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이야기를 즐기기 좋은 소시민 소설

요네자와 호노부 소시민 시리즈 세 번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얼마 전에 블로그에 발행한 <왜 나는 일본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제목의 글은 상당히 많은 트래픽을 기록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그렇게 많은 트래픽 유입이 발생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도서 시장에서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그 글은 특이하게도 댓글이 거의 달리지 않는 내 글에서 유독 장문 댓글이 달렸다. 그냥 '잘 읽었습니다.'가 아니라 일본 문학을 즐겨 읽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기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댓글 하나하나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일본과 한국 문학 두 종류를 읽고 있다. 집에서는 문학동네의 <한국 젊은 작가상 작품집>을 읽었고, 대학에서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소설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역시 나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이 더욱 좋았다.


 <한국 젊은 작가상 작품집>에 실린 소설 또한 나쁘지 않았다. 작가의 생각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제법 무거운 느낌이 들었고, 무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이와 반대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그냥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들려준 '소시민'이라는 평범해지기 위한 슬로건을 내세우는 두 주인공 고바토 조고로(남)과 오사나이 유키(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천천히 이야기를 즐기면 충분했다. 계절별 한정 디저트 이름을 사용한 세 번째 시리즈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확실히 가을 냄새가 났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지난 <여름청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이후 헤어진 고바토 조고로와 오사나이 유키 두 사람의 다른 일상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 제1장 뜻밖의 가을'의 장에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고백을 받아 다른 사람과 사귀게 되어버린다.


  평범한 연애 소설이거나 라이트 노벨이었다면 '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며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렸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시민 시리즈는 이런 특색이 매력이다. 이 상황의 묘사는 주인공 두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다.


 겉은 연약하게 보이는 소녀이지만 속은 늑대 같은 본성을 숨기고 있는 오사나이 유키, 겉은 평범하게 웃고 있지만 언제나 뛰어난 머리 회전력으로 앞을 보는 고바토 조고로. 두 사람의 뜻하지 않은 새로운 만남은 '제1장 뜻밖의 가을'이라는 제목이 그대로 잘 보여주었고, 다음 이야기도 제목이 어울렸다.


 제2장의 제목은 '따뜻한 겨울'이다. 가을에 연인이 생겼으니 추운 겨울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온기를 품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고바토는 연인이 된 '나카무라 도키코'와 소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오사나이 또한 1년 후배인 '우리노'와 디저트 가게를 순회하면서 보낸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고등학생드르이 풋풋한 이야기처러 보인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방화 사건과 주인공들이 가진 기질은 색다른 그림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고바토가 나카무라와 함께 탄 버스에서 하차 벨을 잘못 누른 사람을 추리하며 '누가 이제 곧 일어날까?' 추측하는 건 무척 재밌었다.


앞뒤로 나란히 붙어 있는 1인용 자리. 앞자리에는 여학생, 뒷자리에는 할머니.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방금 전 실수로 하차 벨을 눌렀다. 다시 말해 조만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 나는 앞뒤 어느 한쪽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내릴 승객 앞에 서 있으면 그 승객이 일어났을 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아니, 내가 앉으려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니라, 내 귀여운 여자친구, 파도치는 머릿결을 가진 나카마루 도키코에게 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지옥 같은 차 안에서 어중간한 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여학생 아니면 할머니, 어느 한쪽의 눈앞으로 확실하게 나카마루를 유도하지 않음녀 의자 뻇기 게임에서 이길 가망은 없다. 남은 시간도 별로 없다. 아마도 기회는 길게 잡아서 다음 정류장까지. 그전에 나는 판단해야 한다. 여학생과 할머니. 누가 버스에서 내릴 것인지를.

"잠깜난 기다려."

"기다리라니, 뭘?"

선물을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자리를 선물할게.

