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학교와 교육

당신은 아이를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부모입니까

노지 2017. 9.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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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사교육의 딜레마, "당신은 시키는 부모입니까, 보여주는 부모입니까?"


 지난 일요일 저녁에 드라마 <구해줘>를 보고 나서 SBS 채널을 틀었을 때 우연히 <SBS 스페셜 사교육의 딜레마>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SBS 스페셜> 시리즈는 과거 <학교의 눈물> 에피소드 이후 무척 오랜만에 본 프로그램인데, 사교육을 주제로 한 이번 기획도 무척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비록 중간부터 프로그램을 본 게 되었지만, 방송을 통해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사교육의 딜레마>를 통해서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은 오래전부터 교육의 주체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많은 어른이 아이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모두가 하는 목표를 아이가 가지도록 했고, 모두가 '왜?'라는 질문 없이 걷는 길을 걷도록 했다. 만약 여기서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면 호되게 야단을 쳤다. 패배자, 낙오자라는 말은 어김없이 나왔다.


 "너 그렇게 공부 안 해서 뭐 하려고 그래?" "대학 안 가면 너 인생 망한다." "엄마가 그렇게 해줬으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거 아냐! 왜 학원은 안 가려고 해! 성적은 이게 뭐야?" "네가 지금 게임할 때냐? 그런 시간에 공부나 더해!" "뭐?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런 건 대학 나와서 취미로 하는 거야."


 아마 위의 말을 적어도 한두 번은 모두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었던 시대적 흐름에서 여전히 한국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 졸업을 해도 충분하지 않아 어학연수, 대학원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는 스펙을 쌓아야 한다. 이건 비극이 아닐까?



 한국의 교육이 비극에 가까운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의견'은 배제된다는 점이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하기 싫다고 말해도 어른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이가 하려고 하는 것이 부모의 뜻과 일치하면 응원해주고, 아이가 하려고 하는 것이 부모의 뜻과 일치하지 않으면 짓밟는다.


 문제는 강제로 시키는 일이 점점 아이의 자주성을 침해하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시킨다는 점이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다가 자신의 인생은 모조리 놓친 채로 살면서 '도대체 내가 왜 사는 걸까? 전혀 행복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땅을 보고 걷게 된다.


 한국의 청소년 행복지수, 청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에서 밑바닥을 기는 이유는 바로 이런 환경이 만든 탓이 아닐까? 분명히 우리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일을 해내고자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갖다 바쳤는데, 어른이 되어 듣는 건 "수고했다."는 격려조차 제대로 듣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도대체 그 나이까지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하고, 뭐하면서 인생을 살았느냐?"라는 상처를 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뒤늦게 자아 찾기에 나서려고 해도 "허튼 시간 보내지 마라."라며 그 시간에 남들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는 걸 강조한다. 대학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취업, 취업하는 것도 그 이유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우리가 사는 삶이 너무 아깝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한 채, 남의 시선만 신경 쓰느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게 과연 정상일까? <SBS 스페셜 사교육의 딜레마 2부>에서는 이 모습을 지적했다.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부모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 부모가 말한 "부모의 삶은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 아니다.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은 아이에게 돈만 주면 된다는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라는 말은 한국 교육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 말은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가리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비싼 사교육을 보내면서 부모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아이들이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건 진짜 부모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서 학원에 보내준다고 집에서 엉망인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도 있다.


 진짜 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시키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음주·가무를 즐기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당연히 아이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 또한 책을 읽게 된다.


 <SBS 스페셜 사교육의 딜레마 2부>에서는 부모가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해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런 모습이 아주 특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단, 어려운 점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그것을 알아가고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인생을 걷는 속도는 서로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 놀아도 되는 걸까? 당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어느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아이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하지만, 알아서 책임지라고 말하는 일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믿고 맡긴다는 게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억지로 시키는 것만큼 힘든 게 믿고 맡기는 일이다.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이것을 간섭할까, 참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것을 참고 믿어주는 것은 그만큼 힘든 선택을 한 거다. 저는 제가 한 방법을 똑같이 권하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을 갖고 있고, 동의하는 사람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잘못된 방법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제가 제 아이들을 안 믿는데, 누가 우리 애들을 믿어주겠는가?"



 믿어주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특히 부모가 아이를 믿는 일은 부모에게 '참을 인'자를 108번 몸에 새기는 일과 같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과연 내 아이를 이대로 내버려도 될까?'는 걱정을 부모가 먼저 하기 때문이다.


 어느 어머니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남이 아닌 내 아이에 집중할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주변에서도 나를 향해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영재고, 특목고는 아니더라도 인문계를 통해서 대학이 아닌 길을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는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가는 것도 싫었고, 고3 내내 수능에 매달리며 보내는 건 너무 허무하잖아요.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남들의 눈이 아니라 엄마의 눈으로 관심 있는 걸 찾아줘야 합니다. 용기가 부족한 것은 아이와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가는 정해진 길을 가는 일은 무척 쉽지만, 끊임없이 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는 일을 선택하는 일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부모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내진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수학에 대한 흥미가 다시 커졌다. 자신의 의지와 무엇을 하는 게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학원을 보낸다, 안 보낸다'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할지 말지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선택해야 한다. 사교육을 할지 말지도 아이가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열심히 다니고, 그만큼 성적도 나오고. 그러면 가성비 좋은 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대신 믿고 기다려줬더니 스스로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이가 품은 마음부터 다르기 때문에 결과 또한 크게 차이가 난다. 아무리 고액의 사교육비를 쓰면서 아이에게 투자하더라도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닌 거다.


 아이들 대신 부모가 선택하는 결정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만약 지금 부모가 되어 있다면, 당신은 어떤 부모로서 아이를 대하고 있는가?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자유로운 선택과 자유롭지 못한 선택에 따라 결과는 크게 바뀐다고 생각한다.


 <SBS 스페셜 사교육의 딜레마>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IPTV를 통한 다시 보기를 이용하거나 카카오TV, 네이버TV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편집된 영상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아이들이 나온 것은 자기 의지를 애먼 곳에서 찾으려는 일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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