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두려움은 어떻게 사람을 괴롭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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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익숙해지고, 감춰질 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 가지 이야기로 상당히 떠들썩하다. 하나는 이세돌과 압도적인 대결을 펼친 인공지능 알파고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나는 여야 간에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공천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나는 평택에서 일어난 잔인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 가지 이야기에서 나는 '폭력'이라는 단어를 공통으로 꺼내고 싶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많은 사람이 '혹시 터미네이터 영화처럼 로봇이 전쟁에 이용되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여야 간이 벌어지는 공천 갈등은 이미 언어폭력과 신체 지지자 사이에 신체 접촉이 일어나고 있다.


 평택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이미 사건 자체가 폭력이다. 아무리 계모라고 하지만, 친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과 있었는지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전국으로 확대되는 실종 아동의 실태 조사는 아직도 우리가 이렇게 감춰진 폭력을 겉으로 꺼내어 두려움을 마주하게 해줄 것 같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행동과 말이 폭력일 수도 있고, 단지 사랑하는 마음 혹은 걱정하는 마음에서 보이는 집착이 폭력일 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도 폭력은 있고, 다녔던 중·고등학교에서도 폭력은 있었고, 주변에서도 늘 어쭙잖은 일로 여기는 폭력이 있었다.


아동 학대, ⓒJTBC


 나는 사람이 모이는 사회에서 폭력은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세 사람이 모이게 되면 항상 그곳에 '폭력의 씨앗'이 심어지기 마련이다. 평범하게 지내는 것 같다가 돌아보면 어느 사이에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는 폭력을 자신도 모르게 휘두른다.


 오랫동안 폭력의 트라우마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아마 외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눈여겨 관찰한 적이 누구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학교 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은 '가해자의 숨은 폭력'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 나의 오만과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어느 정도 '착한 사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폭력성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숨기고 있는 사람.' 등으로 사람을 저절로 분류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말투를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다.


 악질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공부 잘하는 가짜 모범생의 인상은 깊숙이 새겨져 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읽은 심리학과 인간 관찰에 관한 이야기는 제법 쌓였기 때문이다. 물론, 100% 확신은 할 수 없다. 피해의식이 강한 나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하더라도 나는 확실히 변명할 수가 없다.


 아마 이런 판단을 내리는 습관이 있어서 나는 사람들을 더 멀리하는 게 아닐까 싶다. 폭력을 당한 후유증은 긴 세월 동안 사람이 괴롭힌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으면 그곳의 모든 소리가 귀를 찢고 싶은 소음으로 들리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혐오와 불신의 시선이 다리를 떨리게 한다.


 나는 그런 곳에서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음식을 먹거나 하면 항상 소화가 안 되어 괴로워하는 것도 그런 몸의 반응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크게 화를 내거나 울거나 땀을 흘리는 모든 반응이 폭력의 후유증이 나에게 가져다준 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연쇄반응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다니는 대학의 한 수업 과정에서 어릴 적에 그토록 끔찍하게 싫어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사람은 폭력성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 그 수업 자체가 무섭다. 그래서 괜히 더 밖으로 안 그런 척을 하고 있다.


 피해자의 피해의식. 속된 말로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성향이 아직도 강해 대학에서는 절대 쓸데없이 일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도 몇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마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직, 사람이 무섭고 싫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안전한 곳이 어느 곳도 없다. 학교에서도 폭력이 있고, 10대 시절에 장난으로 끝날 것 같은 폭력은 대학에서는 강력 범죄가 되고 있어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몇 대학의 OT 사건과 악마 동기생 사건 등 사람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앞으로 몇 년 더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될까? 아마 한평생 나는 마음속에 이런 불안과 초조, 그리고 혐오를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폭력이 낳은 끔찍한 기억은 평생 사람을 괴롭힌다. 그곳에서 도망치고자 나는 책과 피아노, 애니메이션 등 혼자 몰입할 수 있는 세계에 더욱더 의존한다.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사람을 알기 위한 공부는 우리가 평생 해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인성교육으로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사람에 관한 공부는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배움을 멈추면, 그곳에는 폭력만이 남는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글은 폭력으로 인한 두려움이 어떻게 사람을 괴롭히는지 말하고 싶어서 쓰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피해 의식에 지나지 않은 걸까, 아니면, 폭력이 이토록 사람을 오랫동안 괴롭힐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라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고, 대학의 비일상이 싫다.


 조금 더 용기 있게 나를 말하고, 구석에서 늘 덜덜 떨기만 하는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남에게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이고, 이해를 구하기 힘든 이야기다. 사람들 앞에서 말로 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글'이기 때문이다.


 부디 사람들이 '장난'으로 치부하는 가벼운 폭력이, '조금 심한 장난'으로 치부하는 무거운 폭력이 얼마나 한 사람을 괴롭히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숨긴 발걸음을 대학으로 옮기고, 한껏 내 인생을 웃는 얼굴로 만들고자 식은땀을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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