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 설립된 전국 최초 공립 한글 박물관 방문 후기
- 여행/국내 여행기
- 2022. 2. 21. 08:58
지난해 2021년 9월을 맞아 내가 사는 김해에는 전국 첫 공립 한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한글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한글과 관련된 다양한 사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김해 출신 한글 독립 운동가인 한뫼 이윤재와 함께 눈뫼 허웅 선생의 사료를 바탕으로 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한글의 역사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어서 계속 시간만 보다가 며칠 전 오후에 시간이 생겨 한글 박물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김해 한글 박물관은 경전철 수로왕릉 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으면 발견할 수 있다. 근처에 김해 문화원, 김해 보건소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글 박물관을 찾는 일은 김해 방문이 처음이라도 어렵지 않다.
▲ 김해 한글 박물관의 모습
한글 박물관의 외형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주변에 있는 어떤 건물보다 아주 깔끔하게 지어졌다. 건물의 디자인을 본다면 김해 버스 터미널과 신세계 백화점 건물과 상당히 유사한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마 박물관의 디자인을 맞아서 시공을 한 업체와 디자이너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박물관에 도착한다면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도 되지만 외부에서도 볼 거리가 몇 가지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한글 누리를 잇다'라는 글이 적힌 장식물로, 해당 장식물을 본다면 우리 한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해외 유명 인사들의 글을 읽어볼 수 있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 한글에 대한 찬사를 했던 인사들의 글
위 사진을 본다면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게 우리 한글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은 소리 나는 그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한글을 알파벳으로 익힌다면 우리는 어떤 말이라고 해도 한글로 해당 언어를 기록하거나 배울 수 있다.
아마 어릴 때 학교에서 처음 영여 공부를 할 때는 많은 사람에 영어 단어 밑에 한글로 영어 발음을 적어두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언어라면 절대 불가능한, 발음 기호가 따로 존재하는 언어와 달리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쉽게 외국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영어가 늘 어려운 이유는… 영어 공부의 목적이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외우고 문법과 분해를 외워서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웃음)
▲ 김해 한글 박물관 내부의 모습
한글 박물관의 전시 관람은 2층부터 할 수 있다. 1층에서 손소독과 함께 체온 측정 등의 과정을 거친 이후 2층으로 올라선다면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있는데, 제1전시실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원래는 제1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나서 제2전시실을 둘러보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끌리듯 제2전시실로 먼저 발걸음을 향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한글인 훈민정음을 창시한 세종대왕의 교서가 오늘날 한글로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어릴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서 늘 '나랏말싸미'라는 형태로 적혀 있던 글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32년 만에 제대로 읽어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훈민정음도 읽지 못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교육 과정을 배운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옛 한글인 훈민정음을 있는 그대로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과 이전의 훈민정음은 읽는 데에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고전을 배울 때도 우리는 선생님이 풀어주시는 것을 일일이 다 읽는 법을 기록하며 공부를 해야 했다. 이 훈민정음 서문을 이제야 제대로 본 듯하다.
이 훈민정음 서문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발은 제1전시실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제2전시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김해 한글 박물관 제2전시실의 모습
한글 박물관 제2전시실은 눈뫼 허웅 선생의 사료와 일대기가 정리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기 마련인 한글 학자였던 눈뫼 허웅 선생이 국어 연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이곳 제2전시실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모두 살펴볼 수 있어서 꽤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 김해 한글 박물관 제2전시실 눈뫼 허웅 선생의 자료
보통 박물관이라는 곳은 우리에게 따분한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 중 하나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현장 체험 학습으로 곧잘 박물관을 찾더라도 유물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해설자나 혹은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 없이 바쁘게 이동만 하다 끝나기 때문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한번 쓱 보고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박물관을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잘 모르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생기기 시작해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거다. 하지만 차후에 성인이 되어서 혹은 간간이 기회가 되어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나 역사적 사료에 대해 하나하나 해설하는 것을 들으며 돌아본다면 그 인식이 바뀌게 된다.
