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특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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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걸쳐 도착한 생일 카드에 담긴 따뜻함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해피 버스데이(バースデーガード)


 지난 10월 1일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해도 딱히 특별한 이벤트를 열거나 특별한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다. 나는 생일을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나?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라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보낸다.


 나는 삶을 사는 데에 있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질문을 해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 순간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그 노력이 나를 위한 노력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정도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대리모 출산 문제를 두고 짧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한 개의 생명이 가지는 가치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당신은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그 질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내 인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삶이라는 여행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찍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여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삶에서 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해 같은 질문을 해도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나 엉망으로 살았다며 자책할 때도 있고, 때로는 이번만큼은 제법 잘 살았다고 스스로 격려할 때도 있다. 그리고 올해는 10월 1일 아침 홀로 영화관을 찾아 <해피 버스데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오늘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영화 <해피 버스데이>를 알게 된 것은 일본 영화 <치어 댄스>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았을 때 10분 광고로 우연히 영화 홍보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딸을 위해서 미리 10년 치의 생일 카드를 작성해두는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일본 영화의 특징은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아무리 감동 이야기라도 항상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다. <해피 버스데이> 또한 주인공 노리코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때때로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고, 때때로 아픔의 여운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해피 버스데이>라는 영화 제목은 한국에 오면서 살짝 바뀐 듯한 기분이다. 영화 시작에서 볼 수 있었던 제목은 <バースデーカード>라는 일본어로, 한국어로 직역을 하면 '생일 카드'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굳이 <해피 버스데이>라는 식으로 번역한 이유는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이 메인이기 때문일까?


 대학에서 일한 전문 번역, 한일 전문 번역, 순차 통역 등의 수업을 듣고 있는 터라 영화 제목의 번역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슴 한 쪽에 둔 채로 영화를 보았다. 역시 <해피 버스데이> 또한 일본 영화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었는데, 첫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후 무난하게 이야기가 그려진다.


 시작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역시 주인공 노리코와 어머니의 대화다. 노리코는 "나는 악역은 싫고, 주변 인물이 좋아."라고 대답하는 데, 어머니는 그런 노리코에게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있어. 이야기만큼의 주인공이 필요해. 노리코의 인생에서는 노리코만이 주인공이야."라는 말을 노리코에게 전한다.





 하지만 노리코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반 대표로 나간 퀴즈 대회에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노리코는 대회에 나가기 전에 주변 여자아이들로부터 "답 맞추지 마. 넌 존재감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잖아."라는 식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노리코와 어머니가 싸운 최초의 사건이었다.


 비록 한 번의 싸움이 있었다고 해도 후유증이 길게 간 것은 아니다. 노리코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앞에서 늘 웃으면서 있고자 했고, 어머니 또한 노리코와 막내아들인 마사오 앞에서 웃고자 했다. 마치 서로 해바라기 같은 존재가 된 주인공들의 모습은 영상에 비치는 해바라기와 무척 어울렸다.


 <해피 버스데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진짜 이야기로 들어간다. 하늘로 떠나버린 어머니가 미리 써둔 생일 카드를 매해 열어보면서 노리코는 사춘기 중학생 소녀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17살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 대신 타임캡슐을 열기 위해서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섬으로 홀로 떠나기도 한다.


 어머니가 남겨준 메시지 하나하나는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조용히 지나가던 시간은 노리코가 19살을 맞이한 생일에 일어난다. 노리코는 더는 어머니에게 인생이 휘둘리기 싫다면서 19살 생일 카드를 읽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아버지와 싸우는데, 조금 늦게 본 카드에 담긴 이야기는 아픔이 담겨 있었다.


 10년의 생일 카드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일본의 19살은 한국의 만19살에 해당하는 나이로 이미 대학생이 된 이후의 시간이다. 노리코는 20살을 맞아 받은 마지막 카드로 조금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진짜 하이라이트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리코가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동안 그녀는 어릴 적에 어머니와 함께 자주 본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그 퀴즈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인생에 있어 아주 커다란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결혼이다. 10살의 아이에서 시작한 영화 <해피 버스데이>는 노리코가 결혼하는 장면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혼식 날에 받은 특별한 카드와 특별한 선물은 아마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 적힌 특별한 날을 위한 메시지에서 훌쩍일 수밖에 없었다. 카드에 적힌 말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은 듣고 싶은,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말이었으니까.


 내 생일을 맞아 본 영화 <해피 버스데이>는 생일이기 때문에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지금도 홀로 나와 동생을 위해 아등바등 삶을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고, 나이를 먹었어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내 모습이 비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참, 나는 어쩌고 싶은 건지….


 <해피 버스데이> 영화 주인공 노리코가 퀴즈 프로그램 대회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1:100>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고, 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을 걷는 모습에서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아직 나는 정처 없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죽지 못해서 살아온 시간도 있지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애쓴 시간도 있다. 언젠가 "애썼다."라고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직 찾지 못한 분명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10월 1일,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을까? 할 수 있는 한 힘내서 살아보려고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는 법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말고 온전히 나로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결혼은커녕 자립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있기 마련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바로 진짜 애쓴 삶이 아닐까?


 생일을 맞아 본 일본 영화 <해피 버스데이>는 영화 자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았다. 글의 첫 문장에서 말했듯이, 나는 비록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장소에 가거나 특별한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보내지 않는다. 뭐, 혼자 기념 삼아 피자를 먹기는 했지만, 나에게 생일은 나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10월 1일 아침 일찍 영화 <해피 버스데이>를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나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감동을 주기 위한 영화에 휘둘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었고, 나는 그 선택을 통해서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마 <해피 버스데이> 또한 일본 영화이기 때문에 금방 스크린에서 내려오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VOD를 통해 혼자 있을 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때때로 혼자가 되고 싶을 때, 홀로 천천히 음미해보기 좋은 영화다. <해피 버스데이>는 삶이 마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내 삶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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