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나경원이 누군지도 모르는 대학생,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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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나경원이 누군지도 모르는 대학생, 왜?



 지금 서울시장 선거 때문에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박원순, 나경원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심심찮게 들을 수가 있다. 아마, 서울에서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한번도 못 들어봤다고 하면, 노숙자이거나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다. (외국인, 영유아 제외) 이 서울시장 선거의 문제는 단순히 수도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차후에 있을 대선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다 이 서울시장 선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부 의식 있는 대학생들도 이 선거를 눈여겨보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이 선거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일부 생각 있는 대학생들은 정치가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의 미래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주권의 행사에 적극적이다. 대개 이런 대학생들은 차후에 있을 대선에서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모든 대학생들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이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일텐데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이 차후에는 사회의 중요 구성원이 될 것이고, 그들이 지금부터 정치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한다면, 정치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달지만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 의식 있는 대학생이 그렇게 상당수가 있는 반면에, 이러한 시사문제에 전혀 관심 없는 대학생들도 많이 있다. 지방에 살기 때문에 '박원순-나경원' 이 두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대학생이라면, 이러한 문제에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은 만 19세가 넘은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법적으로 완전한 성인이다. 그들은 나라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국민으로써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정치적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주권을 행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장차 사회의 중요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뜻하는 것은 장차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금과 같은 사회문제는 개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을 죽이고,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면서, 끔찍한 문제인가? 그렇게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 대학생들이 주로 하는 말은 아래와 같다. 

 "내랑 무슨 상관인데? 그 사람들 몰라도 내가 사는데에 지장없잖아?"
 "지금 그게 중요하나? 내 학점관리가 더 중요하지."
 "그 놈이 잘되면 내가 잘 된다나? 아무 상관없잖아?"

 정말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말을 대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어른들도 그러한 말을 하면서 시사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 어른들은 정치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대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아갔을 때 그들이 되는 모습이다. 그렇게 지속된다면, 사회는 악순환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나의 동생도 위과 같은 말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자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 그들은 그렇게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철저한 주입식 암기위주로 진행된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 대학을 목표로 그렇게 공부를 해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그들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대학교에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 목표였다면, 지금 대학교 때는 취직을 목표로 말이다. 

 바로 이러한 반복되는 교육체제가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을 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일부 사회구성원들까지 말이다. 그들은 나라의 일을 자신과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고, 늘 자신의 일만 잘하면 자신은 먹고 사는데에 아무지장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늘 앞 일만 걱정하느라,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니, 입학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란 말입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쉴 틈도 없이, 졸업한 다음 일까지 생각해야 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시스템이란 말입니까?"  
 "이러니, 학생들이 세계 정세를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제 한 몸 챙기기에도 벅차니까요. 회사에 들어가면 나아질 거 같습니까? 마찬가집니다. 다음 일, 또 그 다음 일, 언제까지고 장래를 생각하느라 현재를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

-《이사사 코타로, 사막 中》

 그렇다면, 이러한 무관심한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방법으로 신문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문은 중고등학교 대의 아이들의 수능시험이나 언어시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신문을 읽는 습관을 들여주면 정말 좋다. 그렇게 신문을 읽으면서 마냥 읽는 것만이 아니라 신문의 기사를 비판적으로 수용을 할 줄 일아야 한다.

 신문읽기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뭔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사들을 하나씩 모아서 스크랩을 하는 것이다. 그런 스크랩을 통해서 자신만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형성이 된다. 여기서는 그 시각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것을 터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문이 100% 진실만을 보도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문을 꾸준히 읽음으로써 최소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 시대는 디지털 시대로써 종이신문만이 아니라 인터넷에도 수 많은 신문과 기사가 있다. 그 하나하나의 습관이 결국 사회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써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차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이라는 자가 대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슨 당의 무슨 후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어둡게만 보인다. 지금 자신이 대학생이거나 학생들의 부모라면, 지금 박원순과 나경원이 무엇을 하는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아이들도 그 의미를 알게 될테니까. 

 정치인들은 더러운 놈들 뿐이고, 나라는 말세고, 사회는 썩었다고만 말하지 말라. 더러운 놈을 정치인으로 만든 것은 그대들이고, 나라를 말세로 만든 것은 그대들이 뽑은 정치인이고, 사회를 썩게 만든 것은 그대들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자라면 장차 사회를 이끌어갈 구성원이 될 아이들이 그 권리를 행사하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도리이고, 선생님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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