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 일하는 건 언제나 고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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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해서 살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내가 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지 못해


 '일'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할까? 단순히 내가 지급하는 노동의 대가로 경제적 이윤을 얻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냥 우리의 인생을 사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일을 해야 살 수 있었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살기를 포기한 것과 같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을 이룬 사람들은 일을 조금 다르게 말한다. 그들에게 일은 꿈을 이루는 과정이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이렇게 대단히 '일'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고통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일에 어떤 가치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출근길이 너무나 무겁고, 사무실에서는 일이 끝나는 시간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고문에 가깝다.


 '일'이 가지는 가치는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일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 일은 고통스러운 시간밖에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일을 고통으로 느낀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지 못했고, 성장의 기회가 없으며, 갑질을 감당해야 하는 을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을의 애환을 달려주는 치킨, ⓒ노지


 얼마 전에 한국인 10명 중 4명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조사 결과[각주:1]를 읽어볼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사람 중 20대가 상당히 많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지나친 경쟁과 정부 불신과 부패가 주된 이유인 것 같았다.


 지금 글을 쓰는 나도 20대이기 때문에 그 이유에 상당히 많은 공감이 간다. 솔직히 나도 한국에서 또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태어나더라도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 사람 대우를 똑바로 받으면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정부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고 싶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나라가 되기에 너무 부족하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국회와 소통을 통해서 견해차를 좁히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절대군주처럼 시민과 국회를 향해 윽박지르거나 서명운동에 참석하는 '괴짜'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어찌 정상이라 말하겠는가.


 한국 정치는 너무 오랫동안 부패와 비리가 가득한 산을 향해 있었고, 그런 모습을 몇십 년 동안 지켜본 시민들은 대다수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일부는 포기해버렸고, 일부는 떨어지는 적은 돈이라도 잡고자 그들을 지지하고, 아주 극소수는 여전히 목소리를 내더라도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다.


밖으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 ⓒ오마이뉴스


 그래서 한국은 헬조선으로 불린다. 이것은 역사 교과서가 잘못되어서도, 패배주의에 젖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사는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고통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를 수 없고, 깊숙이 베인 상처는 치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어떤 대기업의 회장은 빈번한 갑질 속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군대 같은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여전히 폭력이 이루어지고, 배움의 장이라는 학교에서도 서로의 위치에 따라서 폭력과 비인간적인 일이 빈번하다. 공부도, 일도, 모두 빌어먹을 고통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게다가, 한국에서 일은 언제나 보수를 굉장히 많이 신경 쓴다. 보수에 치중하는 것은 전체적인 사회 생산성이 줄어드는 일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를 예로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수도권 4년제 대학 나왔으니까, 대기업에 취직해야지.' 같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일의 가치를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받는 일이 어렵다. 독일 같은 선진국을 비롯한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사례는 언제나 '특이한 사례'로 보도될 정도로 드물다.


 기업 윤리의 차이, 정치적 환경의 차이라고 말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높은 연봉을 받고, 외적으로 소개하기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직종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인다. (자연스레 경쟁도 치열하다.)



 왜 한국에서 언제나 일은 고통인가. 이 글을 시작한 제목에서 결론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일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에 고통이다. 한국에서 일은 보수와 만족도를 함께 생각하지 못하기에 고통이다. 한국에서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 '타인의 일'이기에 고통이다.


 그냥 일 자체가 고통이다. 한국 사회에서 꿈을 꾸어라, 꿈을 좇아 일을 해라, 네가 좋아하는 일해라 등 언제나 희망찬 말은 넘치지만, 그렇게 희망찬 말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햇빛을 받아 화사하게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금수저, 아니면, 정말 대단한 용기를 가진 모험가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처럼, 우리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면 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만족한다.'는 시스템 자체가 부정당하기 십상이다. "왜 그래?"라며 묻는 타인의 말은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한국은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서 살기도 어렵고, 단순하게 살기도 좀처럼 쉽지 않다.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일을 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은 언제나 일은 고통이다.


 당신은 이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날 용기를 갖춘 모험가가 될 수 있겠는가? 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서 나만의 생업을 만들고, 단순하게 살아가면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우리의 눈앞에는 이런 질문이 놓여있다. 당신은 과연 "YES."이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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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인 40% "다시 이 땅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 http://goo.gl/aUIoIq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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