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본 부모와 자식 관계의 불편한 진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3. 11. 21. 07:30
아이의 인생은 부모가 결정하는 불편한 진실
요즘 이민호와 박신혜가 등장하는 드라마 '상속자들'은 드라마 '비밀'이 종영되면서 그 인기에 탄력을 얻고 있다. 드라마 '상속자들'은 재벌 제국 그룹의 아들인 김탄(역:이민호)이 사회배려자 출신인 차은상(역:박신혜)를 좋아하는 그런 사랑 관계를 재벌 간의 갈등과 재벌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제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갈등을 만들며 재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연애 이야기와 재벌 상속자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내가 이번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본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학교 2013'에서도 교육 문제와 관련해 부모와 자식 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 '상속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지원을 해주기보다 지금 부모가 하는 일을 억지로 이어가게 하려고 한다거나, 아이의 의견을 일절 듣지도 않은 채 오로지 부모의 의사로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려고 하는 일들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재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재벌이든 아니든… 어디서나 일어나는 법이다.
드라마 상속자들, ⓒsbs
아마 이번에 수능을 친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서도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볼 수 있었던 부모와 자식 간에 겪는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과 학과와 부모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요즘 아이들은 워낙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형처럼 자랐기 때문에 그런 갈등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겪지 않고서는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이런 갈등이 가정불화와 존속 살해라는 범죄로 이어지는 확률이 상당히 높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헤어나올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자신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척을 하고, 뒤에서는 일진보다 더 악랄하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가짜 모범생'이라는 범죄자들은 부모님의 욕심이 만든 전형적인 사회적 문제아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고 해도 아이의 개인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그건 명백히 인권침해다.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부모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날 이렇게 대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를 자신의 욕구를 대신 이루어주는 그런 매개체로 생각해서는 절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비록 아이가 일순간 자신의 말대로 진로를 결정하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부모를 봉양하리라는 보장은 절대적으로 희박하다. 혼자 외롭게 쓸쓸히 죽어가는 노인분들은 그런 잘못된 교육이 만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 자신의 자녀를 죽인 여자 분들의 이야기를 꺼내게 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셨는데요. 나쁘게 보면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면 내가 죽고 나서 이 아이가 어차피 힘들게 살 텐데, 같이 죽자는 마음일 텐데요.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잖아요.
표: 그렇죠. 한국적인 범죄죠.
지: 외국 같으면 어느 정도 컸으면 '이제 니가 알아서 먹고 살아'하면서 독립시켜버릴 텐데요. 외국이라고 해서 그런 범죄가 없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좀 더 많은 범죄일 것 같습니다.
표: 한국적이라는 것이 두 가지 의미일텐데요. 여전히 가부장적, 소유적 부모 자식 관계, 부모가 자녀를 소유한다는 개념이죠. 이게 어렸을 때는 부모가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는 책임을 져야 하고, 자기의 삶이 없는거죠. 자녀를 위해 살아야 되고. 서로에게 고통스러운, 전근대적 문화가 남아 있는 겁니다.
지: 그러다 보니까 자녀가 스스로 뭘 선택하려고 하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그러잖아요.
표: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그 자체가 사실은 정적인 문화의 소산이라고 보기보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보험으로 삼고 있다. 자녀 잘 키워서 덕을 보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죠. 명시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요.
지: '너는 우리 가문의 희망이야.'(웃음)
표: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그게 결국은 그 자녀가 검사, 판사가 되면 그 자녀를 이용해서 이런 저런 청탁이 들어가는 거예요.
(공범들의 도시 p36)
지금도 이런 갈등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겪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부모가 시켰던 일만 하고, 내 의사는 입 밖으로 내보지도 못한 채… 하나의 살아있는 인형이 되어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이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므로 제 일에 자부심은커녕 일말의 즐거움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범죄에 빠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아이가 마냥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부모가 아이에게 마냥 의지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족의 정이지, 어떤 '소유의 개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고, 책임이 있다. 그 사실을 알면, 부모는 아이를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며 키워야 아이도 부모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진짜 사람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아이에게 '왜?'라는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부모 일방적으로 아이의 어떤 행동을 해석하고, 아이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면… 그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말할 수 없다. 그건 노예계약일 뿐이다. 내 아이가 도무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범죄만 저지르고 다닌다면… 한 번 자신에게 질문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인가. 나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만 했던 것은 아닐까. … 하고.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볼 수 있었던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이만큼 우리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그 배경이 '재벌'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배경일 뿐,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당신의 집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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