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대학생이 된 건지 자괴감이 들어

대학생 본연의 의무는 공부일까, 지성인으로서 자각일까?


 나는 지금의 대학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간다고 하는, 누구나 가야 하는 게 마땅한 대학은 그냥 성적에 맞춰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보아야 할지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족감보다 회의감이 더 많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하면서 무슨 짓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한때 대학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은 꼭 필요했고, 내가 관심 있는 문화 예술이나 사회 정치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스펙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대학을 계속 다니기로 정했지만,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대학을 보내는 것보다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특강을 들어보기도 하고, 각 기관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모집하는 SNS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대학 본연의 임무라고 말하는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이렇게 사는 게 옳은지 알 수 없지만,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학생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의무를 지닌 자리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볼 수 있고, 공부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요즘처럼 '대학생'이라는 이름이 가진 권리와 의무가 충돌하며 존재 의의가 부각 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과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학생운동 시절에 대학생들은 모두 권리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생은 취업해야 한다는 의무 앞에서 권리를 잠시 접어두고, 모두 취업 준비를 위해서 떠도는 집시마냥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권리를 말하기 전에 세상이 짊어준 의무가 너무 많았다.


 허리가 휠 정도로 짊어진 그 많은 의무를 감당하는 동안 대학생들은 잠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등지고 살았었다. 이런 모습은 20대의 저조한 투표율로 그려지기도 했고, 대학 반값 등록금을 요구해도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라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때 비판을 꽤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 맡긴 것인지도 모르는 많은 의무를 등에 짊어지던 대학생들이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내가 이러려고 대학생이 된 건지 자괴감이 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다.



 모두가 열심히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며 힘겹게 합격한 명문 대학에서 어떤 학생은 부당한 권력으로 합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이 사건을 파고들었더니 더욱 놀라운 갖가지 비리가 파헤쳐졌고, 그 사건은 한때 '설마….'라고 의심한 사건이 '진실'로 밝혀지게 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한국 사회에 터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선무당 같은 최측근에게 권력을 양도하여 우리 사회 각 기반을 좀 먹는 벌레로 전락한 사실은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허탈감을 안기면서 우리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뽑았나 자괴감이 든다.'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


 대학에서 법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대학생은 지성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그냥 놀고 다니는 게 대학생의 의무가 아니다."는 말씀을 하셨다. 교수님이 말씀한 '지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책상 앞에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것이다.


 지금 대학가는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은 우리 사회와 정치가 이토록 엉망이 된 모습을 보면서 후회하고 있고, 지금이라도 똑바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대자보를 붙여서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고, 광장에 모여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인물의 하야를 촉구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일삼은 갖은 비리가 우리 사회의 지성인들이 깨어나게 했다. 아직은 공부를 하는 게 더 중요한 중·고등학생마저도 거리에 나와서 대통령과 어른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자신들의 행동이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된 어른들은 청년 세대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모습이 그려졌다.


 아직도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불온한 세력의 움직임으로 몰아세우는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성숙한 시민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나는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때때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올바른 지성인으로서 성숙한 시민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옮긴 한 책을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그리고 진솔하게 판단할 때 어떤 주장이 현시대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인류 사회에도 해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그냥 무차별 확산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양심적인 행동이 아니라 비겁한 짓이다. (본문 48)


 오늘날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금 대학 캠퍼스를 걸으면서 그 질문을 해본다.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쌓기, 좋은 성적을 얻어 장학금을 받기 위한 공부, 내 꿈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기, 정치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분명한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라도 마지막까지 갈 수가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역사적인 한순간에 지성인인 대학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 자각을 잊지 말자. 우리의 손에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으니까.


삶의 묘미는 모른다는데 있다. 우리는 다음 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변화해야 하고, 매 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한다. 모호하지만 맛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_ 질다 리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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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포동 몽실언니 2017.01.24 18:20 신고

    이번 박근혜 사건을 계기로 현재의 젊은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의 발언을 듣고 행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뚜렷이 보았습니다. 사고가 깊고 글이 차분하고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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