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매서운 겨울, 변호인 노무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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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칼바람이 부는 매서운 추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변호인 노무현이 그립다


 지난 이명박 정권때부터 대한민국의 역사 시계는 조금씩 뒤로 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그 시곗바늘은 너무 추운 한겨울의 시간에 멈춰서 도무지 바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한 겨울 추위 속에서 꽁꽁 얼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한 편의 영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화 《변호인》이다.


 영화 《변호인》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단순히 '바보'의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과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영화 《변호인》은 꽁꽁 얼어가는 시대 속에서 작은 불길이 되어 얼음을 녹일 수 있는 하나의 촉매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득권과 친일파 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은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약탈하지 못했던 10년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고,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일이 일어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너무 통탄할 일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람들이 현실을 바로 볼 수만 있었다면, 왜곡된 언론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진작 알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변호인》에 대한 뜨거운 성원은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 글을 썼었지만,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변호인 노무현》이라는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변호인 노무현의 이야기는 영화 변호인보다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 참여 정부 시절에 우리가 했던 오해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변호인 노무현, 한 명의 인간 노무현, 바보 노무현, 봉하마을의 한 아저씨(할아버지)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에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변호인 노무현, ⓒ노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컴퓨터에 글을 쓰기 전에 펜으로 노트에 글을 쓰고 있음에도 답답함에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우리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바보 노무현의 삶이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금에서야 알게 된 그런 이야기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 박근혜 정권까지 기득권과 친일파 세력과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들은 하나같이 참여 정부 시절을 비난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한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면서도 당당해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종북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이 책은 그런 손가락질을 받은 우리에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자주 만나고 대화했기에 노무현 변호인은 피의자들과 한 몸 한 마음이 되어 재판에 임할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고하게 피고석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며 격앙된 어조로 말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재판장으로부터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재판장에서 변론을 하던 중 노무현 변호인은 "알리하고 포먼하고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 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 행위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여섯 달의 공방 과정에서 노무현 변호인은 열성을 다했지만, 재판장은 피의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저 순수하고 열정적인 꿈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들은 3년, 5년, 7년이라는 중형을 받아야 했다. 동일한 사건으로 따로 재판을 받은 한 사람은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어처구니없게 유죄선고를 받앗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양심적인 판사는 진주로 쫓겨 갔다가 끝내 법옷을 벗어야만 했다. (p54)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언제나 아들이 '모난 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앞에 나서지 말라고 말씀하곤 했다. 아무리 그래 봐야 달걀로 바위 취기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무현은 그 '모난 돌'들에 의해, 달걀로 바위를 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믿어 왔다. 4·19 혁명과 군사독재의 종말을 가져온 6월 항쟁이 달걀로 바위를 치는 신념에 찬 사람들에 의해 얻어진 것처럼, 끊임없이 달걀로 바위를 치면 언젠가 바위도 깨지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도 바위를 뚫을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 '정 맞는 돌'이 되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새처럼 당을 바꾸고 신념을 바꾸는 정치인들 속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 여겼다. 아이들에게는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정의로운 이들은 언제나 실패의 길을 걸어야 했던 역사. 돌이켜 보면 언제나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란 패배자뿐이었다.

무현은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생을 마칠 떄까지 어떤 경우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지조를 지킨 지사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민족에게 벗어나기 힘든 운명과도 같았던 분단에 대해 끝까지 맞선 분이었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홀로 삼팔선을 넘었던 김구, 그러나 그도 역시 실패한 역사를 기록했다. 비록 그분의 인생은 후대에 존경받고 있지만, 구분처럼 살아야 한다면 과연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정의를 따르면 죽거나 망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걸어온 길이었다. (p91)


 노무현에 반대했던 세력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정책과 논리마저 뒤엎으며 물어뜯는 개가 되었었다. 그리고 다시 정권을 손에 넣었을 때, 슬그머니 뒤엎었던 그 정책과 논리를 다시 뒤엎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더욱이 지금의 정부는 소통하지 않는 정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소통하는 일이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민이 국가 기관과 권력 위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 기관과 권력은 다시 국민을 강하게 짓눌렀다.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건 허울뿐이다. 단순히 제 뱃속만을 채우려고 안달이 단 가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안녕들 하신가요?'를 묻는 고려대의 한 대학생이 써 붙인 대자보가 이 사회에 묻고 있는 건 '지금 이대로 정녕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이다. 역사의 시계는 자꾸 뒤로만 가고 있고,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할 때 겨누었던 권력의 총칼을 지금 정부가 우리 국민들에게 겨누고 있다. 총칼을 겨누는 그들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뭐? 반대해? 이 종북 빨갱이 새끼."


