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질문을 하지 못할까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기 보다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떤 강연이나 회견장을 가더라도 마지막 Q&A 시간에 '질문하세요.'이라는 말을 하면 쉽사리 손을 들고 질문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조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한국 기자들은 쭈뼛쭈뼛 아무도 질문을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손을 드는 중국 기자를 애써 기다려달라고 하며 한국 기자에게 질문의 기회를 줬지만, 한국 기자들은 질문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로 한국에서는 '한국인은 왜 질문을 하지 못하는가'는 많은 말이 오갔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그 원인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질문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 적으면서 외우는 일이었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은 멍청한 일로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이 바보 같은 일로 여겨졌고, 자칫 잘못하면 나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어 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질문자만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 주최자도 또한 질문에 잘못 대답하면 망신을 살 수 있어 질문을 받지 않는 모습이 그려졌다.


질문하지 못하는 한국 기자들, ⓒEBS


 지난 화요일(2일)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아나운서는 경제 부총리의 호소 회견을 하고 질문을 받지 않는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우리가 못된 놈이라며 비판하는 일본의 아베조차 하루에 2번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대답하는데, 한국에서는 언제나 '질문은 사절입니다.' 일색이다.


 기자들은 왜 질문을 받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질문은 사실상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대본으로 하는 한국이다. 과연 한국에서 돌발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하는 사람에 대하여 대답할 의무를 느끼는 정치인이 지금의 기득권 세력 중에서 있을까?


 진보적인 정치인 중에서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드문드문 TV를 통해서 보면서 회견을 하는 정치인을 보면 작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오로지 국민 탓, 야당 탓, 누구 탓… 하면서 남 탓하기 바쁘고, 법률을 반대하는 시민에게 '왜'라는 질문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하는 일은 굉장히 옳은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윽박지를 뿐이다. 호통을 치다가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면, 다시 호소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호소해도 안 되면 다시 남 탓을 하고, 남 탓을 하다 안 되면 다시 고함을 친다. 참, 민주적인 사회가 이런 사회인가 싶다.


질의응답은 거절합니다, ⓒJTBC 앵커브리핑


 우리 한국은 오랫동안 질문을 하지 않고, 질문을 받아주지 않는 모습을 지켜왔다.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있었고, 남성이 군대에서 겪은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무조건 따르는 상하복명의 규율은 어느 조직에서나 무조건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정치, 직장, 학교에서도 이런 일방통행이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질문을 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너 혼자 따지고 난리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이라는 말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는 사람을 막았고, 모난 돌로 만들어 그 사람을 고립시켰다.


 한국 사회에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찾을 수 있다. 하도 질문을 하지 않으니 질문을 받지 않았고, 그냥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썩은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겨우 '왜 그래야 했는가?'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수직적 리더십이 아니라 수평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질문을 통해서 더 나은 방안을 찾는 모습이 이제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질문하는 일을 바보 같은 일이라고 여겼지만, 이제야 겨우 질문하지 않는 일이 더 바보 같은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라, ⓒflickr


 비록 그런 분위기가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서로 질문하고, 싸울 듯이 토론하는 수평적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선생님 한 명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어서 외우는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결과 지상주의는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을 만들었다. 그 학생들이 나중에 선생님이 되었을 때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우리는 아직도 질문을 낯설어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채 그냥 받아들인다. 자기 발이 밟히면 뒤늦게 '왜 그랬어!?'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그냥 어쩔 수 없다면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통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해결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벌어진 밀입국 사건이 정말 대 테러 방지법이 없었기 때문인지. 전문 CEO가 아닌 낙하산 인사를 위주로 돌아간 시스템 탓은 아닌지.


 우리가 질문하지 않으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질문을 받지도 않는 책임자들은 언제나 책임을 떠넘긴다. 우리는 그들을 붙잡고 질문해야 한다. 왜 그랬는지, 더 나은 대처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교육 분야에서도 질문은 필수다. 일발 통행 수업은 절대 더 나은 인재를 길러낼 수가 없으니까.


 질문하자. 가까이 있는 사람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안이 없더라도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보자. 질문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열심히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며 부정 비리를 감추는 정치인에게 우리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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