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의 함정에 빠진 학부모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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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의 함정에 빠진 학부모와 아이들


 우리나라의 교육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단기적인 관점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일부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학부모와 아이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단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평가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이다. 줄여서 '수능'으로 부르는 이 시험을 위해서 있는 돈 없는 돈 달달 털어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 같은 현상이 일상이 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수능 점수=대학의 수준=인생 성공의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가 엄청난 양의 사교육비를 들여가면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고, 많은 아이들이 '왜 해야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해야된다.'라는 생각으로 당장 눈앞에 있는 입시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현상을 교육부에서는 '일제고사' 도입을 계속해서 시도하려고 하면서,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본디 교육이란, 장기적으로 아이가 앞으로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성적'이라는 하나의 결과만을 보고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성적이 중요하지 않겠느냐? 성적이 높으면, 나중에 지 알아서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고 살겠지….'라며 현실을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교육을 받은 많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지만, 마땅히 취업을 하지 못한 채 고생을 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비에 너무 많은 비용을 들였기 때문에, 일부 상위층을 제외한 서민계층에 해당하는 많은 학부모와 아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는 하나로 압축될 수 있다. 바로, '대학'이라는 곳을 단순히 '모두가 가니까. 일단 가고봐야 한다.'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갔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여 잘못을 저지른 것은 교육 분위기 자체가 언제나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장차 인생을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다. '분명한 자신만의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올바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이 공부를 바탕으로 어떻게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 나갈지를 알고 있다.



'공부, 왜 해야만 되는 걸까?'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그러한 것을 교육의 목표로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늘 당장 눈앞에 있는 '성적'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에만 지나치게 집중을 하고 있다. 성적이라는 것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순간의 성적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착각은 심각히 잘못된 오류이다.


《장자》에서 유래한 유명한 고사성어 가운데 하나가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무엇을 일러 조삼모사라 했을까? 원숭이를 기르는 저공이 아침에 도토리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준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그래서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준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하루에 도토리 7개, 원숭이에게 제공되는 수는 전자나 후자나 동일했다. 변한 것은 도토리의 개수가 아니라 원숭이들의 마음이었다. 주관적으로 일어나는 심리작용은 하루에 받는 도토리 수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그것을 변하는 것으로 인식케 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 원숭이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당장 눈앞에 이익이 생기면 기뻐한다. 성과급을 많이 받으면 이후야 어떻게 흘러가든 일단은 '대만족'이다. 취직하면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계획하기보다 축하받기 바쁘다. 후에 따를 상황까지는 고려치 않는 근시안적 사고가 팽배해있다. 원숭이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핵심은 이것이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을 보았을 때의 맹점, 길게 보지 못하고 짧게 보았을 때의 오류 말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7개의 도토리를 놓고 아침과 저녁에 받는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7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셋인지, 저녁에 넷인지, 아침에 넥인지 저녁에 셋인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고전혁명, 中

   

 위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아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없다면, 다시 한 번 더 글을 읽어보라.)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그리고 시키고 있는 교육이 완전히 조삼모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당장 가까운 시험에서 '높은 성적'만을 요구하고, '명문대'에 갈 것을 요구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전혀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교육의 오류 속에서 아이들만 희생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오류가 이렇게 심각하게 발생한 것은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과 욕심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을 풀면서 공부만 할 것을 요구하지,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거나, 자신에 대해 '사색(思索)'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행위를 한다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하는 거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아이를 훈계할 것이다.


 진정한 교육(가르침)은 아이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부릅뜨고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토익공부로 밤을 새우고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을 전전하기 전에, 내가 이것을 왜 공부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것이 필요한지 스스로에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면 아이들이 목적도 없이 스펙의 포로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삶과 내가 바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삶은 분명 다르니 말이다.



 이러한 교육이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확실한 목표와 동기부여를 해주었을 때야 말로, 아이들의 성적도 향상하거니와 올바른 인성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폭력을 비롯한 청소년 범죄가 판치고, 성적압박을 못 이겨 자살을 하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그저 어른들이 단기간에 '성적'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곳에 있다. 성공을 강요당했고 또 강요했지만 한 번도 실패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들어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성공이 일상이라면 실패 역시 일상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사람들은 좌절만 한다.


 실패를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다.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실패도 자연스러운 일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당장 '성적'이라는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아이에게 "니는 공부도 못하는 놈이 뭘 하려고 그래!?" 라며 추궁하며 아이를 좌절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명심하라. 성적이 높은 아이가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낮았던 아이가 갑자기 성적이 높아질 때. 그리고 성적이 낮았던 아이가 성적이 높았던 아이보다 더 윤택한 인생을 살고 있을 때. 그런 결과는 단기적인 결과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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