 20대를 이렇게 오늘을 즐길 수 없는, 절박한 사람으로 만들었나?' 라는 생각에 잠기다 욕이 나오기도 한다.


 '내일은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허투루 시간을 쓰면서 사고를 치는 게 아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지금의 가치가 내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오늘 내가 즐길 수 있기에 내일이 즐거운 거다. 오늘을 가치 있게 보내고 있다고 확신하기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거다. 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면 좀 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우리들은 '사회'라 불리는 사막의 냉엄한 환경에서 상상 이상의 고초를 감내하게 된다. 사막은 바싹 메말라 있고 불펼불만과 냉소, 방관과 탄식으로 얼룩져 있다. 우린 그곳에서 매일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고, 그러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 환경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도리이를 비롯한 친구들과는 한동안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겠지만 점차 자신의 역할과 일상에 휘둘리다 차츰 그것도 소원해질 것이다. 나는 원거리 교제를 계속하기에 지쳐 하토무기 씨와 반년도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또 몇 년이 지나면, 이 친구들과 보낸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가 참 그립다.'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오래전에 본 영화 애기를 할 때처럼 읊조리고, 결국 우리들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묻힐 것이다.

글쎄,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p602)


 나는 이 글을 나 자신에게 하는 충고로 하기 위해서, 제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우리는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어질 지금이 기적이다'는 사실을 가슴 속에 새겨야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오늘도, 우리가 슬퍼하는 오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필요가 있고, 조금 더 여유 있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진로와 취업'만을 걱정하면서 아등바등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 아깝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할 수 있는 건 우리다. 언제나처럼 내 일과 아직 있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코앞에 닥쳐있는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즐기지 못하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잘못된 행동을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만큼은 절대 반응이 무뎌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무뎌지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시들시들 말라죽어 가는 하나의 힘 없는 생명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동시에 '내가 하고 싶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여기서 줄곧 언급한 이사카 코타로가 쓴 소설 《사막》을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기를 바란다. 정말 매력적인 책이고,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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