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코타로의 마왕, 세상은 그래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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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나는 마왕이 될 수 있을까?


 마왕. 이 마왕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보는 판타지 작품에서 악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현대문학에서는 마왕이 꼭 악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의 우두머리는 인간들이 되고, 마왕은 그런 인간들로부터 균형을 지키기 위한 존재로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이렇게 '마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치가 바뀐 건 그만큼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악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예전에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없어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작품에 담긴 어떤 사회적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마왕은 여러 번 읽은 뒤에 종이 독서기록장에 옮겼을 때의 나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 그 글을 읽어보면, '나는 나구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마왕. 그 소설에서 읽고 썼던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마왕, ⓒyes24


 이 책 '마왕'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불의에 대항하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개의 스토리로 나누어지는데, 그 두 개의 스토리는 '마왕'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형제 '안도'와 '준야'의 이야기이다. 작품의 제목이 마왕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가장 말할 수 있는 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안도와 준야는 각각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안도는 30보 거리 안에서 사람들을 복화술로 조종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고, 준야는 1/10 이내의 확률은 모두 맞출 수 있는 능력이다.


 첫 번째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안도의 이야기이다. 안도는 정치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이누카이의 모습을 보며 '사회 개혁'을 내걸면서도 전혀 실속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정치가들을 보며 한심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이 어리석은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안도는 자신이 30보 거리 안에서 사람들을 복화술로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카리스마와 말, 배짱으로 일본의 정치계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는 이누카이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는 이누카이에게 복화술을 시도하여 그의 말을 바꾸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내출혈로 죽어 버린다.


 준야가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형은 편안하게 죽어" 하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걔는 없지만, 그 꿈은 정확한 예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지금 나는 신기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나름 재미있었다는, 어쩐지 개운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눈앞이 환하게 빛나나 싶더니 정면에 창공이 나타났다. 구름이란 구름은 모두 걷히고 파란 하늘과 빛나는 태양만이 사방을 에워싼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날자!' 내 직감이 소리친다.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준야가 읽고 있던 미야지와 겐지의 시가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안되겠지요

  멈추질 않아요

  쿨렁쿨렁 솟아오르고 있으니

  어젯밤 꼬박 지새우고도 피도 연신 쏟아지고 있으니


 그 시다. 왜 그럴까. 이시를 다시 곱씹고 있으려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피가 나고 있음에도

  이다지도 느긋하고 괴롭지 않은 것은

  혼백이 거지반 몸을 떠났기 때문인지요

  허나 피 탓에

  이를 말할 수 없으니 잔인합니다


 내 기분은 바로 이 시와 비슷했다. 나는 지금 무척 유쾌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 기분을 준야에게 전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부모를 잃고 형인 나마저 잃게 되었으니 녀석. 어쩌면 그렇게도 불행할까, 복도 지지리 없구나' 하는 가엾은 마음이 든다. 그 불행 대신에 아주 작은 거라도 덤이나 포상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준야에게 무엇이든 남겨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짧지만 잠깐 생각했다.

 벌렁 드러누운 채 나는 움직이질 못한다. 나는 움직이질 못한다. 머릿속에 검은 액체가 가득하더니 서서히 총명한 부분을 꽉 메워가는 것이 느껴진다. 동굴 안에 있던 등불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처럼. 이 어둠으로 가득 메워지고 나면 그것이 바로 끝날 때로구나 하고 각오하고 있지만, 그 각오를 하는 부분마저도 검은 액체의 압박을 받고 있다. 침식된다. 시야가 좁아지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고, 그리고 사라진다……. 이러는 동안에도,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아련하게 밝은 채 남아 있는 머리 부분으로 시의 마지막을 읊었다.


  그대가 보기에는 몹시도 참담한 풍경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아름다운 파란 하늘과

  맑게 트인 바람뿐입니다.


 겐지 이 사람, 근사한 소리하네. 그리고 '동감이야' 하고 생각하는 찰나 머릿속이 새카매졌다. 소등입니다. (p189-191)


 윗글에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안도가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그의 행적을 하나부터 열까지 옮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죽음의 묘사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작가 이시카 코타로와 독자인 내가 사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으로 다르지만, 우리가 보는 사회는 피차일반이니까. 어릴 적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좀 더 깊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두 번째 이야기는 안도의 동생 준야의 이야기이다. 준야는 형이 죽고 난 후 너무 괴로워 집안에 매체란 것들을 모두 끓어버린 채 세상과 동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준야는 형 안도가 죽고 나서 자신에게 특이한 능력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바로, 1/10 확률로 모든 것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알게 된 것이다. 준야는 문득 과거 안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형이 죽은 장소와 생각해보며 형의 죽음과 이누카이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곧 그는 이누카이 주변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이누카이를 지켜보는 사람 중 다른 사람을 뇌내출혈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만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뭐?" 나는 되묻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겠냐고."

 나는 준야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눈은 예리하게 빛나고, 눈썹은 경직되고 입에는 우유 냄새 따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진지함으로 가득하다. 준야이지만 준야가 아니라고 순간적으로 생각한 나는 허둥대며 눈을 깜박거린 뒤 다시 한 번 준야를 본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한 평소의 준야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말하자면 말이야."

 "시마 씨는 뭐라고 해?"

 "처음에는 웃더니 '의지와 돈만 있으면 국가도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더라고."


… (중략)


 "시마 형한테 들었어. 형이 학교 다닐 때 곧잘 말하곤 했던 대사." 어두워진 실내에서 준야가 입을 열었고, 그 말이 급히 마련한 등불추럼 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어, 무슨 말?"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나간다면?"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형은 그렇게 말했어." 준야는 깨어 있으면서도 잠꼬대를 하는 것만 같았다. "형은 그렇게 말하곤 했어."

(p292-293)


 윗글은 준야가 한 가지의 결심을 굳히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준야는 자신이 가진 1/10 확률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하여 경마에서 많은 돈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이누카이 주변에서는 더 이상 이누카이에게 대항하는 사람이 뇌일혈(=뇌내출혈)로 죽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책에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독자는 여러 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었다. 준야은 마지막에 "난 꼭 이길 거야"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시오리가 준야를 보며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함께 싸우기로 시오리(준야의 여자친구)도 결심하면서.



 책의 어려운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내용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처음 내가 이 작품을 읽고 글을 썼을 때도 몇 번이나 책을 다시 읽으며 썼었고, 지금도 다시 책을 한 번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우리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과 시도한 것, 시도하려고 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우리나라 정부는 역사 왜곡부터 시작해서 사실 왜곡, 책임 회피 등 갖은 수를 다 쓰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챙기기 위해서 가진 권력을 가지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누카이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고, 그에게 대항하려는 사람들이 안도와 준야이다. 안도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손에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지만, 준야라는 새로운 희망 다시 생겼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사회를 소설에 비유했음에도 이렇게 비슷하게 겹치는 건 지금 우리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작품을 썼던 그 당시 일본의 정치와 사회의 흐름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본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마왕',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두 주인공 안도와 준야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을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안도는 비록 실패하고 말았지만, 준야는 형이 하지 못했던 것에 도전하려고 한다. 비록 그 뒤의 이야기는 읽을 수 없지만, 준야가 하는 행동은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상과 거의 다르지 않으니까. 이 책을 어릴 적에도 정말 많은 생각과 함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잘못되어있다'고 읽었지만, 지금 읽어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잘못되어있다'는 생각이 여전했던 책이다. 그리고 어릴 적에 진지하게 했던 생각을 한번 더 해보았다. '내가 마왕이 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아직 한 번도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 것으로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겠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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