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바랍니다

나를 괴롭히는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는 들음의 방법


 사람은 살면서 수천, 수만 가지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간다. 오늘 우리가 직장과 학교에 가는 길에서도 버스에서 듣는 라디오 소리, 우회전 차로를 비키지 않아 뒷차가 울리는 귀를 찌르는 경적,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등 우리의 삶은 소리로 채워져 '살아감'이라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는 외부의 소리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못한다. JTBC 뉴스를 통해서 요즘 20대 청년들은 60대 중·장년층만큼 몸이 좋지 않고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간다는 보도를 들었고, YTN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걸까? 대중가요는 언제나 절절한 사랑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그리고, 조용히 울려 퍼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우리에게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음악에 귀 기울여도 우리는 좀처럼 행복해지기 어렵고, 끊임없이 안팎으로 너무나 아파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귀 기울여야 하는 소리는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여야 한다. 우리 마음은 늘 쉬고 싶다'고 말을 거는데, 우리는 '참아야 한다. 나 혼자 이렇게 사는 거 아니다.'라는 말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귀에 이어폰을 걸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하게 마음의 병을 앓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소음으로 가득 차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잃어버릴 것 같은 어지러운 마음을 고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를 소개하고 싶다.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의 저자 마크 네포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글을 적으면서 도중에 자신의 귀가 점점 청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마크 네포는 청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이미 삶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전보다 외부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마음에 고요함을 가져왔다. 고요한 마음속에서 잊어버렸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고, 오랜 시간지 지나야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책에서 읽은 한 부분을 가져오면 이렇다.


우리는 아프게 하는 것들에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려 넘어진다. 그 사이 종종 온전한 삶의 순간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식의 열림에 저항하지만, 몸속에 살아있는 감정들은 작은 급소처럼 작용한다. 주머니 속 앙금처럼 남아 있는 상처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남은 감정들을 감정의 타임캡슐처럼 지니고 다닌다. 그러다 예기치 못하게 삶과 맞닥뜨리는 순간 미미하게 치유가 일어난다. 강력한 느낌이 터져나오면 당연히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를 치유해주는 것은 바로 오랜 세월 남아 있던 감정들 속에 숨어 있는 의미다.

우리는 보통 직접적인 경험의 예리함을 회피한다. 하지만 심연의 감정들과 솟구치는 눈물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울리는 순간과 만나는 의미 있는 길이다. 그리고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움츠려들었던 가슴을 편안하게 펴고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경험의 예리함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본문 42)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 이겨내지 못한 내적 문제를 다시 마주했다. 나는 좀처럼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쳐다보지 못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 이렇게 생겨서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는 직설적인 부정과 함께 점점 외부의 단점에 괴로워하게 된다.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도, 나는 아직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 속에 있다. 어릴 적에 겪었던 폭력의 사소한 시빗거리는 나의 외모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존감을 회복하며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며 조금씩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앙금처럼 남은 상처는 아물지 못했다.


 그래서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늘 외면하고자 했고,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를 거부하고자 했다. 하지만 저자는 심연의 감정들과 솟구치는 눈물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거울을 바라볼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지만, 나 또한 나를 마주하고자 노력하고 싶다.


 사람이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도 없다. 오늘까지도 내가 늘 혼자만의 시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직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다.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저자는 '침묵의 순간은 말을 멈추지 않으며, 시간 속에서 다시 관심을 기울일 때야 비로소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고개를 돌리기만 했던 내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있는가?


