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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3일 안동역에서 재회한 10년 전의 약속이 전한 낭만

노지 2025. 8. 2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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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우리에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솔직히 재미있다고 말하기보다 지루한 경우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과 다큐 프로그램 둘 중 하나를 보라고 한다면 과반수 이상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큐 프로그램이 늘 재미가 없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다큐 프로그램은 다큐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매력을 불과 얼마 전에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이 과거 10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여정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2015년 당시 '내일로'라는 티켓으로 여행을 하던 여자 대학생 두 명과 PD는 10년 후에 다시 만나고자 약속을 했었다.

 

 구두 약속을 하기는 했어도 법적인 의무가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그냥 지나가면서 어쩌다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 약속을 했던 <다큐 3일>을 촬영한 PD가 그 약속에 대해 SNS에 업로드한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커지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는 그 모습을 모두가 기대했다.

 

10년 전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KBS 다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하는 데에는 10년은커녕 1~2년이면 족히 놀라울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10년 전에 만났던 그 여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큐 3일>의 10년 전 약속이 실천될 수 일을지 지켜보는 사람들은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낭만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댓글이 상당히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낭만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큐 3일>이 10년 전 재회를 약속했던 여학생들과 만났던 이야기는 여행을 하는 20대 청춘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약속 이벤트가 알려지면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본 사람들은 10년 전의 자신을 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20대이기에 가능했던 여러 일을 돌아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해도 그 밀도는 너무나 다르고, 우리가 잠시 방심하거나 방황하고 있을 때도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기만 했다.

 

 <다큐 3일>의 10년 전 약속을 지키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재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10년 전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10년 전의 25살이었던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적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생으로서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모두 붙잡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영원할 것 같았던 10대와 20대,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오만한 시기를 지나 현실을 살아가면서 매일 빚을 갚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30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낭만이 그 시절에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큐 3일>에서 볼 수 있는 10년 만의 재회를 지켜보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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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약속 당일에 벌어진 해프닝

ⓒKBS 다큐

 10년 전의 약속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구 안동역에는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물론, 누가 보더라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 일은 혹시나 또 모르는 일이다 보니 안전을 위해서 당일 구 안동역에서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에 쳤을 법한 장난을 여전히 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는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K-컬처와 K-테크닉을 바탕으로 지난 1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을 하면서 문화 강국으로 나섰지만,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비상계엄을 두둔하면서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김건희를 비롯한 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좀 변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K-컬처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고 해도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은 10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절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10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이나 10년 후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면서 잘못을 바로 잡고자 한 것에도 낭만은 존재했다.

 

이루어진 10년 전의 약속

ⓒKBS 다큐

 아쉽게도 당사자의 요청으로 <다큐 3일>에서 10년 전 약속을 했던 그 당사자와의 만남은 카메라에 담기지 못했지만, 메시지를 통해서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다. 10년 동안 일그러짐 없이 자신의 삶을 똑바로 살았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10년 동안 꾸준히 PD로 지낸 인물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10년을 생각하면 너무나 긴 시간이지만,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우리가 보내는 오늘 하루가 10년 후에 어떤 하루로 기억될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잃어버린 20대 시절의 낭만을 떠올려볼 수 있었던, 여유 없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잊어버린 꿈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던 <다큐 3일>이었다.

 

ⓒKBS 다큐

 나는 지난 10년을 한결 같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때 그 시절에만 해볼 수 있는 도전을 망설이다 하지 않은 것, 너무 오만하게 삶을 판단한 것 등 돌아보면 후회 투성이다. 그런 후회가 쌓여 지금의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지어진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댓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두 아이의 아빠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으면 내가 참 삶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보낼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건지 깊은 자괴감을 품게 된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 서툴렀을 뿐, 결단코 잘못된 삶을 살지 않았다.

 

 비록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고 해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성실히 쌓아가다 보면 10년 후의 나는 더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은 내일 다가오는 대출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오늘이라고 해도 낭만은 존재한다는 것을 <다큐 3일>이 짧게나마 보여준 것 같았다.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눈을 감고 잠에 들었을 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종종 생각한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힘들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주 작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이라는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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