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학 졸업 인증 제도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는 필요하다, 하지만 꼭 강제해야 하는 걸까
한국의 모든 수험생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선택받은 사람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서울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는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오르더라도 거절하지 않는다. 때때로 정말 집이 가난해서 목표를 낮추는 사람도 있지만, 명문대에 갈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입학을 한다.
공부를 하는 일도 어려운데,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한국에서는 반값등록금 실천을 위해서 많은 움직임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반값등록금은커녕 등록금 할인을 받기도 쉽지 않다. 지금 진행하는 국가 장학금도 군데군데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한데, 내가 왜 소득분위에서 5분위인가요?’
한국 장학 재단에서는 최대한 깔끔하게 소득 정보를 계산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이 가지는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 당장 독일처럼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적은 기회를 착실히 찾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제 ‘장학금 설계사’라는 직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입학한 대학은 졸업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한다면 웬만큼 점수를 받아서 졸업할 수 있다. 문제는 졸업할 때 ‘학교의 체면치레’를 위해서 몇 가지 자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토익이 850점 이상이 되거나 특정 자격증을 따는 일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도 졸업을 위해서 몇 가지 요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4학년까지 몇 학점을 채워야 한다는 등의 자질구레한 것은 제쳐두자. 졸업하기 위해서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JLPT N1 자격증과 토익 750점 이상의 점수다. 두 가지 모두 외국어 대학이라서 사실 수긍할 수 있는 목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꼭 졸업 인증 제도를 통해서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누구나 똑같은 자격증을 손에 쥔 채로 졸업할 필요가 있을까?
똑같은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모두 각자 전공이 다르고, 전공이 같더라도 모두 하고 싶은 일과 세부 전공은 다르다. 일본어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모두 일본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전공을 통해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가질 확률이 높다.
일본 인턴 연수를 통해 알게 된 한국분도 미대를 졸업하고 디자인을 하다가 우연히 일본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와서 자리를 잡으면서 일본어를 배웠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기타큐슈 라디오 방송에도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다. 굉장히 놀랍지 않은가?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이렇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다양한 범위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많은 교양 과목을 전공과목과 함께 들으면서 보는 시야를 넓힌다. 즉, 교양 과목을 다양하게 듣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할 정도로 관심사를 넓힐 수 있다. 이게 대학이 가진 매력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취업을 위한 취업 훈련소’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학생들에게 교양보다 자격증을 요구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대학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것은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필수 기초 과목 이수를 통해서 적어도 선택한 전공과목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그렇다.
어쩌면 그게 대학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일지도 모른다. 비싼 돈을 사용해서 들어간 대학인만큼 대학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전공과목을 통해 얻는 기초 지식과 교양과목을 통해 듣는 ‘올바른 성인으로서 가지기 위한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배움의 연장선’에 있는 대학이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대학 졸업을 위해서 지나치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좀 지나치다. 특히 대학 졸업생 중 몇 명이 취업하고, 그중 몇 명이 어디에 취업했는지를 따져가면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경쟁을 하는 건 절대 좋지 않다.
이건 학생들을 장기말로 이용해 수 싸움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은 학생들이 스스로 돈을 내고 다닌다. 돈을 내고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고, 한국 사회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해서다. 각자 분명한 목적이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 도전도 해야 하고, 사람을 알기 위해서 사회봉사도 해야 하고, 큰 인재가 되기 위해서 누구나 한번은 간다는 유학(교환학생)도 한 번은 가야 하고, 대학 캠퍼스 로맨스도 한 번쯤 해야 한다.
도대체 이 많은 일을 하면서 언제 공부하고, 언제 대학이 요구하는 졸업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대학에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듣는 수업이면 충분하다. 울타리가 쳐진 직사각형의 건물에서 탈출해 자유롭게 세상을 둘러보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대학에서 굳이 졸업 인증 제도를 만들어서 ‘이 정도 요건은 갖추고 나가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다.
대학을 나오면 얻는 게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본인이 스스로 찾아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킨 대로 해서 얻은 결론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수동적인 교육을 받은 탓에 대학에 올라와 ‘취업’이라는 길을 마주했을 때 ‘난 뭘 하고 싶지?’라는 고민을 오랫동안 한다.
뒤늦게 ‘난 뭘 하고 싶지?’ ‘평소 어떤 데에 흥미가 있더라?’ 질문에 답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거치는 공부는 전공과목을 통해서 ‘내가 이 분야에 얼마나 진지하게 공부 수 있을까?’를 알아가고, 교양 과목을 통해서 ‘묘한 설렘이 있는 분야는 뭘까?’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 나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모두가 생각하는 정답에서 어긋난 생각일 수도 있고, 이제야 겨우 대학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이 된 시점에서 하는 신세 한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정도 이 문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이라는 곳을 잘 활용해 시야를 넓히며 만난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이 요구하는 조건을 채우느라 그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건 본말전도이지 않을까? 참, 한국의 청춘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