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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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약자의 삶이 가진 비애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보여주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과 이어진 재판 내용은 사뭇 가슴을 먹먹하게 할 때가 많다. 그 재판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 있고, 그 재판의 내용이 어쩌면 우리가 지난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면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항상 저 일이 우리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방송된 <미스 함무라비 12회>에서는 음주로 법원에 기소된 노인분들의 사건이 다루어졌다. 우리 한국 사회는 음주 문제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이야기가 항상 있었다. 법원에서도 아주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고도 '음주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심신 미약이 인정되어 감경되어 국민의 공분을 산 적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는 술을 마셨으면 더욱 가중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판결 기준이 새롭게 나오고 있지만, <미스 함무라비 12회>를 보면 살짝 그 목소리가 망설임으로 인해 떨리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와 하루살이처럼 겨우겨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를 우리는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임바른 판사는 심신 미약을 통해 감경을 해주자는 한세상 판사의 말에 극구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한세상 판사는 70이 넘은 노인에게 징역 5년은 가혹하다고 말하며 "징역 1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고 조언한다. 임바른 판사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법은 원칙에 의해 누구나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저 사람의 감성적으로 보면 70이 넘는 노인분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일은 꼴사나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5년이라는 징역 처분을 마냥 반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일의 이유 있는 그림자를 우리가 바라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좋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그늘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동안 법정 드라마가 재벌가와 정치인이 저지르는 범죄가 얼마나 악랄하고, 정의를 좇는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을 이겨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가해자의 이유와 피해자의 사정까지 세세히 파고들면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번 인터넷 기사를 통해 마냥 욕하기 바빴던 그들의 삶과 너무 세상이 무정하다고 말한 세상이, 알고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미스 함무라비 12회>에서 박차오름 판사는 주폭 노인 사건과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 음주 운전을 한 노인이 평소 지낸 모습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서 본 것은 두 노인이 사는 모습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도 이렇게 사람이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 가난이라는 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저지른 범죄가 용서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재활의 기회를 주는 일이 필요하다. 종종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생활형 범죄와 재벌의 범죄가 같은 항목으로 분류되어 똑같은 처벌을 받아도 항상 생활형 범죄자는 더 길게 옥살이를 해야 하니까.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2회>에서도 전과 26범이라고 말하는 주폭 노인의 범죄는 죄명만 보면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 정도로 악랄한 악인이 있나 싶을 정도이지만, 막상 그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일이었다. 돈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보상을 해주고 넘어갔을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노인은 매번 기소를 당해 처벌을 받았고, 그렇게 줄이 그어져 있어 다른 기회를 손에 넣지 못해 똑같이 삶을 살다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제대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밖에 없었던 거다. 술 없이 오늘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술의 의존해야만 했던 게 아닐까?



 참,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볼 때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문젯거리'라고 지적하면서도 제대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지금도 비슷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법정에 서고 있다. 나는 법원에서 2년 동안 공익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드라마에서 본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본 적도 많았다.


 어느 노인분은 아예 한글을 읽을 수도 없어서 국선 변호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분들이 일으킨 범죄라고는 술값을 내지 않은 무전취식, 길거리에 버렸다고 생각한 펑크 난 리어카를 끌고 갔다가 기소당한 절도였다. 사소한 오해와 착각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는 일로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법정에 나와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법정에 오면 살짝 두려움을 품어 조용조용히 판사의 말을 경청한다. <미스 함무라비 12회>에서 5년 형을 선고받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퇴장한 노인분처럼 자신의 받은 처벌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퇴장한 노인분을 뵌 적도 있었다. 그때 어찌나 마음이 복잡했던지….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2회>에서도 임바른 판사가 재판이 끝난 이후 법원 직원들과 회식을 하다 한 재벌가 회장이 수백억대 횡령 사건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한다. 자신이 선고한 징역 5년의 무게와 재벌가 회장이 받은 5년의 무게가 같다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임바른 판사는 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속을 게워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눈물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드라마에서 임바른 판사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라며 임바른 판사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5년을 구형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라는 말. 이 말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약자가 단단해지지 못한 걸 비판하는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어느 정치인이 말한 "그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자세로 나약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하고 나서 정규직이 정시에 퇴근할 때 남아서 일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과 파견직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약자가 견뎌야 하는 어려움을 가볍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2회>. 나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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