 저자는 우리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과 함께 질문을 통해 자신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깊은 들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읽은 저자가 독자에게 던져보면 좋겠다고 말한 질문과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시간이 있다면, 아래의 글을 통해 바로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삶의 어딘가에서 숨을 멈추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더욱 깊게 숨을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우고 여는 훈련, 초심을 잃지 않는 훈련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진리를 언제나 내 앞에 두고 있는가? 잘 들을 줄 아는 이를 만난 적이 있는가? 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내가 갖고 태어난 지혜에는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나의 회복력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가? 변화에 저항하거나 귀를 닫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상처나 한계로 인해 스스로 다른 모든 것들을 손상시키거나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에는 누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내 안에서 "그래!"라고 말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아니야!"라고 말하는 존재인가? 삶이 깨워주려는 나의 면모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들여 노력하고 있는가? 모든 가혹한 일들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서로에게 드러내줄 부드러운 손간들에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가? 소중히 여기는 지도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나를 진정 발견해야 할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가? 더욱 깊은 다른 길이 보일 때까지 불안을 견뎌낼 수 있는가? 내면의 어디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가? 내 갈등의 핵심을 알고 있는가? 지금의 순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면 오래된 정의나 계획들 중에서 어떤 것을 내려놓아야 할까?

이 모든 형태의 들음은 존재의 작업이다. 이런 들음을 받아들여 들음을 통해 배우고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기를 바란다. 이 들음은 모두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생생한 느낌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 살아 있는 관계 속에 현존과 지혜의 역사가 있으며, 이 역사는 바다와 같다. 이 생명의 물에 입술을 갖다대면 누구나 이 물을 마실 수 있다. (본문 89)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첫 장인 '살아 있음 속에 깃드는 것 - 존재의 작업'에서는 이렇게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 마음에 고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어떻게 내면을 향해 물어야 하고, 내면에 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



 솔직히 나는 지금도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매해 생일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존재의 의의를 묻고, 책을 읽으면서 더욱 깊이 마음속에 가라앉아 나를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조차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다. 거울 속의 나는 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을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삶이 지속적인 대화와 같고, 인간이기 때문에 상처받고 삶에 신뢰를 잃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꼭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마주치는 것들을 섣부르게 명명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한 행동을 저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깊이 듣고, 깊이 말하며, 깊이 질문하는 것. 침묵 속에서 근원의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경험게 귀 기울이는 것. 이렇게 얻은 가르침을 의미 있는 언어로 옮기고, 정직한 대화로 세상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것. 이것들 모두 지속적인 수행에 포함된다.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지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아름다움이 가까이 있어도 무감감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듣고 말하고 질문하는 행위는 어떻게 나를 살아 있는 치유제 속에 머물게 하는가? 요즈음 사람에 대한 나의 신뢰는 얼마나 굳건한가?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면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삶과의 연걸점이 사라벼저리지는 않았는가? 계속 움직이며 열고 있는가? 고통이 가슴속에서 꿀이 될 때가지 고통을 부드럽게 승화시켰는가? 이 꿀을 조금이라도 맛본 경험이 있는가? 타인들이 가슴에서 부드럽게 승화된 고통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그들의 꿀을 조금이라도 맛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경험들을 흡수해 통합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다가오는 것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에만 사로잡혀 있는가?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관찰하고 조종하기만 하는가? 둘 다 누구나 하는 일이다. 누구나 일어섰다가도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누구나 용감하게 자신을 열린 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커다란 힘이 우리의 마음을 통해 말한다. 그러므로 매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가 탄탄한 자리인가?'

그러면 머지않아 삶이 지속적인 대화와 같음을 알게 된다. 멈추어 듣지 않으면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들음은 모든 것에 귀 기울이고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누게 하는 삶의 동반자이다. 그러니 부디 이 대화를 꼭 탐구해보기를 바란다. (본문 194)


 내 마음에 고요가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외면하는 게 아니다. 책에서 저자가 던진 질문들을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의미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게 할 수 있다. 삶을 살면서 종종 듣는 때로는 도망쳐도 된다, 때때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저자는 책에서 "나는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려 노력한다면,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느껴지는 대로 느끼려 노력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걷는 삶의 여정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부로 향한 집착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들음이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에 고요가 머무를 수 있다.


 비록 이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고요를 가지고 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는 사회는 들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책 속의 저자가 던진 질문을 통해 나와 대화함으로써 그동안 귀 기울이지 못한 내면의 오래된 구멍으로 차례차례 들어온 속삭임들을 들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