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무엇을 맡기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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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으로 무엇이라도 보관해드립니다.


 가끔 내가 소중히 간직하는 물건에 혹시 마음이 깃드는 일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언제나 뒤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책장이 실은 마음이 있어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가 자주 신경 쓰지 못해서 먼지를 뒤짚어 쓴 애니메이션 미소녀 피규어가 약간은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서 있는 모습을….


 바보 같은 상상이지만, 종종 내가 보는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물건에 마음이 있어 주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일을 현실에서도 상상해보게 된다. 누가 보면 '역시 미친 오타쿠였어.' 하는 눈초리로 바라볼지도 모르지만, 뜻밖에 이런 상상을 해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하기야, 내가 바깥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책이나 피규어에 '다녀올게.' '다녀왔어.' 같은 인사를 건네지도 않은 채, 그냥 곁에 놓아둘 뿐이니까. 아,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머쓱한 기분이 든다.


하루 100엔 보관가게, ⓒ노지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하루 100엔 보관가게>이라는 소설이 그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보관해주는 '기리시마 도오루'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네 번째 이야기 '서류에 담긴 슬픔을 접수합니다.' 이외에는 모두 우리가 보통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도오루 군의 집에 간판 포렴이었고, 두 번째는 자전거 주인아저씨의 자전거였다.


 그렇게 신선한 시점으로 보는 이야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라 소설을 읽기가 정말 편했다. 특히 자전거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내가 자전거를 타는 탓에 꽤 시원한 기분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을 조금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수도 없이 어럽쇼? 하고 놀랄 일이 생기겠지만, 내 경험이 부족한 탓이지 이 세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뭐든지 받아들이고 매일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달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렸다.

쓰요시는 운전 솜씨가 뛰어났다. 나는 쓰요시와 함께 도로변을 쌩쌩 달렸다. 늘 동경만 했던 달린다는 일. 그게 이루어졌다. 아스팔트가 기분 좋다. 돌아가는 바퀴가 기분 좋다.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물색이다. 왠지 그런 느낌이다. 나도 물색이다. 나와 바람은 하나가 된다. 달리는 건 짱이야. 이건 상상이상이다. 아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빛나고 있다. 지금까지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고 있다.

영혼이 반짝반짝한다!

쓰요시가 느끼는 기쁨도 나처럼 대단하다. 핸들을 꼭 잡은 손바닥 너머로 저릿저릿 느껴졌다.

쓰요시는 나를 좋아한다 나도 쓰요시를 좋아한다. 평생 둘이서 살아가야지.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서 맹세했다. (p70)


 글은 신 나는 글이었는데, 왠지 이 글을 읽는 동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전거에 마음이 있다면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까? 언제나 즐겁게 달리고 싶어하는 자전거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채, 우울할 때마다 그냥 난폭하게 운전을 했던 자전거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마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하루 100엔 가게>를 읽으면서 텅 빈 마음에 무언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뒷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책이 주는 온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루 100엔 가게>가 이런 온기를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이 가진 사람이 아닌 사물의 시점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 않고, 지나치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주인공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마치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은 소설이지만, 솔직히 이 이상 더 어떻게 <하루 100엔 가게>를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은 날에 약간의 갈등을 겪은 이후라 마음이 차가웠는데, 책 덕분에 그 차가웠던 마음이 따뜻한 감정으로 채워진 기분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책 속의 풍경이 떠오른다. 빛 바란 풍경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과 손님의 소중한 물건과 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 일상에 지쳐서 차가워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100엔 가게>는 그런 소설이었으니까.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아침의 상쾌함보다 깊은 한숨을 먼지 내쉬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하루 100엔으로 자신의 가슴에서 꺼내지 못한 마음을 하루 100엔 보관가게에 맡겨 홀가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루 100엔 가게>는 마법 같은 소설이었다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이고 싶다.


보관가게를 방문하는 사람은 크든 작은 어떤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요. 그 문제를 보류하려고 오는 사람들이니 호기심을 봉인한 주인의 방식은 정답이며, 그야말로 성의 넘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손님 중에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수다를 떨고 싶어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참을성 있게 들어줍니다.

말하는 도중에 마음이 변해서 그냥 갖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요금이 발생하지 않으니 시간 낭비인데, 주인은 늘 똑같이 차분한 얼굴로 "그럼 조심히 가세요" 하고 배웅합니다.

거북이나 고양이처럼 살아 있는 생명을 맡을 경우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두세 차례 질문합니다. 손으로 만져서 차가운 것은 냉장 보관이 필요한지 확안하고요.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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