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사람 둘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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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본 <풀꽃도 꽃이다>, 성적에 연연하는 학생과 부모님과 선생님께


 제가 이 글을 쓰는 15일 토요일은 대학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입니다. 사실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하면서 이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머리에 번뜩인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시험과 공부와 대학. 이 세 가지 단어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척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모두 하나같이 조금 부정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영재발굴단>이라는 방송을 통해서 전파를 탄 학원을 무려 11개나 다니는 8살 소녀의 이야기가 한참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저 정도의 수준은 아동 학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이가 재능이 있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려는 욕심에 학원을 11개나 보내고, "나는 언제 놀아?"라는 말에 "놀지 못할 수도 있겠네."라며 다그치는 모습은 솔직히 보는 게 정말 불편했습니다. 한국의 '공부 지상주의'에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웠을 거예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 기사를 접하고 나서 블로그에 <11개의 학원을 다니며 나를 포기한 한 8살 소녀>(링크)라는 제목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어떤 책의 내용을 조금 인용했습니다. 그 책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입니다.


 오늘은 <풀꽃도 꽃이다>는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여러분과 공부와 시험, 그리고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풀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무성한 잡초가 가득한 풀밭에서 이름을 모르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생명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풀꽃이 보잘것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작지만 강한 생명을 꽃피운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조정래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는 그런 풀꽃에 청소년들의 모습을 빗댄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부모님의 공부에 대한 집착에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이 부모님의 집착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 대안학교를 꿈꾸고, 가출하고, 갈등을 빚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굉장히 사실적인 이야기죠.


 소설을 통해서 읽은 이야기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였습니다. 잠시 <풀꽃도 꽃이다>에서 읽은 한 장면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래의 글은 부모님의 욕심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살을 결심한 한 소년이 몰래 적은 일기장 같은 글입니다.


나는 판검사가 되기 싫은 대신 딱 되고 싶다는 게 없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아이들도 거의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직 중3일 뿐이다. 나는 기막히게 멋진 영화를 보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하고, 전혀 미남으로 생기지 않고 평범한 얼굴인데 눈물 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환장하게 갖고 싶은 멋진 자동차들을 보고 있으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스릴이 기막힌 컴퓨터 게임에 취하다 보면 게임 설계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여행지를 벌어지며 세계 일주 여행을 한 얘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다 보면 그런 여행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만큼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는 그런 마음을 꽁꽁 숨겼다. 엄마가 알면 죽으려고 할 테니까.

내가 끔찍스럽고 무서운 건 중3인 지금도 숨 막히게 하는데 앞으로 고등학생이 되면 얼마나 더 심해질까 하는 걱정이다. 생각만 해도 몸이 오그라들고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당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지금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할지 않으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중략)

나는 죽는 게 무거워서, 살고 싶어서 오늘도 사이트에 내 글을 달지 못하고 물러난다. 나는 살고 싶다. 근데 엄마가 사자처럼, 악마처럼 무섭게 버티고 있다. 그러니 죽어야 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마도 없다. 아빠는 돈만 열심히 벌어 엄마한테 바치는 찌질이일 뿐이고, 누나는 남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일 뿐이다. (본분 99)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책을 읽어보면 너무나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중3 소년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모든 아이가 이런 삶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이 모습은 한국의 가장 평균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1위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일방적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을 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 보도된 11개의 학원에 다니는 소녀의 사례도 그런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포기당 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지 않나요?


 <풀꽃도 꽃이다>에서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교민 선생님은 자신에게 상담한 친구의 부인을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 모성이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고 숭고하다고 칭송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성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라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지나친 집착과 편협함을 보이는 약점도 있습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작정 공부시키면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 그곳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런 말 바로 하긴 좀 뭐합니다만, 애기가 나왔으니 굳이 피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들의 그 과도한 집착과 무절제한 몰두가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 자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지원이 엄마가 그중 한 사람이고, 그런 엄마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강교민의 눈초리는 엄하고 매서웠다.

"……."

여자는 그 눈길에 밀리듯 고개를 수그렸다.

"놀라지 마십시오. 공부 때문에,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애들이 1년에 얼만지 아십니까?"

"……"

"연간 500명을 넘어 하루 평균 1.5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죽게 한 게 누굽니까?"

"……"

"그 위대하고 거룩한 모성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죽는 애들만 그렇지 지금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애들의 수는 얼마이겠습니까. 그보다 몇 배 많은 애들이 엄마들의 극성스런 성화 속에서 죽음을 향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문 140)


 도대체 부모님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부모님은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원을 몇 개나 보내고, 아이가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공부해라공부해라공부해라'이라는 말을 한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전한 나의 시간을 공부에 뺏겨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그런 아이가 나중에 가서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아이가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을 갖출 수 있을까요? 계속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도전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아니다.'는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외면하면서 공부를 강요합니다. 어쩔 수 없다면서 말이죠.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고, 경쟁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꿈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친구와 노는 시간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시간만 필요하다는 게 우리 사회의 절대적 가치이니까요.


 아래의 글은 또 다른 중3 소녀가 계속 간섭이 심해지는 어머니와 다투는 이야기입니다.


"엄마, 난 고3이 아니고 중3이라구. 지금도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밤 11시 30분까지 빡빡하게, 빡세게 공부하고 있다고. 중3이 그보다 무슨 공부를 더 해?"

