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학교와 교육

공부 지옥이 만든 불수능, 이대로 괜찮을까

노지 2018. 11.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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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강요하는 공부 지옥 사회에서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늘 들어오는 소식은 수능의 난이도 이야기와 함께 수능 시험장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런 소식을 듣고 있으면 ‘정말 우리 한국은 공부 없이 청소년 시절을 보낼 수가 없구나.’라는 걸 체감할 수 있어 괜히 한숨이 나온다. 물론, 공부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공부는 우리 삶에 필요하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너무나 불필요한 공부를 너무나 불필요할 정도로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거다. 아마 대학생이 된 사람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한 수리 영역과 외국어 영역을 얼마나 쓸까? 사실 이 두 가지는 암기해도 딱히 사용 용도가 없다.


 이과 계열로 진학해 백의를 입고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정도를 벗어난 수리 영역의 레벨은 필요가 없다. 더욱이 외국어 영역도 문제가 너무나 어려워 ‘학생의 외국어 실력을 기르는 게 아니라 분별을 위한 용도’로 문제가 출시될 뿐이라 학생들의 기본 영어 말하기 능력과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문제가 어려운 데다 잘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를 암기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영어 공부를 더 싫어하게 되어 학습능률 또한 떨어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그랬다.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한다고) 고등학교까지 영어를 해서 남은 게 뭘까?


 “How do you do?” “I’m fine. Thank you. And you?”


 겨우 이런 문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물론, 어려운 영어 시험 난이도 덕분에 기본 영어 능력이 향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공교육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라 수능 시험을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해 만들어낸 성과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무리하게 토익, 텝스 공부를 하는 게 흔한 일이다.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얼마 전에 유튜버 ‘영국 남자’가 영국의 영어 선생님들께 작년 수능 영어 시험지를 들고 가서, 수험생들이 푸는 방식대로 한 문제당 약 1분의 시간으로 문제를 풀게 한 영상을 봤다. 영어 선생님들은 모두 어이없이 웃으면서 ‘무슨 문제가 이러냐?’라는 말부터 시작해 정말 풀기 어렵다고 소감을 말했다.


 출연한 선생님 중에서 유일하게 출제 문제를 모두 맞힌 선생님 한 분은 “그냥 여기 나오는 말과 표현, 어휘 자체가 터무니없네요.”라며 비판했다. 특히 어떤 단어는 1950년 이후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고, 아무도 일상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며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외국어 영역 시험 문제는 영국 현지에서 영어 교사를 하는 사람들조차 어렵다고 느낄 정도의 문제를 풀고 있는 거다. 이건 학생의 영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줄을 세워서 판별하기 위한 문제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상한 문제가 등장한다.



 말과 표현, 어휘 모두가 시대와 동떨어져 있을 정도로 드문 곳에서 지문을 발췌해 중복 문제를 방지하려는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다. 오로지 1등과 꼴등을 나누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시험 자체가 원래의 목적과 떨어져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게 하고 있다. 이런 게 정상일 리가 없다.


 올해 수험생이 치른 2019 수능 시험에서는 언어 영역이 ‘불수능’의 원인이 되었다며 언론에서 시끌벅적했다. 언어 영역에 등장한 과학 지문이 전문가와 기자가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을 발췌해 문제를 냈기 때문이다. 아니, 언어 영역 시험에서 왜 대학 이과계열 수준의 이해가 필요해?


 점차 시험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커졌고, 당연히 부담만큼 압박도 커져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도 학생들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어떤 식이든 내 아이는 뛰어나야 한다.’는 집착에 아이들을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정신이 무너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조금 다른 아이를 지속해서 폭행해 숨지게 하고, 결과에만 집착해 차별하는 어른들을 따라 아이들은 또래 내에서 심각한 차별과 폭력을 만들고, ‘내가 안 하면 엄마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라며 부모를 살해하는 일.


 그런 일이 내 자식과 나와 관계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당장 아이의 정신을 치료해주지 못한다면, 어디서 금이 가기 시작해 점점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심지어 부모님도 그런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몇 년 전에 화두가 된 임대 아파트 차별 문제는 어른들이 먼저 일으킨 문제다. 그 차별 문제를 그대로 자식 세대가 답습해 아이들 사이에서 차별과 편견, 폭력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한 언론 매체의 초등학생 딸은 운전기사를 상대로 협박할 정도로 ‘악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악마로 자라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놀랄 희대의 악마를 만들어낼지 기대해도 좋다. 수능은 끝났지만, 공부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이 공부 지옥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악마가 되어버렸거나 정말로 끝까지 참아내어 환생의 기회를 얻은 귀인. 점차 이 공부 지옥은 악마를 더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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