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괴물, 밤의 괴물과 밤의 쉬는 시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 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작가 스미노 요루의 신작 소설


 사람에게 새겨진 상처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신체적 상처는 성형 수술을 통해서 감출 수 있다고 하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계속 남아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는 없어진 게 아니다. 마음의 상처는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강한 집착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데이트 폭력의 이유도 어쩌면 공부 하나만 강요하며 사랑을 주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사실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외면하면서 살아야 했고, 내 마음의 상처를 마주보기 위해서는 눈을 돌린 불편한 진실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일본 작가 스미노 요루의 신작 소설 <밤의 괴물>은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작품이었다.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게 옳은 해석인지 알 수 없지만, <밤의 괴물> 소설이 다룬 ‘따돌림’이라는 소재에서 나는 잊으려 했던 상처를 떠올렸다.


 그 상처는 나의 몸에 새겨진 외상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내상이다. 단순한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당했던 학교 폭력. 학교 폭력이라고 말해도 누구 하나 폭력이라 말하지 않고, 단순한 장난에 내가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그 비정한 폭력. 그때 입은 상처는 스물아홉이 된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밤의 괴물>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의 이름은 ‘야노 사쓰키’라는 소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남과 다르게 조금 뒤떨어지는 모습이 있었던 그녀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반 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들의 짓궂은 일에 보이는 반응은 오직 웃는 일밖에 없었다. 아침에 등교해서 반에 들어올 때도 “안녕.”이라고 말하며 웃으면서 들어오고, 누군가가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엉망으로 부수는행위를 해도 멋쩍게 대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옅은 죄책감으로 더 악랄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데 <밤의 괴물>을 읽으면서 왜 야노 사쓰키가 웃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야노 사쓰키가 아이들 앞에서 웃었던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서운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어설프게 웃는 일이 두려움을 표현하는 거였다. 당연히 이 사실을 어느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녀의 이 비밀을 깨달은 인물은 <밤의 괴물>에서 밤에 괴물로 변한 인물이자 작품을 바라보는 주인공인 ‘앗치’라는 인물이다. 그는 우연히 자신이 밤에 검은 알갱이로 둘러싸여 괴물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에는 괴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놀랐지만, 이윽고 밤마다 괴물의 모습으로 산책하러 다닌다.


 한날은 수학 숙제를 하기 위해서 학교에 두고 온 수학책을 가지러 밤의 학교에 들어간다. 그때 교실에서 앗치는 밤의 교실에 있던 야노 사쓰키를 만난다. 괴물로 변한 앗치의 모습을 보고 야노는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윽고 “너, 앗치맞 지?”라며 특유의 말투로 앗치가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앗치는 ‘어떻게 나인 줄 알았지?’라며 식은땀을 흘리며 얼버무리려고 하다 완전히 정체를 들켜버리고 만다. 여기서 야노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 대신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의 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밤의 시간과 낮의 시간. 낮에는 평범히 반에 섞이는 클래스메이트이지만, 밤에 괴물이 되는 주인공 앗치. 낮에는 따돌림을 당하며 홀로 보내지만, 밤에는 괴물이 된 주인공 앗치와 이야기를 나누는 야노 사쓰키. 밤과 낮, 사람과 괴물이라는 대비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구성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밤에 괴물이 된 주인공은 6개의 다리와 8개의 눈을 가진 괴물이지만, 낮의 주인공은 반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에 눈 감고 있는 학생이다. 잠시 생각해보면 낮의 모습 또한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눈앞에서 버젓이 같은 반 친구의 소중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모습이 말이다.


 주인공의 반에는 야노를 괴롭히는 일에 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연히 반의 한 인물은 야노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줬다가 새로운 추가 타겟이 되어 괴롭힘을 당했다. 그 인물은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야노에게 심한 짓을 해야만 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 판사가 핏대를 세우며 말한 “눈 가리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네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라고 말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이라는 학교 폭력이 바로 그랬다. 눈 가리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평범해질 수 있었다.


 소설 <밤의 괴물>은 낮의 학교에서 보내는 야노와 주인공의 모습, 밤의 학교에서 보내는 야노와 주인공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주인공이 낮과 밤의 모습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디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고, 누군가 나서 반 내의 잘못된 모습을 고치려는 행동은 없었다.


 소설 <밤의 괴물>을 읽는 독자는 주인공 앗치가 하는 고민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 있었더라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라고 공감하거나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 판사가 보여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다수의 폭력이라는 건 바로 그런 거다. 우리는 침묵하는 것으로 그 폭력을 무시하면서 책임질 일이 생겼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며 변명한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는 가담하지 않았다’, ‘나는 말렸다.’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면 자신에게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사실은 가해자와 똑같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변명할 수 없다. 소설 <밤의 괴물>이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에는 ‘낮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밤에 괴물로 변해버리는 주인공 앗치이지만, 낮의 학교에서 보는 같은 반 아이들의 모습 또한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밤의 괴물> 마지막은 끊임없이 고민하던 주인공 앗치가 마지막에 한 선택지를 고르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은 거기서 끝을 맺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인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라는 한 줄의 문장이 모든 상황을 잘 설명한다.


 밤마다 괴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이유를 상상해보자. 주인공이 낮 동안 야노가 아이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쌓였을 죄책감. 어쩌면 그 죄책감이 주인공이 밤에 괴물로 변하도록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괴물의 한 부분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법이다.


 그동안 읽은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두 개의 소설은 눈물이 쏟아지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이번에 읽은 <밤의 괴물>이라는 소설은 살짝 이해가 어렵지만 분명히 우리가 고민해볼 문제를 던지는 소설이었다. 다른 독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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