"너 6교시만 하는 월.화.금은 한 시간씩이나 친구들하고 수다 떨며 보내버리잖아. 폼 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이젠 그런 시간 낭비는 절대 안 돼. 일분일초라도 아껴서는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까 내가 나서서 시간 관기를 해주겠다 그거야. 이래도 엄마 말 이해가 안 되니?"

"글쎄, 엄마가 안 나서도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잔소리 말아, 니가 뭘 다 알아서 해. 넌 부모의 보호가 절대 필요한 미성년자야. 미성년자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도록 돼 있어." (본문 196)


 아마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이상으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짜증이 나서 공부를 내팽개친 적도 있습니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공부만 하라고 강요를 받으면 의지가 있어도 한계에 부딪히는 법이죠.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내몰린 상황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 남을 괴롭히거나 부모님이 자신을 향해 하는 비난을 그대로 친구들에게 할 때도 있습니다. 성적과 소득수준이라는 평가 잣대를 이용해서 차별하고, 왕따를 시키고, 학교 폭력을 일으키거나 피해를 보는 그런 모습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알려진 학교 폭력의 실태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끔찍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소식이 잘 안 들린다고 하여 학교 폭력이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학교 폭력은 더욱 은밀하게 숨어버렸고, 학교 이미지를 걱정한 어른들은 숨기기 바빠졌습니다.


 공부에 대한 집착과 힐난은 그때보다 더 심해졌는데, 아이들이 더 망가지면 망가졌지 절대 더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풀꽃도 꽃이다>를 읽어보면 강교민이 자신의 여동생인 이소정 교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잠시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애들이 애들 같지 않아요. 점점 더 거칠었지, 예의라는 걸 모르고……"

이소정이 어깨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외국인들 불러들여 영어 선행학습부터 시작해서 대학 입시 작전까지 온갖 과오들을 정신없이 해내면서 인성 교육은 쓰레기 취급해버리고, 집집마다 애들이 한둘밖에 없다고 그저 오냐오냐해서 키우면서 식당이나 공항 같은 데서 제멋대로 소란을 피우는 애들에게 다른 어른들이 제지를 하면 젊은 엄마들이 금방 나서서 왜 남의 애 기죽이느냐고 대드는 세상 아니냐. 수치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본문 242)


오빠를 배웅하고 나서도 이소정은 왕따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가엾게도 가난한 애들이 표적이든지 왕따를 주도하는 건 어김없이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사는 힘셈 아이들이었다. 경세 사정이 비슷한 애들까지 패거리를 짰기, 그들 대 여섯 명은 축구, 게임, 자전거 타기 등 같은 취미로 어울리며 학급의 임원도 도맡아가며 교실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고는 왕따의 먹잇감을 차례고 사냥해나갔다. 행동이 굼뜬 애, 눈치 없이 좀 둔한 애, 체구가 작고 만만해 보이는 애, 뚱뚱한 애, 공부 못하는 애, 가난한 애들이 그들의 손아귀에 잡혀 고통스럽게 버둥거려야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세계는 순진하지도 않았고, 건강하거나 명랑하지도 않았다. 꼭 어른들이 일삼아 가르친 것처럼, 아니면 아이들이 몰래 엿보아 배운 것처럼 어른들 세계의 판박이 그대로였다. 강한 자들까지 패거리를 짜서 조직적인 세력을 만들고, 여러 약한 자들을 골라내 지배하고 괴롭히며 자기네 권력을 과시하는 그 악랄함. (본문 249)


 이 글을 읽으면서 울컥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저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대학교에서도 군데군데 볼 수 있습니다. 잔인한 교육의 끝은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후유증은 평생 몇 대를 걸쳐서 세습됩니다.


 속된 말로 명문가는 부유해서 명문가가 아니라 사람을 똑바로 가르치기 때문에 명문가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그런 명문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하는 건 차별과 비교를 통한 자존감을 낮추는 교육과 계속해서 어른의 욕심으로 아이를 괴롭히는 교육이 세습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공부가 무엇이길래!


 조정래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1권과 2권에 갈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 만나는 이야기와 겪은 이야기, 지금도 눈과 귀를 기울이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풀꽃도 꽃이다> 소설을 통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배울 게 많이 남은 20대 대학생입니다. 공부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공부에 잡아먹히게 되면 사람은 절대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올라와서도 주변 학생들이 공부에 집착하여 나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나를 포기하면, 삶을 살아갈 수 없는데….


 부디 <풀꽃도 꽃이다>이라는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공부와 사람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학교 폭력 피해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읽은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병풍 삼아 약자를 괴롭히는 걸 당했었습니다.


 이 책과 함께 <학교의 눈물>,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님, 그리고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17일부터 시험이라 스트레스를 조금씩 받고 있지만, 24시간 공부를 하기보다 평소처럼 책도 읽고 피아노 연습도 하면서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A+를 받았으면 좋겠지만, 받지 못해도 상관이 없어요. 어차피 저는 제가 하고 즐겁게 공부를 했고, 제가 배운 공부를 잘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지나가고 나면 숫자에 불과할 성적에 너무 연연하는 건 바보 같은 일입니다. 성적이 B+에 그치더라도 A+처럼 사는 방법은 나답게 삶을 사는 것이죠. 풀꽃도 꽃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 버렸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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