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에서 보낸 하루

위기는 느닷없이 찾아오고, 수치스러운 후회를 남겼다


 일본에서 짧게 생활하는 동안 익숙해질 것 같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일본 생활이다. 매일 아침 6시가 조금 넘으면 눈이 떠지기 때문에 간단히 아침 산책을 하거나 조식을 먹은 이후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 읽을 책도 4권이나 들고 왔음에도 책은 아직 한 권도 보지 못했다.


 첫날에 예상한 것보다 책을 읽을 시간은 군데군데 있었지만, 하루 일정을 마친 이후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보고서 작성을 하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느라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아침은 그 날의 일정을 견디기 위해서 1분이라도 더 편하게 쉬고 싶어 책을 읽지 않았다. 참, 도대체 왜 책을 들고 왔는지….


 하지만 토요일 저녁에 오사카로 출발하는 배를 타면 책을 읽을 시간이 철철 넘치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그때가 되더라도 가방에 카메라를 들고 가야 해서 책을 들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카메라가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때를 위해서 스마트폰에 전자책이 필요한 걸까?


 하루하루 생활에 대해 간단히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일본 일정은 벌써 4일째를 맞이했다. 목요일 일정은 수요일 밤에 만든 PPT 자료를 가지고 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에서 발표하는 일이었다. 밤늦게까지 무척 열심히 준비했고, 제법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 대단히 만족스럽게 학교에 갔다.


 그런데 학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PPT 자료 파일을 잘못 전달한 거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25일 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에서 발표하기 위해 만든 자료 일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팀원들과 함께 멋지게 완성한 자료라 무척 만족스러웠는데, 이 자료가 아니라 ‘만약’을 위해 복사를 해둔 초기 파일을 담당자 메일로 보내버린 거다. 정말 미칠 정도로 나에게 화가 났다.


 변명하기보다 마지막에 한 번 더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를 탓해야 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발표 준비는 나로 인해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말았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내심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괜히 분위기를 넘기고자 어정쩡하게 웃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게 달랠 수 없는 법이다. (한숨)


 후배 한 명이 임기응변으로 15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사진만 배열하는 수단을 써서 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부족한 자료라고 하더라도 말로 채우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지나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말을 엉망진창으로 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너무 자신 있게 파일을 저장한 이후 메일로 보낸 어제의 나를 찾아가 당장 뺨 싸대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번 실수를 통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는 뼈 아픈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위기라는 건 정말 느닷없이 찾아와 사람의 인생이 큰 시험에 말려들게 했다.



▲ 발표를 망친 이후 내리는 눈은 참….


 힘겹게 발표를 마친 이후에는 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에서 수업 견학을 했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수업 견학을 하는지 몰라 긴장했었는데, 수업 견학은 교실 구석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글을 이렇게 평범히 써도 얼마나 뻘쭘했는지 모른다.


 글로 표현하자면…


 “ㅓㅐㄴㅇ래ㅓㅇ내렁니ㅏㅝㄴ라ㅜㅐㄹ너리ㅏㅇㅁ래오랭너래어내35$#%%%” 같은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본 학교의 ‘국어’ 수업, 즉, ‘일본어 수업’은 중국의 고전을 현대 일본어로 옮기는 수업이었다. 과거 중국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일본 고전을 읽는 듯한 느낌의 수업이었다.


 평소 공자의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을 몇 번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위, 이, 불’ 등의 한자표기가 가진 특징 등을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해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도저히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학생들이 열심히 사전으로 찾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수업 견학을 나온 유학생들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 기분이다. 어쩌면 그렇게 뻘쭘할 수가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건 그 상황에 놓여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까이에 있는 학생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는 점일까?


 또, 한 가지는 국어 수업을 가리키는 일본 선생님이 제법 미인이셨다는 점이 좋았다. (///) 평소 내가 생각하는 일본 미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의 선생님이셨는데, 아마 나이는 나와 비슷하게 20대 후반이 거나 혹은 30대 초반인 것 같았다. 내가 용기가 있었으면 뭐라도 말을 걸어보았을 텐데 아쉽다.



 ‘용기’를 이야기하니 또 두 번째 수업 견학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두 번째 수업 견학은 일본 학교의 영어 수업을 견학하는 일이었는데, 영어 프린트를 받은 이후 ‘뭐야 ㅋㅋㅋ고등학교 때 외운 단어일 텐데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라며 멘붕에 빠졌다. 2월 말에 나는 정말 토익 750점이 가능한 걸까?


 그저 할 수 있다는 용기 하나만으로 도전하기에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일본 학교의 수업을 견학하거나 모두의 앞에서 발표하면서 그래도 ‘깡’은 좀 생긴 것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낯선 환경 속에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라디오 생방송에 나가는 등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견학한 일본 영어 수업의 절반은 견학이었고, 절반은 아침에 한 발표를 또 한 번 해야 했다. 오늘로 세 번째에 해당하는 발표는 이미 해탈한 상태에서 해서 그런지 아침보다 부담 없이 아침에 들은 다른 팀의 발표를 참고해 가벼운 분위기로 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다. (웃음)



▲ 학교에서 호텔로 돌아와서는 근처 풍풍 라면집에서 간장 라면을 먹었다.




▲ 너무나 쓴 기분을 달래줄 달콤한 패밀리마트의 아이스크림.



▲ 이 날은 가벼운 호로요이 한 잔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25일 일정은 이렇게 기타큐슈 공업 전문 고등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끝을 맺었다. 학교 일정을 모두 마친 이후 돌아오는 길에 고쿠라의 오타쿠 성지로 유명한 ‘아루아루시티’에 들러 그동안 쭉 사고 싶었던 한정판을 비롯해 몇 가지 작품을 살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른 블로그에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이제 4일을 보낸 일본 인턴 연수 프로그램. 아직 남아 있는 시간 동안 해야 할 일과 배워야 할 일은 더 많이 남아있다. 부디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되어있기를 바란다. 제발, 여기서 발전 좀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 당당히 “잘 보내고 왔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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