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이 참 좋았다
평소처럼 인터넷 서점 홍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메인에 소개되어 있는 <아무튼, 디지몬>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만화와 라이트 노벨 장르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디지몬'이라는 키워드가 궁금했고, 작가의 이름도 어머니와 같은 천 씨였고, 표지에서 볼 수 있는 일러스트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한동안 읽지 않았던 에세이를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튼, 디지몬>을 구매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평소 내가 즐겨 읽는 만화와 라이트 노벨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은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고, 책에 사용된 종이는 재생지 같은 느낌의 종이라 눈이 편한 데다가 손끝으로 만져지는 책의 감촉이 좋았다.
이렇게 처음부터 호감을 갖고 읽기 시작한 천선란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은 작가가 어릴 적에 만난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 나잇대가 비슷한(나는 90년 생이고, 작가는 93년 생이다.) 작가의 이야기나 디지몬에 대한 추억은 웃음이 지어졌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인 글은 아래의 글이다.
성인이 된 후로 누군가에게 <디지몬 어드벤처>를 추천하면 마치 이제 애니메이션을 볼 나이는 지났다는 듯이 머쓱하게 웃는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한국은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아이만을 위한 장르로, 성인이 되면 보지 말아야 할 불량 식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에는 더 박하다. 내가 어렸을 땐 만화 자체를 해로운 매체로 보는 시각도 더러 있었다. (본문 15)
그럼에도 나는 이야기가 기본적인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벗어나서도 안 되고, 그것이 무너지기를 모두가 바라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유치할 것 같다는 지레짐작으로 눈 돌리지 말고 한껏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야기의 시초인 선한 서사의 힘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럼 여태껏 당신이 눈여겨보지 않은 작품들 속 멋진 짜임에 '이게 어린이 만화라고?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고?'라며 놀라게 될 것이다. 장황하게 말했는데, 한마디로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라는 말이다. (본문 17)
나는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오타쿠로 지내고 있다. 혼자서 하는 취미 생활이 책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일이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종종 "나이가 몇인데 아직 애니메이션을 보노? 예준이(조카)랑 친구 해라."라며 나무라기도 하신다. 걔네들이 보는 애니메이션과 내가 보는 애니메이션은 다른데!
천선란 작가가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의 어른은 여전히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아이만을 위한 장르로 취급하거나 성인이 되면 보지 말아야 할 불량 식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오늘날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단순히 아이만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성인을 위한 장르로 크게 성장했고, 소위 오타쿠도 많이 늘어났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평소 딱딱한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공감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는 오은영 같은 심리상담사도 해내기 어려운 역할을 쉽게 하기도 한다.
<아무튼, 디지몬>에서 천선란 작가는 혹시나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작품을 모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략히 작품의 개요와 줄거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선택받은 아이들과 파트너 디지몬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시절 자신이 가슴에 품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연령대가 비슷한 데다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책을 읽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특히, 평범한 시청자의 시점이 아니라 작가의 시점으로 정리한 <디지몬 어드벤처>의 다양한 이야기는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어서 놀라웠다. 역시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진짜 작가와 블로거는 다른 법이었다.
<아무튼, 디지몬>을 읽으면서 나는 제법 많은 페이지에 북클립을 끼웠다. 그렇게 북클립을 끼운 페이지의 글은 추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글이기도 했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소개하고 싶은 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글들을 모두 다 소개할 수 없기 때문에 고르고 고른 글들 중에서 꼭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은 글은 다음과 같다.
묘티스몬과의 싸움에서 피요몬이 크게 다친다. 피요몬은 더 싸울 수 없는 상태인데도 소라를 지키겠다고 묘티스몬에게 달려든다. 소라는 그런 피요몬을 끌어안고 화를 낸다.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싸우냐고 말이다. 피요몬은 소라를 뿌리치며 소라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소라는 그런 피요몬을 놓치지 않으려 꽉 끌어안다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그때 발목이 다쳤는데도 축구 시합에 나가겠다는 소라를 걱정했던 것이란 걸. 자신은 언제나 사랑받고 있고, 자신 안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사랑'의 문장이 빛난다. 피요몬은 버드라몬으로, 그리고 곧바로 완전체인 가루다몬으로 진화한다. 가루다몬은 새와 인간의 형상을 섞은 외형으로 디지털 세계에서는 자연의 수호신이다. 사랑을 찾은 소라가 진화시킨 디지몬이 정의와 질서를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디지몬으로 진화하다니, 정말 완벽하지 않은가. 가루다몬은 소라와 친구들을 데리고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나는 자주 이 에피소드를 돌려 본다. 소라가 자신에게 사랑이 있다고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소라의 문장이 '사랑'이라서, 바로 그 단어라서 더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본문 75)
윗글을 통해서 우리는 <아무튼, 디지몬>이라는 책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릴 적 TV로 보았던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특정 이야기를 소재로 덧붙여진 작가의 해석과 본인만의 이야기는 우리가 쉽게 작가의 이야기에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이야기는 깊이 들어왔다.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가정 불화가 심했던 탓에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행복하게 웃었던 기억보다 끊이지 않는 다툼 속에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특히, 부모님의 싸움으로 인해 남은 감정이 나와 동생으로 향했을 때는 언어폭력만 아니라 신체 폭력이 함께 가해지면서 너무나 괴로웠다. 당연히 그렇다 보니 학교 생활도 어려웠다.
나는 집에서만 폭력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자주 학교 폭력에 시달리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부 어른들은 아직도 "아이들은 그렇게 싸우면서 크는 거다."라고 말하는데, 싸움은 서로 치고박는 게 싸움이지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맞기만 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폭력이었다.
<아무튼, 디지몬>의 작가 천선란은 혼자 있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힘들어 디지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을 바랐었다고 말한다. 나는 외로움과 고독함도 있지만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너무 아파서 다른 세계를 원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책을 좋아하고,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을 읽는 도서관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고, 내가 싫어하는 소음도 없고, 오직 내가 손에 들고 읽는 책의 세계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20대 때는 한때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솔직히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튼, 디지몬>에서 '사랑'이라는 문장을 가진 소라의 이야기가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좀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30대가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사랑을 해보기 마련이라고 해도 나는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잠시 넋두리가 길어지고 말았지만, 천선란 작가의 <아무튼, 디지몬>은 그렇게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작품을 통해 풀어낸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당시 똑같이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았던 독자의 시점으로 지금의 나를 마주 보기도 했고, 이제는 괜찮다고 애써 외면한 상처를 돌아보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말하는 작품 속 이야기에도 항상 서사는 있었고, 그 서사는 누군가에게 커다란 계기가 되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천선란 작가가 SF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은 <디지몬 어드벤처>였고, <디지몬 어드벤처>는 작가 본인만 아니라 <아무튼, 디지몬>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분명히 특별한 작품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는 알지 못했던 디지몬과 선택받은 아이들의 모험이 이렇게 흥미롭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그 시절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작품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천선란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의 일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었더니 괜히 애니메이션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게 이야기란 나와 타인을, 세상을, 그리고 악당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다. 나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아포카리몬으로 진화할 위험성이 있는 존재들을 본다. 그리고 나를 본다. 그들의 타락을 막는 것이, 나의 추락을 막는 것이 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 같다. 어떻게 그들을, 나를,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본문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