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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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리는 솔직하게 평범한 이야기를 적을 수 있으면 작가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이야기꾼의 재능이 있다. 친한 친구와 만나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1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 수 있고, 매일 마주치는 일상 속에서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모두 훌륭한 이야기꾼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참 잘도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야기꾼이라고 말하기보다 그냥 청자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서 나누는 몇 살이나 어린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지하철에서 피곤한 눈을 감고 이으면서 사람들이 지인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끔은 이렇게 듣는 이야기 중에서 글로 옮기고 싶을 때가 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연애에 대해서 나보다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애니메이션 축제에 가는 더 어린 학생들은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지… 공감되는 이야기는 때때로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그 이야기를 토대로 글로 옮기더라도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 내 글은 쉽사리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다. 어느 작가는 격하게 솔직한 글을 적어서 한 편의 에세이로 책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도 한 권의 책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노지


 이번에 읽은 에세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도 그런 책이었다. 작가 사노 요코는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이라는 책을 발표하였고, 독특한 발상을 토대로 색깔 있는 글과 유머 가득한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작품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남의 이야기라고 느끼면서도 딱히 듣기 싫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가의 특색이 살아있는 글과 일러스트가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는 책으로 될 수 없지만, 사노 요코 작가의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는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앞으로 사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언젠가 책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이제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연습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소박한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글을 담백하게 적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천생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은 그런 글과 그림의 조화를 좋아한다.


 스마트폰으로 읽는 다양한 글도 글만 있는 것보다 한두 장의 사진이 있어야 눈이 가고, 자극적인 사진이거나 우리가 쉽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이어야 쉽게 클릭해서 읽는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시기에 글을 쓰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멋쟁이 같은 거 난 모른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는 방법,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왜 작가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이라는 제목을 선정했을지 생각해보았다. 편집부의 생각인지, 아니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름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책을 읽어보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느낌보다 일상에서 느긋한 시간을 열심히 보낸 느낌이었다.


 만약에 내가 이런 글을 적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담기게 될까?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불쑥 눈에 들어온 예쁜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적어보기도 할 것이고, 교수님과 나누는 요즘 대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할 것이고, 뉴스를 통해서 만나는 이런저런 짜증이 나는 사회·정치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할 것이다. 내 이야기는 고작 그런 이야기다.


 연락처에 저장된 친구는 있지만, 자주 연락하지 않는 나는 일상의 이야깃거리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내가 관심이 있는 피아노, 책, 애니메이션, 사회·정치 분야가 전부이고,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이야기는 굳이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의 글 또한 솔직히 후자의 느낌인데, 지난 토요일에 발행한 피자를 먹은 이야기가 조금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천성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여 이렇게 그림을 그려 글로 옮기는 사람은 소수다.


 작가의 재능이라고 말하기보다 실천에서 오는 차이다. 주고받은 이야기, 내가 보낸 시간을 그냥 글로 옮겨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작가가 될 수 있고, 계속 글을 적어보면서 글쓰기 실력을 단련할 수 있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다.


 마지막으로 또 어떻게 이 책을 소개하며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옮긴이는 "우리가 읽고 '아, 참 좋다.'라고 하는 수필은 기본적으로 작위가 아닌, 살면서 그 사람 안에 한 켜 한 켜 쌓여 오던 것이 마침내 그 사람 됨됨이의 그릇에서 자연스럽게 넘쳐 나오는 그런 것일 터이다."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을 소개하는 데에 딱 이 말 이외에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느 출판사로부터 'OK'를 받지 못했지만, 일단 적고 있는 내 글 또한 이런 책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우연히 만난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과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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