참여정부의 시도는 무엇이 됐든 간에 일단정지를 당했다. 여소야대의 국면, 한나라당이 무조건 반대하고 나온 것이다. 때로는 한나라당이 17대 총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스스로 파기하면서까지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특히 어려웠던 때도 있었는데, 국민연금과 관련해 방안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고심 끝에 어렵게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더니, 한나라당은 공무원연금 투자 운용 체계를 개선하면 주식 투자를 해서 주가가 올라갈 경우 17대 총선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어 버렸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 (중략)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실험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으로, 그리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이미 1997년 대선 때에도 '내각제'가 공약으로 나오기도 했고, 2002년 대선 역시 양당 후보 모두가 임기 안에 국민의 뜻을 모아 개헌을 추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 다음 선거에 평가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전략 과제나 미래의 과제들이 연관성과 지속성을 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도 포하모디엇다. 그는 대통령의 임기를 1년 줄여서라도 그것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공약에서 내걸었던 국민과 한 약속들을 지키고 싶어 했다. 책임감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면도 없지 않았다. 충분히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은 애초에 공약을 깨고 이 역시 '장기 집권을 위한 정략'으로 간단히 치부해 버렸다. (p139)


(웃긴 건 그 당시 한나라당의 앞에서 '장기 집권을 위한 정략'으로 간단히 치부했던 박근혜는 이번 대선 공약에서 4년 연임제를 내걸었다는 사실이다. 4년 연임제는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 발전을 위해 너무도 필요한 제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전에도 이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비로소 실행에 옮기려고 하였을 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주장하며 자신이 이야기했던 논리마저 뒤엎어버렸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내걸었던 4년 연임제를 실시할 수 있을까.)


지도자는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일 수도 있다. 국가의 지도자가 결정하는 정책 방향에 따라 국민의 목숨이 결정된다.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미에게 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만큼,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p169)


 이 책은 교학사 같은 친일파가 역사 왜곡 교과서를 밀어붙이고, 국정 교과서를 지정해 일제 시대 일본이 저질렀던 민족말살 정책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려고 하는 현 정권 인사들의 잘못된 태도를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몹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진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진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누군가는 이 책은 지나치게 노무현을 미화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논란마저 잠재울 수 있도록 어디까지나 인간 노무현을 이야기하고, 바보 노무현이 살았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 시절과 비교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더니 변했다고들 했다. 떄로는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원칙'을 내세우며 다시 원칙을 되찾으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원칙을 내던진 적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원칙과 가치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그의 눈은 분명 예전의 원칙 그대로 '지금, 여기'를 보고 이썽싿. 거기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삶이나, 버려지고 있는 농촌 사람들의 삶 같은 것들, 언제나 그런 사람들의 삶 위에 있었다. 다만 좀 더 멀리 보고자 했다. 서민들의 어렵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아도 단기부양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멀리 보면 옳은 선택이었다.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그가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꿈을 얘기하고 희망을 얘기한 것은 그래서였다.

때론 작은 오류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 역시 예측할 수는 있어도 정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의 선택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최선의 결정이라는 마음으로 담담히 걸어갔다.언제나 최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 역시 100퍼센트 국민의 마음을 흡족시킨 후보여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상대 후보보다는 낫다는, 최선의 선택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모든 일이 그러했다.

그 길을 향해 참으로 험한 바다를 헤쳐 가고 있었다. 거센 바람과 험한 파도, 그리고 수없이 뜻밖의 암초를 만나야 했다.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들과,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 언론과 야당의 흔들기, 혹은 돌발사고 같은 것들. 그러나 참여정부는 침몰하지 않았고, 좌초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외로울 뿐이었다. (p174)


 책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건 왜곡된 기록이 아니다.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다. 진심이다. 오로지 진심 하나다. 영화 《변호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화려한 제작 기술에 기댄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 책 《변호인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보로 살았던 한 사람, 그 바보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떤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를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읽어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1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대통령 시절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었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확실한 진전이 있었다. 역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거대한 물줄기까지는 거역하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었다. 그가 무능력한 정부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제자리를 찾아 놓기 위해 노력했던 권력 기관들은 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노 같은 것, 슬픔 같은 것, 한동안 깊은 상실감이 그를 덮쳤다.

언제부턴가 늘 열려 있던 대문은 굳게 닫혔고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처져 있었다. 재임 시의 기록물 복사본을 가지고 귀향한 것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검찰에 의해 측근과 친형, 가족들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었다.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국민의 실망 앞에서 그가 언제나 떳떳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준 도덕성은 이미 상처를 입었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비난을 받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 보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걸어온 길이었다.

잃어버린 10년……. 돌아보니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퇴임 후 역사는 그가 현평생르 바꾸어 놓으려고 했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후퇴하고 있었다.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을 향해 물대포가 쏘아지고, 더러는 붙잡혀 가는 사람도 있었다. 촛불시위 이후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토록 애를 쓰며 얻으려고 했던 민주주의 가치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세상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세상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정치, 하지 마라."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얘기했다. 얼마간은 진심이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와 명예를 좇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성공을 위해 쏟아야 할 노력이나 감수해야 할 부담에 비하면 권세와 명예란 실속 없는 것이고, 그나마도 짧았다. (p239-240)


 책을 읽을 때, 마지막에는 눈물이 자꾸 앞을 보지 못하게 해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은 여전히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전 친일파 출신 기득권이 힘을 잃었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그리움은 그래서 더욱 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는 매서운 한겨울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 민주주의의 봄은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언제 다시 한 번 더 따뜻한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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