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와 나무 회초리로 맞았던 그시절
가정과 학교의 체벌이라는 이름의 학대와 폭력은 언제나 있었다
오늘은 조금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에 아동 학대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아동 학대는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런 아동 학대 사건은 대체로 가정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아직 우리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동 학대 사건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일어나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의식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교육적 목적을 위한 체벌이라고 해도 저건 너무 심해. 폭력 아니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내가 초·중학교에 다녔던 시절만 하더라도 부모님께 폭행을 당해 몸에 피멍이 든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학교 내에서 선생님도 웬만큼 큰 아이의 팔뚝 두께에 이르는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자습 시간에 조용히 하지 않는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붙여 체벌을 하는 모습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아이를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행동을 해버리면 무조건 '아동 학대'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아동 학대에 대한 접근이 낯설기만 해서 일본과 유럽과 미국 같은 경우에 '친권 박탈', '교권 박탈'에 이르는 폭행은 여전하다.
ⓒKBS 뉴스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시절은 불과 13년 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학교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중학교에 다녔던 시절, 나는 자주 남 때문에 단체 체벌을 받았다. 그 단체 체벌은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의자를 들고 1시간 동안 있거나 굵은 나무 막대기로 몇 대씩 맞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체육 선생님에게선 골프채로 맞는 일도 있었다. 가벼운 골프채가 아니다. 평범한 골프 경기에서 쓰는 보기만 해도 단단해 보이는 그 골프채로 엎드려 뻗친 자세로 맞았다. 그때 맞았던 골프채의 묵중한 타격 소리와 나중에 '아, 시발. 존내 아프다.'라며 아이들끼리 말한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교사는 교육을 이유로 아이들을 때려도 되고, 부모는 '네가 잘못했으니까 맞았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폭행이었고, 아동 학대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골프채로 맞아서 시퍼런 멍 자국이 엉덩이에 난 것은 상해치사다. 반 평균에서 모자란 1점당 맞다가 엉덩이에 피멍이 든 아이는 명백히 공개적으로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교사가 휘두르는 폭행은 아이들 사이에서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JTBC 뉴스룸
더욱이 그때는 부모님 세대 또한 그런 행위를 폭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한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피해자 책임론은 언제나 '네가 뭘 잘못했으니까 맞았지!', '시험을 잘 치면 됐지.', '니도 같이 때리면 되지, 왜 맞기만 했냐' 등의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아직도 아동 학대에 대한 어중간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뉴스로 보도된 박 양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비인간적인 부분들이 드러나서 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학대는 여전히 '그게 왜 폭력이야? 교육이지'라는 말로 수습되고 있다.
어쩌면 그때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 것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때의 아이들이 다시 교사가 되고, 부모님이 되면서 여전히 '그 정도는 교육이지', '그건 아이들끼리 장난이지.'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은 정말 흔하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학교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명백한 아동 학대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는지 등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도덕도 교과서 읽기와 암기 시험에 불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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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폭력이 교육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다. 어떤 이유를 붙여서 공개적으로 체벌하거나 몇 명의 집단 단위로 체벌을 하게 되면, 아무도 대항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다수가 침묵을 지키는 폭력은 어느 사이에 습관이자 관례가 되어버리고, '어쩔 수 없는 일' 혹은 '당연한 일'이 된다.
이러니까 몇 아이와 어른들 사이에서는 '때리지 않으면,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손쉽게 나오는 것이다. 과거 대학생 때 들었던 한 초청 강사의 수업에서 학교 체벌 금지 법안에 대해 어느 학생이 "저 같은 아이는 맞아야 말을 듣거든요. 정말 체벌이 없어져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정말 심각한 질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고, 폭력을 섞어 공포와 두려움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선생님이라고 하여 폭력이 정당할 수는 없다. 내가 사장이니 운전기사를 때리고, 보상비도 줬으니 문제 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요즘 시대에 골프채를 들고, 학교에서 아이를 공개적으로 때리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그런 교사가 있다면,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찍혀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게 순식간의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폭력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예절을 먼저 가르치는 교육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게 폭력은 대물림된다. 폭력 교사에서 폭력 부모가 되고,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되고, 다시 한 번 더 바퀴는 돌아간다. 가끔 지나친 폭력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 '나부터 잘못되었다.'이라는 노력이 없으면 어렵다. 골프채와 나무 회초리로 맞았던 그 시절과 다른 건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