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권, 현직 의사가 말하는 오늘

신의 카르테, 일본 현직 의사 작가가 일본 특유의 감성으로 그린 소설


 많은 사람에게 속 시원한 사이다와 눈물 섞인 공감을 선물해준 법정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끝나고, 의료 드라마 <라이프>가 이제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밤을 채워주고 있다. 의학 드라마 <라이프>는 ‘의료’라는 분야에 대해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 아주 차갑게 말하고 있다.


 지난주 드라마 <라이프>를 보면서 서울 병원에서 지방 병원으로 갈 사람을 차출하는 방침에 대해 사장이 의사들을 상대로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부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싶어 해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고 싶지 않는다며 던지는 날카로운 비판이 사뭇 놀라웠다.


 지방에서는 의료 시설과 전문의가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 서울에는 또 그만큼의 사람이 몰리며 의요 수요와 공급을 지탱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필히 지금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드라마 <라이프>는 무척 흥미롭다.


 오늘은 <라이프> 같은 작품은 아니지만,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치열함 속에 있는 눈 깜짝할 새 같은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신의 카르테>라는 소설을 읽었다. <신의 카르테>의 저자 나쓰카와 소스케는 일본에서 의학부를 졸업한 후 현직 의사로 일하며 꾸준히 소설을 쓰는 놀라운 인물이다.


 나쓰카와 소스케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계기는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다. 그때는 작가의 이름이나 이력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상태로 책만 읽었는데,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의 소설이라고 말하며 책을 읽으려고 했을 때 작가 소개를 보고 현직 의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 정말 대단하다.



 <신의 카르테>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혼조 병원이라는 지방 병원에서 일하는 내과의로, 의사 수가 많지 않아 내과의임에도 불구하고 응급의료까지 하는 당직을 서는 인물이다. 그는 병원 내에서 ‘구리하라 선생님이 근무하는 날에는 환자가 많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바쁘게 근무하고 있었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병원에서 바쁘게 근무하는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를 중심으로 하여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의 카르테 1권>은 환자를 통해 마주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환자와 사람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주인공을 향한 질책뿐만 아니라 한 명의 의사로서 살아가는 ‘오늘’의 무게를 무겁게 다룬다. 주인공이 홀로 느낄 수도 있는 이 감정은 그가 머무르는 ‘온다케소’라는 이름의 2층짜리 목조 가옥에 하숙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목조 가옥은 들국화방, 도라지방 등 각 방의 이름이 꽃 이름으로 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남작’ 혹은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은 모두 각자 사정이 있어 온다케소라는 하숙집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문득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소세키의 ‘풀베개’의 서두이다. 명문이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나는 이어지는 문장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로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어깨를 움츠린 남작이 탐나불린(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12년산 병을 들어올렸다.

“그럼 살기 어려운 세상을 위해.”

나는 백자 잔을, 학사님은 와인 잔을 들었다.

“살기 어려운 세상을 위해.”

“건배.”

형광등의 흐릿한 불빛 아래 세 종류의 술이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본문 62)


 하숙집에서 주인공과 학사, 남작 세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을 사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치 같은 큰 분야가 아니라 우리 인생이 바로 그랬으니까.


 사람을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는 게 분명하다. 모두가 고집을 꺾고 사회가 보여주는 ‘규칙’이라는 이름에 절대복종하여 토를 달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 “이건 잘못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미 그 사람은 모난 돌이 되어 질타를 맞는다. 오늘이 남루한 까닭은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의 카르테 1권>은 읽기 어려운 소설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에 재미있거나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이야기가 많았다. 병원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연명치료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비롯하여 주인공이 ‘큰 대학 병원’에 갈 것인지 ‘지금의 혼쇼 병원’에 남을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잘 그려졌다.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가 자신의 눈앞에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한 과정이 <신의 카르테 1권>에서 그려진다. 그가 어떤 선택지를 고르는 데에 영향을 준 건 병원에서 만난 환자, 간호사, 동료 의사, 온다케소의 하숙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오늘을 중요시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불평하든 우리는 한 가지 확실한 걸 알고 있어.”

아내의 올곧은 시선을 뺨 언저리에 느끼면서 나는 달을 올려다보고 혼자서 수긍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물론 우리도 포함해서 말이야.”

온타케소는 불가시의한 공간이다.

마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방환한 끝에 발견한 가게코미데라(에도 시대에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도망쳐 들어오는 여자를 보호하여 이혼을 성립시키던 절) 같은 모습이 확실히 있다. 하지만 가케코미데라와 크게 다른 점은, 찾아온 이들이 결코 세상을 비관하며 출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다시 배를 띄운다. 그들은 난파를 두려워해 외딴 섬에 틀어박히지 않는다. 살기 힘든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요령이 부족한 사람들을 기인이라며 수군거리는 것은 인생의 어려움을 실감한 적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망언이다. (본문 120)


 온타케소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남작과 학사 두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이 병원에서 근무하며 마지막을 보낸 환자들의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남는 이유는 필히 내가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카르테 1권>에서 읽은 주인공의 이름에 담긴 뜻인 ‘이치토 = ‘一(이치)’와 ‘止(토)’를 합치면 ‘正(정)’이 된다.’라는 풀이도 재밌었다. <신의 카르테 1권>은 주인공의 이름이 가진 뜻과 주인공이 한 선택을 풀어내며 이야기를 마친다. 주인공이 개운한 기분으로 말하는 독백은 다음과 같다.


인생을 길다. 조만간 또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을 것이다. 우왕좌왕하며 돌아다니고 하찮은 일에 사로잡혀 고뇌할 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나는 소리 높여 외치리라.

멈춰 서서 가슴을 펴고 망치를 휘둘러라!

발밑의 흙에 무심히 정을 갖다 대라!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대답은 항상 그곳에 있다.

‘하나’에 머문다고 쓰고 ‘바르다’라고 읽지 않는가. (본문 254)


 <신의 카르테 1권>을 다 읽고 나면 결국에 남는 건 주인공의 선택지다. 우리가 보는 의료 드라마 <라이프>처럼 치열한 싸움이 그려지지 않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처럼 달달하거나 애절한 마지막을 그리지도 않는다. <신의 카르테 1권>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을 다룬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쁜 병원, 온다케소에서 마주한 사람들끼리 술 한 잔을 걸치며 나누는 잠담. 어쩌면 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혹은 평범한 의사의 모습. 그 모습을 통해 저자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책을 읽고 마지막에 남는 건 ‘오늘’이라는 선택지 하나.


 현직 의시가 그리는 병원에서 보내는 오늘과 집에서 보내는 오늘을 담은 소설. <신의 카르테>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혹 기회가 된다면 책이나 영화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다. 부디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아 있는 게 즐겁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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