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인생 철학으로서 직업을 말하다


 대학교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일’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과연 내가 지금 이대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집필 활동을 통해 꿈을 찾아도 될지, 아니면, 일본 취업을 위해 지금부터 부족한 부분을 쌓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일’이라는 건 오늘 하루 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도무지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사회생활을 똑바로 해낼 자신이 없다. 최근 뉴스를 통해 직장 내 따돌림 문제로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빈번하게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례에 해당하는 직장이 일부 소수라고 하더라도 직장 내의 인간관계는 많은 사람이 앓는 문제다.


 과거 ‘집단 따돌림’이라는 학교 폭력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터라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게 두렵다. 아무리 겉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와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그곳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간관계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은 너무 크다.


 그래서 나는 일을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다. 대학교수님께서 선물해주신 책이라 반 정도는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난 저자가 말하는 ‘일’이 무척 인상 깊었다.


 저자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저는 일이란 ‘나다움’이나 인생 그 자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일에 쏟고 있으며 직장 동료들은 개인의 인격이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일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은 삶의 보람이기도 할 터입니다. 또 일을 통한 자신의 성장 역시 기대할 수 있겠지요.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일에 임할 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또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8)



 오늘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소위 ‘루저’가 되는 일이고, ‘백수’라는 손가락질을 매몰차게 받는 일이다. 이 상황을 답파하고자 일단 일을 하고 보는 거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그 일에 ‘나다움’이라는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최저 임금 문제로 사장과 다투거나 노동자의 권리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자존감만 낮아지고 뿐이다. 나다운 인생을 위해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 점점 나를 퇴색시켜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대로 좋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나다움을 지키고 싶으면, 네가 능력이 뛰어나야지!’라고 고함을 칠지도 모른다.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다. 자신이 가진 특정 분야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면, 그 사람은 훨씬 더 쉽게 나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꼭 천부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면,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몇 명의 사람이 나다움을 지키며 일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글쓰기에 천부적인 능력이 없어 항상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하고, 또 게으르기까지 해서 언제나 자신의 나태와 싸워야만 했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의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향상심’ 또한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 결국 자기 폐쇄적인 상태에 빠져버린다면 이상과 향상심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본문 57)


지금 당장 ‘나다움’을 고집하느라 일 자체를 거부하거나 정규 고용으로 취업할 기회가 있는데도 굳이 비정규 고용을 선택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대단한 무언가를 고집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단순히 ‘그 일은 나한테 안 맞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거나 편식하듯이 해보지도 않고 어떤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버렸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기회가 된다면 뭐든지 해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공식적인 무대에 입장하면 당연하게도 다양한 제3자와의 만남과 접촉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전에는 몰랐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일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 44)


 우리가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이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 지나치게 자신을 한정된 세계에 가둬야 한다며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향상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일단 한번 해보는 도전의 중요성을 말한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 고집을 하고 있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가치를 두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의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나와 사회에 던져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의 저자는 책에서 일에 대해 독자가 스스로 질문할 계기를 던진 후,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인문학적 독서법 등을 뒤에서 말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몇 장면이 있어 짧게 여기서 소개하고 싶다. 아래의 두 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이 간 부분이다.


독서는 책 속에 그려진 세계나 그려져 있지 않은 행간을 이런저런 방향으로 추리하거나 내 입장에 적용하여 상상해보면서 아날로그적으로 읽어나가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자기 내 대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색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독자는 책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정보를 얻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지금 시대나 상황에 적용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의사 체험을 즐기며, 자기 내 대화를 촉진한다는 세 가지 효용이 바로 독서의 큰 장점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통해 책 읽기는 살아 있는 체험이 되고 개인의 인격 형성에도 기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읽어도 그저 권수만 늘리면 된다는 식으로 독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어’에는 학이불사즉망(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로서 받아들일 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책만이 가진 효용을 살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본문 118)


고전을 읽을 때는 내가 왜 그 책을 읽으려 하는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일단 고전을 읽기만 하면 똑똑해질 거라 생각해서는 의미도 없고, 그런 독서는 오래 지속되지도 못합니다. 예를 들어 ‘왜 월급이 이렇게 줄었을까’라는 질문도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평가받지 못하는 걸까’도 좋습니다.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에 천착하며너 그것과 물밑에서 연결되는 고전을 찾아 읽는 것입니다. (본문 152)


 오늘 당신은 어떤 이유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가? 단순히 한 개의 글에서도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찾고자 하는 질문은 무엇인지,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무작정 ‘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직장인, 은퇴를 앞둔 정년 등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서 나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는 오로지 물음에 있다. 나에게 묻지 않은 상태로 나를 잃어 가는 일은 몇십 년을 하더라도 절대 나다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금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을 찾는 건 어떨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원래 원하던 것이었는지, 혹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를 고려하면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삶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대도시만이 아니라 지방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과연 나는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 물음입니다. 더 많은 사회관계자본이 살아 작동하는 지역을 찾아 지방으로 갈지, 혹은 편리함을 우선시하고 생애에 걸쳐 일정 정도의 소득과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대도시를 선택할지가 갈릴 것입니다. 물론 도시에서 일정 기간을 살고 그 뒤에 지방으로 이주하는 삶의 형태도 가능하며, 이제는 사는 장소가 한 곳으로 고정되지 않은 삶의 방식 또한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문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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