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와 미국 엄마는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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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와 아이를 보채는 엄마


 얼마 전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내고자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지난 6년을 그린 에세이 형식의 글이 되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쓴 글들을 읽게 되었다.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가 가장 가파르게 큰 시즌이라고 말할 수 있는 2011년은 교육 카테고리에 글을 꾸준히 적었다. 그 글들을 읽어보면, 당시 내가 우려한 일들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동시에 지금도 우리가 지적해야 할 이야기는 바뀌지 않아 너무 아쉽다.


 지난 김해 가야문화축제 백일장 현장에서도 나는 여전한 학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일장 대회에 참여한 많은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왔고, 아이가 혼자서 해야 하는 대회의 과제를 부모님이 이리저리 지적하면서 '다시 써!' '그렇게 하면 어떡해!?'라며 나무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이런 백일장 같은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글쓰기 대회이니 아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가만히 응원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그렇게 해서 아이가 즐겁지 않은 기분이 되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한국 엄마와 미국 엄마의 차이, ⓒebs


 한국 엄마의 이런 모습을 미국 엄마와 비교한 영상을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통해 우연히 보았다. EBS 다큐프라임이 실험한 두 엄마의 비교 영상은 엄마와 함께 아이가 자리에 앉고, 아이에게 단어 퍼즐을 내주고 아이가 퍼즐을 맞추는 동안 두 엄마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촬영한 영상이었다.


 한국 엄마는 아이가 좀처럼 단어 퍼즐을 맞추지 못하자 '그렇게 하지 말고', '앞과 뒤를 바꿔봐' 등의 간섭을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엄마는 작은 격려를 건넬 분,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아이가 물어보면 작은 힌트를 주기만 했다.


 아주 작은 한 장면이지만, 이 장면이 한국과 미국에서 엿볼 수 있는 차이는 명백했다. 아이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시간을 들여서 스스로 성취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게 미국이라면, 한국은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아이에게 시간을 주기보다 부모가 먼저 개입하여 아이의 성취를 빼앗아버렸다.


 언제나 남보다 잘해야 하고, 내 아이는 절대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게 한국 엄마의 평범한 욕심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이 경쟁이 붙어서 지나치게 아이의 시간을 빼앗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해버린다. 이런 작은 차이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든다.


 오래전에 <하루에 한 번 마음 돌아보기>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룸메이트인 독일인 친구와 수영을 하러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한 일본인 모자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파도가 치는 해변가에서 아이는 모래장난을 하고, 엄마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위험해 보였는지 엄마는 "위험하니까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놀아라" 하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파도가 치지 않는 곳으로 옮겨와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파도가 아이의 바로 옆까지 밀려와 아이가 만든 모래성을 스윽 지워버렸다. 아이는 다시 모래성을 쌓았지만, 또다시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한 입 베어 물고 도망갔다. 아이는 모래성을 쌓고 파도는 허무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조바심이 났던지 "처음부터 모래를 많이 모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못 들었는지 자기가 하던 대로 계속 모래성을 쌓았다. 결국 엄마는 "주위에 구덩이와 성벽을 먼저 만들렴"이라고 하더니, 몸소 나서서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독일인 친구는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일본 사람들답다. 어머니가 몸서 나서서 무엇이든 해주잖아. 독일인들은 주로 '아이에게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는데, 그것과는 정반대야."

- <하루에 한 번, 마음 돌아보기> 중에서


 위 상황이 미국 엄마와 한국 엄마를 비교해본 실험 영상과 상당히 닮았다. 일본은 유토리 교육을 통해서 이런 모습을 부분적으로 해소하며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립심을 키운 이야기를 <일본 엄마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엄마가 늘어난 것처럼, 한국에서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엄마도 적지 않게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한국 교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경쟁이 중심이 되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부모가 아이에게 많은 간섭을 한다.


 아이가 무엇하나 스스로 계획해보고, 도전해보고, 실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남에게 뒤쳐져서 좋은 대학에 못 가고, 좋은 직장에 못 갈 수 있다는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학부모로 지내게 되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 같지만, 그래서 교육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도 학부모가 전화해서 학생 대신 물어보는 일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한국 엄마는 간섭하게 될까? 오늘 어린이날을 맞아 나는 이 작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다. 점수로 아이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을 고집하게 되면 아이는 의욕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엄마의 인정과 응원을 듬뿍 받은 아이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작전을 짜고,

과감하게 도전해

그것을 실현시켜나간다.

(본문 84_ 엄마의 의욕이 아이의 의욕을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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