박물관은 우리가 따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흥미를 가지고 둘러볼 수 있는 그런 장소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한글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었다. 역시 박물관은 자주는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가끔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장소다.
▲ 김해 한글 박물관의 선조국문유서
그리고 김해 한글 박물관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조가 순 한글로 작성한 최초의 공문서인 선조 국문 유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료이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만질 수는 없고 어디까지 눈으로만 볼 수 있는데, 선조 국문유 서울 오늘날 한글로 옮긴 것을 읽어본다면 꽤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제2전시실의 끝자락에서 다시금 중앙 통로로 향하는 길을 가다 보면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옛 교실(오늘날 교실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을 재현한 동시에 옛날 교과서를 배치해둔 전시 공간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터치 스크린 화면을 통해서 우리말 퀴즈도 풀 수 있어 제법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 1960년대 국어시험 반대말 문제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옛 교과서가 무척 반가웠다. 물론, 저런 교과서로 공부를 했던 건 아니지만… 내가 90년 생이다 보니 딱 저런 느낌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를 가진 교과서를 가지고 초등학교를 다녔었기 때문에 괜스레 '아, 이건 그 시절의 교과서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얼마 만에 저런 교과서를 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해당 전시 공간에서 체험해볼 수 있는 옛날 국어시험 문제는 기본적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한자를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는 한글의 이용 범위를 더욱 넓혔지만, 요즘은 한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잘 모를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본국'과 반대가 되는 말을 고르는 문제에 대해 한자에 대해 일말의 지식도 없는 사람은 맞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워낙 많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에 '본국'이라는 말이 한자어 '本国'라는 것을 알지 못해도 반대가 되는 말이 '외국(外国)'이라는 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게 괜찮은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교과 과정을 통해서 한자를 배워야 하느냐 마느냐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순우리말을 사용해서 과학적으로 우수한 한글만 있으면 된다는 사람들과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똑바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에는 순 한글로 구성된 말보다 한자어를 기본 바탕으로 해서 사용하는 말이 많은 데다가 어떤 단어에 대해 이해하고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한자는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알아야 우리는 문학과 언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글의 첫 부분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칭찬한 한 학자의 말이 나는 우리 한글이 가진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언급했다. 영어의 알파벳은 알파벳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되지 않는다. 알파벳을 조합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된다. 한글도 영어의 알파벳과 마찬가지다.
이 알파벳을 우리가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동음이의어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자라는 뜻을 내포할 수 있는 언어를 활용했을 때 우리는 한글을 활용해 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를 공부해서 상식 수준에서 한자를 알아두는 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그냥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 한글 박물관 제1전시실의 모습
나는 옛 우리 교실과 교과서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 제2전시실을 나온 이후 비로소 제1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여기 제1전시실은 한뫼 이윤재 선생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던 다양한 한글 학자들과 함께 어떤 일을 주도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 한뫼 이윤재 선생님의 사료
이곳에서 읽어볼 수 있는 사료들은 일본의 우리말(일본어를 모국어로 삼는)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한뫼 이윤재 선생님을 비롯한 다양한 언어학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간략하게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괜스레 그 역사를 둘러보면서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제3전시실인 영상실
제2전시실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제3전시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상실도 둘러볼 수 있는데, 해당 영상실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방송이 되고 있는 게 아니라 한글을 소재로 해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대형 스크린과 함께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해당 영상실을 둘러본다면 전국 최초 김해에 설립된 공립 한글 박물관에서 할 수 있는 관람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물론, 3층으로 올라간다면 옥상으로 나가서 옥상 바닥에 그려진 트릭아트를 통해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트릭아트는 한글과 전혀 상관이 없는 트릭아트라 굳이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았다.
규모가 그렇게 막 크지는 않더라도 시간을 내어서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와 가치가 있었던 김해 한글 박물관. 만약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이라면, 평소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전국 최초로 설립된 공립 김해 한글 박물관을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부모님이 함께 와도, 어른이 혼자 와도, 친구들끼리 혹은 연인들끼리 와도 한 번쯤은 둘러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김해 한글 박물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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