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단치가 묻다, 왜 책을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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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는가,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책을 읽는 행위를 뜻하는 독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활동, 교양있는 취미활동으로 여겨져 왔다. 비록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점점 독서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깝게 나도 거의 매일 책만 보면서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독서가'로 불리는 사람이 적잖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한 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왜 책을 읽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답을 요구하면서도 조금 더 심오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위해서 읽는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교양있는 취미활동을 위해서',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 '재미있으니까' 등.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즐거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지금 당장 여기서 배울 수 없는 지혜를 책을 통해 배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책을 읽는 이유에는 답이 없다. '그냥 책이 있으니까 읽는다'가 가장 명쾌한 답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구구절절 멋진 이유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책을 읽고 싶으니까 읽는 것. 그게 가장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친구를 잘 만들지 못해 현실에 즐길 거리가 거의 없을 때 책을 통해 만나는 그 세계는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은 소설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기 위해, 그저 현실을 잊고 싶어 책을 읽는다.


 내가 갑자기 '왜 책을 읽는가'는 질문을 던진 것은 오늘 이야기할 책이 '왜 책을 읽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신선한 발상과 이때까지 내가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다른 시각에서 책을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왜 책을 읽는가, ⓒ노지

 

 '왜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하기에 앞서 '독서'라는 행위가 도대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예로부터 우리는 독서는 자아 성찰의 시간, 여행의 시간, 오락의 시간… 등 여러 의미를 부여해왔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늘 긍정적이기에 독서는 항상 '하면 좋은 이로운 행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책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이고, 독서는 백마 탄 왕자님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사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책을 읽는 동안 잠자고 있던 생각이 되살아난다.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요, 독자는 백마 탄 왕자님이다. 독자가 안경을 걸치고 대머리가 된 98세 노인이라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펼쳐지지 않은 책은 존재할 뿐 살아 있지 않다. 고운 먼지들의 품에 감싸안긴 책은 어쩌면 속이 텅 빈 직육면체 상자에 불과하리라.

모든 독서는 독자가 책을 다시 써 내려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는 시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라는 표현도 나쁘지 않다. 독자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작품의 창조자가 자신이 아님을 인정하는 작가야 말로 진정 위대한 인물이리라.


 그리고 이 책의 실로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평소에 읽었던 '독서'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책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뭐,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소 우리가 '책 읽기'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부분 독서의 긍정적인 면과 어떤 식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좋은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사실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독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책에 관하여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여러 사실을 뒤집고,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진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하기에 이 책은 정말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책이다. 책에는 '의문을 품어라. 지금 이 순간 그대가 읽는 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는 문구가 있다. 이건 바로 독서가 가진 진정한 재미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반론을 펴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책을 읽는 맛을 더 깊게 하는 행위다.


 우리 한국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대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주 큰 히트를 쳤었다. 그 책을 선택한 사람들은 저마다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책을 수동적인 독자가 되어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책은 우리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스스로 적극 참여하는 독자가 되라고 요구했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에 반박하고, 또 반박하고, 그러면서 책을 읽었기에 가치 있는 책 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왜 책을 읽는가'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독서를 이야기하는 책과 전혀 다른 형식의 책이지만, 거리감을 느끼기는커녕 '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이제야 만났지?'라는 느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독서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이때까지 우리가 독서에 관하여 가지고 있던 편파적인 생각을 아주 확실히 망치질하여 부숴줄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독서방법이나 독서의 의미를 실로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맛있는 언어 비유는 '이야, 이런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도 있구나.'는 감탄을 자아낼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열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관하여 조금 더 신선한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분명, 그 선택에 절대 후회라는 결말은 오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책에서 꽤 인상깊게 읽을 수 있었던 부분들을 남긴다.


독서가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독서는 누군가의 독백을 듣는 것이며 일종의 대화에 해당한다. 대화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화려한 독백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위이자 상대방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평소 멍하게 마비되어 있는, 얼핏 수동적으로도 보이는 우리의 사고는 독서를 할 때 드디어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감수성과 기억력이 맞물린 메커니즘에 의해 활성화된 사고는 온몸을 전율케 만드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온몸 구석구석에 문학의 향기가 퍼진다.

독서는 문학의 한 가지이며 이 둘은 '울림 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 줄의 문학이 글이 되고 누군가에 읽혀진 다음엔 같은 문징이라 해도 전혀 다른 글이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울림이며, 이는 문학의 불순함에서 비롯된다.


독서는 비이성적인 행위다. 중요한 인물들은 독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그래도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명예나 돈과는 상관없이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필경 작가가 될 운명이다. 만일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위대한 독자가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이다. 그는 결국 꿈을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독서광으로 남을 것이다. 그가 슬퍼하지만 않는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작가가 되지 못해 씁쓸해하는 위대한 독자들보다는 자신의 글이 읽히지 않아 슬퍼하는 고만고만한 작가들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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