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주연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지금을 사는 이야기다
오늘 점심을 먹은 이후 시간이 오랜만에 비어서 가까운 영화관 롯데시네마를 찾아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고 왔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의 원작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지난 제28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식 상영 작품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제28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 참여를 했어도 김해까지 다시 넘어오기 위해서는 막차 시간이 있다 보니 영화를 모두 다 보고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지난 2015년에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던 터라 미련 없이 자리를 떴었는데, 그날 자리를 뜬 것이 아쉬울 정도로 오늘 본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무척 좋았다.
단순히 이야기만 좋은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2015년에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을 때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다 못해 하나의 현실이 된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해도 계속해서 경쟁해야 하는 시스템이 지쳐서,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 지쳐서 모두 한국을 '헬조선'이라 불렀다.
우리가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배우 고아성이 연기한 주인공 계나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그래도 인천에서 열심히 공부해 '홍익대학교'라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한 이후 취직까지 성공했고, 아직 취업은 못했어도 집안은 부유한 남자친구 재인과 7년 동안 사귀고 있을 정도로 나름 잘 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소위 '지잡대'라고 말하는 지방대를 나와서 대기업은커녕 중소기업도 취업을 하지 못해 오늘 하루 먹고살기 위해서 아등바등거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는 남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추운 한국이 너무나 싫었고, 인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왕복 4시간 동안 출퇴근을 해야 하는 현실을 살면서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게 된다.
그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해외로 떠나고 싶은 바람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었는데, 남자친구 재인은 "그래도 한국은 살만한 나라야."라고 말하며 그녀의 이민을 반대했다. 하지만 계나는 "한국이 살만한 나라면 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 건데?"라고 되물으면서 한국의 현실을 지적한다. 한국을 살만한 나라라고 말하라면 조건이 있다.
바로, 돈이 많을 것.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이번 달에 내야 하는 카드값을 돈 걱정 없이 낼 수 있고, 이번 달에 내야 하는 월세를 돈 걱정 없이 낼 수 있고, 아프면 돈 걱정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것. 최소한 그 정도의 돈만 있어도 우리 한국은 충분히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서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오후에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오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머니 일을 도우면서 블로그를 통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 회사에서 일이 없을 때는 항상 블로그에 글을 적기 위한 다양한 소재를 찾아 헤맨다. 그중 하나가 오늘은 영화관에서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는 것이었을 뿐이다.
나 혼자 덩그러니 상영관에 앉아서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복권 판매점을 찾아 다시금 로또 제1136회 5천 원과 스피또1000 제85회 5천 원치를 구매했다. 한국에서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한국이 싫어서>에서 볼 수 있는 계나처럼 평범히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계나의 주변에 있는 부유한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처럼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처음부터 부자여야 했다.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한국은 비로소 살만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매일 열심히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구매하는 복권 한 장이 희망이다. 이 복권 한 장이 크게 당첨된다면 겨우 살만해지니까.
내가 찾은 복권 판매점은 1등이 2번, 2등이 22번이나 나온 나름 명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지난주 추첨이 진행되었던 로또 제1135회에서도 1등이 무려 9명이 나왔지만 나는 해당되지 않았다. 세상은 이런 법이다 보니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죽을 수는 없으니 억지로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었다.
계나는 그렇게 살다가 더는 못 살겠어서, 한국에서 자신은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떠나게 된다. 그곳은 한국과 달리 꿈과 희망이 넘치는 낭만이 있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국처럼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나라였다. 계나는 천천히 그곳에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화를 보면 2015년에 읽었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2015년의 나와 2024년의 나는 많은 부분이 변했다 보니 오히려 2015년보다 더 계나에게 공감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영화가 가진 힘일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아쉬운 장면은, 아니, 정확히는 불만인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면… 굳이 필요 없이 계나의 흡연 장면이 많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왜 한국 영화에서는 혼자 고민할 때 담배가 빠지면 안 되는 걸까? 혼자 괴로워하고 고민할 때 담배를 무조건 피워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흡연 장면은 조금 그랬다.
평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계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지 모르겠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꼭 담배를 피워야 하나 의문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굳이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우두커니 서서 멀리서 들리는 소음에 빛을 잃은 듯한 눈으로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계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장면을 제외한다면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점은 높지 않지만,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인기가 다소 사그라들었다 보니 영화 <한국의 싫어서>는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을 기록하지 못했다. 상영관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 이번 주가 지나면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영화를 보았다.
일각에서는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가진 아쉬움을 영화가 보충해서 독자들이 계나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평도 있었다. 소설을 2015년에 읽어서 그때 나는 책을 어떻게 읽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볼 수 있는 계나는 확실히 더욱 가슴 깊이 와닿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비록 나는 용기가 없어서 워킹 홀리데이로 일본으로 떠나지 못했지만, 용기를 갖고 뉴질랜드로 떠나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계나의 이야기는 분명히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편 소설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꼭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볼 수 있도록 하자!
참, 오랜만에 깊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나는 2030세대만 아니라 오늘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