내 생각에 이건 면밀하고도 신속한 관찰로 해결할 수 있다. (본문 77)


 고바토의 독백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아마 고바토처럼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음 자리가 날 가능성이 높은 좌석을 추리해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주점 주섬 정리하는 사람이나 슬그머니 다음 도착역 이름을 보는 사람. 모두가 해본 일상이 소재였다.



 요네자와 호노부 소시민 시리즈는 이러한 일상을 그리면서 교묘하게 사건의 밑밥을 뿌린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의 사건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 방화 사건이었다. 그 방화 사건을 쫓는 오사나이의 새로운 연인 우리노와 작은 힌트만으로 범인을 추리하며 포획망을 좁힌 고바토 조고로.


 고바토가 범인을 용의자를 줄이고,  특정 장소로 유도하는 장면은 마치 <데스노트>의 L이 키라의 이름을 대는 야가미 라이토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마지막 범행 장소에서 고바토가 범인을 잡는 동시에 오사나이 유키와 마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고바토와 오사나이 두 사람이 다시 서로 곁에 있는 건 즐거웠는데,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제법 신랄해서 문득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고바토와 오사나이 두 사람의 매력이기에 작가의 표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장면을 잠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많은 이야기를 했어. 그랬더니 글쎄, 난처하게도 무슨 말을 할지 다 보이는 거야. '이렇게 이상한 사건이 있었어'라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이상하지가 않아. 그때마다 그런 말을 하면 미움을 살 것 같아 정말 많이 참았어."

"끝까지 참지는 못했구나."

응, 그러니까 그렇게 뒷이야기를 넘겨짚으면 안 된다니까.

"내가 생각해도 제법 눈치 빠르게 행동했어. 다행히 나카마루는 그런 일로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어.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쁘게도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거든."

나카마루와 보낸 즐거운 나날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건 어떤 기분이었어?"

때마침 오사나이가 그렇게 물어서 매끄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호박에 침주는 기분."

남들보다 먼저 사건의 진상을 맞히는 일은 굉장히 즐거운 한편, 오지랖이라고 반발도 산다. 의외로 강한 그 반발에 나는 겁을 먹고 얌전히 굴기로 했다. 그런 내게 나카마루는 함께 있으면 편안한 상대가 될 예정이었다.

칭찬을 받으면 기쁘고 미움을 받으면 슬프다.

그렇다면 인식조차 못하는 건 어떨까? 나카마루와 있을 때 나는 '아니, 잠깐만. 지금 내가 수수께끼를 풀었는데, 뭐 할말 없어?' 라고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불만은 시간과 함께 쌓여갔다.

그래도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나도 익숙해졌을지 모른다. 어떤 비밀을 어떤 지혜를 짜내서 풀어내도 '아, 그렇구나'가 전부인 반응에 익숙해지면 내 허영심은 언젠가 지치고 닳아빠져 끝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어쩌면 괜찮은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연쇄 방화 사건이 있었다. 한편으로 나카마루 역시 내게 불만이 있었다. 나카마루의 인생관으로 볼 때 나는 질투에 미쳐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사나이도 말했다.

"호박에 침주기. 그래, 나도 우리노하고 사귀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딱딱한 미소.

"얘 참 시시하다고."

어.

난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223-224)


 짧게 글을 옮기려고 했는데 대화와 독백을 함께 옮기다 보니 글이 길어져 버렸다. 어느 부분을 자르면 두 사람의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책을 안 읽었으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까워서 지우지 않기로 했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두 사람이 서로의 연인에 대한 해후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마지막이 아니다. 제목에 등장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을 먹으면서 오사나이가 우리노를 뒷바라지하다가 중간부터 궤도를 바꾼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생각했다. 참, 대단한 함정이었다고. (웃음)


 역시 일본 문학은 이렇게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재미가 았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이용해 독자를 잘 꼬는 맛이 있다. 이것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요소다. 아직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그의 소시민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그리고 오늘 소개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까지. 소시민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가 될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겨울철 한정 디저트의 이름을 가지고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 이건 또 그때의 재미로 생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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