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일본 서점가를 강타한 평범한 샐러리맨이 쓴 소설! 당신은 자신보다 소중했던 사람이 있나요?


 나이가 삼십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세대 차이’라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느끼고 있다. 대학 졸업을 두 번은 했을 나이임에도 아직 대학을 다니면서 마주하는 새내기 대학생들의 모습은 보면 놀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더러 보게 된다. 이제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은 그저 ‘어린아이’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스무 살의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확고한 목표를 지니고 있어 앞으로 쑥쑥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괜히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고독해지고 싶어진다. 이런 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는 걸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어울린 시간을 추억으로 돌아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어울린 시간을 추억으로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 어른이 된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어울린다.


 ‘어른’이라고 스스로 지칭하기에 해보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다. 캠퍼스 벚나무 아래에서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두근거리는 첫사랑도 못 했고, 첫 러브호텔 같은 경험도 없다. 그저 나이만 채워가면서 자신의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인이 되었을 뿐이다. 아직 나는 어른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읽은 일본 소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제목부터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책을 살 때는 몰랐었는데,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이 일주일에 한 번씩 트위터에 연재한 글이 소설로 묶인 책이라고 한다. 이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공간에 연재한 글이 소설이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SNS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보이려고 쓴 글’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무언의 공감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소설의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마흔세 살의 중년 남자인 주인공이 전동차를 타고 페이스북 화면을 들여다보다 ‘알 수도 있는 사람’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여성 ‘오자와(가토) 가오리’의 이름이 뜬 것을 본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때 저자는 ‘지난날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여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한다.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여자. 이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 페이스북에 ‘알 수도 있는 사람’으로 뜬 ‘오자와 가오리’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있어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주인공은 그렇게 우연히 그녀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도중에 치명적인 실수를 해버린다.


“어?”

아뿔싸! 나도 몰게 낭패스런 목소리가 새너 나왔다. 샐러리맨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다 실수로 그만 친구 신청 버튼을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게 발생한 일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동안 출근이 바쁜 샐러리맨들이 내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 우두커니 서서 ‘친구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알림표시가 떠올라 있는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본문 19)


 과연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의 페이스북을 우연히 들여다보다 주인공과 똑같이 실수로 친구 신청’을 눌러버렸다면 어떤 심정일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비록 내가 비슷한 경험이 없더라도 주인공이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 알 수 있는데, 소설은 여기서 주인공과 가오리의 이야기의 막을 올린다.


 주인공이 가오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에클레어 공장에서 일할 때다. 공장에서 일하며 그는 주변 사람과 함께 ‘데일리안’ 신문의 펜팔 코너를 자주 읽었는데, 펜팔 코너에 올라온 사연을 통해 주인공이 가오리를 알게 된다. 펜팔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다 주인공이 먼저 만나자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펜팔’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중년의 주인공이 우연히 지난날 자신보다 소중했던 가오리를 알게 된 계기는 페이스북이었다. SNS가 오늘날만큼 발전하지 않은 지난날은 펜팔이 SNS와 같은 사회 관계망이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가 묘하게 다가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과거와 현재. 소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오리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가오리는 내게 추억의 방 속에 가둬둘 수만은 없는 존재였다.’라고 말한다. 주인공에게 가오리가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독자를 매혹하는 기교가 아주 놀라운 소설이다. 어렸기에 가능했던 뜨겁게 타오르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데도, 이야기를 통해 읽는 주인공과 가오리의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주인공과 가오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잠시 숨을 고르면서 생각에 빠지는 장면을 만나곤 했다. 사랑을 해보지 않았어도 사랑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깊이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장면이 있었고, 일단 오늘을 열심히 살고자 하기에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날 처음 만난 가오리를 평생 잊을 수 없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그때까지 한 장의 그림을 보고인생이 바뀌었다느니, 한 권의 책을 읽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말을 유치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가오리를 만난 날 내 인생이 달라졌다. 비로소 오래도록 멈춰 서 있던 내 고장 난 생의 시계가 째깍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오리 앞에서 만큼은 결단력 있는 남자로 보이고 싶었다. 인생의 목표를 상실해 하루하루 연명하듯 힘없이 살아가는 패배자가 아니라 강한 추진력으로 꿈을 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심지어 나는 그날부터 당장 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펼쳐나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나는 가오리를 진지한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본문 52)


 도대체 사랑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주인공이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걸까. 한 번도 눈에 콩깍지가 씌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책을 읽더라도 알 수가 없었다. 소설이기 때문에 조금의 과장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대단한 일은 분명했다.


 스물아홉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글로 표현하고자 하더라도 내가 아는 사랑은 책을 통해 읽은 사랑을 벗어나지 못한다. 책으로 현실의 제약 없이 모든 걸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랑만큼은 사람과 사람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 가오리, 그리고 수를 만난 장면에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잠시, 또 다른 장면에서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이대로 일을 그만두고 멀리 달아났으면 좋겠어.”

나는 사무실에서 여전히 팩스로 들어온 발주서를 줍고 있을 세키구치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무렵 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자주 불만 섞인 푸념을 쏟아냈다.

“왜, 멀리 달아나고 싶은데?”

“아무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 일상이 반복되는 게 싫어. 차라리 해외로 나가 자극을 받게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대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으로 떠났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목적지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뿌연 안개 속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회사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지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숨도 자지 못하고 술을 마신 다음 날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던 가오리 역시 전망이 불투명한 안개 속을 거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본문 111)


 어느 날 문득 떠나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방 안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나쁜 짓도 해보고 싶다. 새로운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도, 주변의 맛집 탐방을 다니는 일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는 일도 어쩌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길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20대 초반에 한 고민을 29살이 된 20대가 아슬아슬한 지금도 하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만화가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 길에서 때때로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위해 도망칠 필요도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길 위에서 목적지를 발견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국회도서관에는 우리가 앞으로 50년쯤 더 살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고 해도 끝내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출판물들이 있어. 세계인구는 70억을 넘어 점점 더 불어나고 있지. 우리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해도 모든 인류를 다 만나볼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기적이나 다름없어.”

그렇다. 세키구치가 그나마 이런 녀석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까지 함께 해올 수 있었다.

“살아 있어라.”

세키구치가 차 문을 열고, 한 걸음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만약 자네가 실패한다면 내 술이 훨씬 더 맛있어지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도전해봐.” (본문 218)


 나는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아주 똑 부려지는 정답을 찾아 고민을 깨끗하게 일단락 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의 고민에 답을 찾게 되면, 또 다른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다. 일단 저질러 보는 것. (웃음)


 70억에 이르는 사람 중에서 ‘나’를 형성하는 사람들과 만남은 그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가치가 있다.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일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해 고민하는 일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다. 그러니 살아있는 지금은 고민에 매달려 망설이기만 하지 말고 과감히 해보자.


 우리가 고민을 위한 고민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나는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을 멈추고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를 한 어른의 일이니까. 일, 사랑, 진로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의 만남과 지금의 기회를 소중히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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