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구수정 이사가 보여준 진짜 베트남 전쟁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베트남 전쟁의 민낯을 보여주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역사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승리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의도대로 작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에는 당사자에게 불편한 진실은 빠지거나 교묘히 왜곡된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일본이 위안부 사건을 대하는 태도이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을 때 벌인 갖은 만행을 연구로 위장하거나 오히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말하며 진실을 덮고자 했다. 이에 피해 국가들은 끊임없이 일본이 잘못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고, 힘의 논리에 따라 일본은 맞서기 쉽지 않은 나라에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아니었다.


 여전히 일본은 한국과 위안부 문제를 진실 공방으로 몰아가며 싸우고 있으며, 독도 영유권 문제를 놓고도 갈등을 일으켜 ‘문제가 있는 지역’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 그렇다. 역사라는 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까지 이어지면서 각 나라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거다.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와 피해자들은 “우리를 기억해달라.”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피해자에서 벗어나 만약 가해자의 입장에 선다면 우리는 똑같이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 어린 사과를 전할 수 있을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해달라.”라며 힘없이 말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의 사건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미화하며 ‘잘못은 없었다’라는 태도를 일관하며 일본과 똑같은 태도로 피해자와 나라를 대했다. 그 나라는 바로 베트남이다.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은 월남의 전사 등의 이름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외국에 나가 전쟁을 통해 외화를 벌인 일로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용감하게 공산당과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고,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 두고 일치단결하여 싸운 용사들이었다.


 물론, 이 말이 진실을 크게 왜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시선’으로 본 베트남 전쟁만 보고 있다는 걸 과연 알고 있을까? 베트남 전쟁은 오늘날 너무나 미화되어 한국에서 무용담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전쟁터가 되었던 베트남에는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도대체 한국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질러서 베트남에 ‘한국인 증오비’가 있고, 그 증오비에 ‘하늘에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말이 적혀 있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언제나처럼 한국에서 하는 너무나 익숙한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제(1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는 구수정 한국 베트남 평화재단 이사가 출연하여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한 번도 보지 못한 베트남 전쟁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온 ‘우리는 사과해야 하는 입장인가?’라는 질문도 큰 의미가 있었다.


 구수정 이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빈호아 마을에 세워져 있는 한국인 증오비를 소개했다. 빈호아 마을에 세워져 있는 한국인 증오비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라는 살짝 섬뜩할 정도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도대체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무엇을 했기에?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구수정 이사는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계기부터 전쟁의 과정, 한국인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게 된 일까지 하나하나 다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는 사뭇 어디서 겪어본 듯한 나라가 떠오르는데, 그 나라는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한국이다. 베트남과 한국은 너무나 닮은 나라였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광복절이 8월 15일이다. 똑같이 일본에 지배를 받다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같은 날에 독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건 이것만이 아니라 독립 이후 남과 북이 갈라져 각각의 정부를 세웠고, 남과 북의 시민들은 모두 통일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거다.


 통일을 향한 염원은 미국의 지지 속에 당선된 남베트남의 대표 지엠이 자신의 폭거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모두 공산당으로 몰면서 옅어지게 되었다. 독립 이후 프랑스를 간신히 몰아낸 베트남은 남과 북이 내전 양상이 띄기 시작했고, 여기서 도미노 사태를 걱정한 미국은 자작극을 벌여 참전한다.


 그 자작극은 바로 ‘통킹만 사건’이다. 통킹만 사건은 북베트남이 통킹만에서 미국의 배를 습격한 사건인데, 이 사건 자체가 ‘미국이 벌인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30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어쨌든, 미국은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개입할 명분이 되면서 미국은 나토와 UN에 참전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이 자작극을 통해 명분을 만들려고 해도 그 공신력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나토와 UN은 제네바 협정에 의해 통일을 앞두고 있는 베트남의 내전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자, 미국은 다른 나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 나라 리스트에는 대만, 태국, 한국 등의 나라가 올라가 있었다.


 구수정 이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점은 한국의 베트남 파병이 미국이 먼저 요청한 게 아니라 한국이 먼저 제안한 거라는 사실이다. 베트남 남북 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일 때도 이승만이 파병을 하겠다고 제안을 먼저 했었고, 베트남 남북 전쟁 때는 박정희가 먼저 제안했다.


 이 두 전직 대통령이 이 같은 제안을 먼저 한 이유는 자신이 오랫동안 정권을 손에 쥐고 있기 위해 미국과 친해지기 위한 전략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전쟁을 통해 외화를 벌이겠다는 경제적 목표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미국의 신의를 얻기 위해 한국의 젊은 피를 희생한 거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8년 동안 한국은 1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경제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맹렬히 비판한 일본의 “한국 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라는 말을 따라 한국도 “베트남 전쟁은 신이 한국에 내린 선물이다.”라고 말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들인 8년간의 10억 달러는 일본이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매해 버는 수익에 지나지 않았고, 한국은 다른 나라의 군대보다 열악한 보상을 받으며 베트남 전쟁을 치렀다. 고작 30명을 파견한 대만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적게 벌었고, 대만보다 약간 더 번 정도이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 있었으니 한국이 베트남 전쟁을 미화해 참전 용사들을 치켜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정부가 책임을 지고 제대로 대우해주지도 않았고, 전쟁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트라우마를 겪으며 지냈다. 이득을 본 건 고위 관료뿐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한 끝에 드디어 베트남 전쟁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다. 민간인 학살의 최초 계기가 된 사건은 구정 공세 시기에 기습을 당한 미군이 ‘밀라의 학살’로 불리는 미국이 가장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은 그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기 시작하니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또한 더 잔혹하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베트남에서 인기 관광지로 손꼽히는 다낭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많은 마을에서도 한국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저지른 그 학살은 미국인에 의해 사진으로 남았다.



 기밀 유지가 해제된 이후 그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사진 속에 비쳐진 베트남인들은 많은 사람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이름을 갖지 못한갓난 아이도 있었다. 구수정 이사가 베트남을 찾아 사진을 들고 “누구인지 아시느냐?”라고 물었을 때, 동년배의 사람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가해 사실과 피해자를 쉽게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절대 자신이 당한 사실과 가해자를 잊지 못한다는 걸 여기서 또 아라 수 있었다. <차이나는 클라스> 방송에서는 이 이외에도 많은 사실을 새로 알게 해주었다. 하미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과 하미 마을의 위령비에 덮인 대리석과 관련된 일화까지.


 오늘 우리가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는 거다. 남의 흠만 보면서 자신의 흠을 보지 못한다면 그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일본이 저지른 일에 사과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베트남에 저지른 일에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양국 간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했고,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손을 잡고 가자는 말을 건넸다.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있었던 일을 여전히 미화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보지 못하면 진짜 보수라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모의재판에 참석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베트남 사람들은 “기억해달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건 일본에 만행에 큰 피해를 본 위안부 할머니들이 남기신 말씀과 똑같고, 세월호 사건에 희생된 사람들이 남긴 말과 같은 무게의 말이다.


 <차이나는 클라스> 구수정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베트남 전쟁이, 과거의 역사가, 오늘과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았고,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과제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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