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만족도 평가에 왜 외모 평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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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도 평가에 외모 평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인가요?


 얼마 전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피자집에서 오랜만에 피자를 시켜 먹었다. 피자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피자를 안 먹은 지 상당히 오래됐었는데, 어머니께서 토요일에 갑작스럽게 '오늘따라 피자가 먹고 싶다. 피자 시켜 먹을까?'는 말씀을 하셔서 정말 오랜만에 피자를 먹게 되었다.


 피자 주문을 하고, 약 32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맛있는 피자가 도착했다. 피자를 가지고 온 배달원은 '시간 나시면 이거 고객 만족도 평가해주세요. 파스타 무료 시식권도 드립니다.'라면서 피자집의 만족도 평가를 권해주었다. 그날 저녁에 딱히 일이 없었기에 나는 바로 평가를 했다.


 늘 주문하던 피자 가게였기 때문에 딱히 불편한 점과 불만이 없어 모든 항목을 좋은 쪽으로 했는데, 만족도 평가를 진행하다 순간 눈을 의심하게 하는 항목을 보았다. 바로 음식의 맛이나 서비스에 관련된 항목이 아니라 '배달원의 용모'에 만족도를 조사하는 항목이 있었다.


용모 평가가 왜?, ⓒ노지


 솔직히 나는 왜 저런 항목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배달원이 자사의 유니폼을 입지 않고, 이상한 복장으로 오지 않는 한, 큰 문제로 지적되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복장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용모는 그 사람의 옷차림과 생김새가 되는데, 여기에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괜히 내가 나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용모 평가'를 '외모 평가'로 문득 생각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에서 이런 용모 평가를 변명으로 외모 차별을 하는 일이 꽤 비일비재하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항목이지 않을까? (*용모 : 사람의 얼굴과 신체의 모습 및 차림새 - 다음 국어사전)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피자의 맛'이다. 얼마나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피자를 만들고, 그 피자를 식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수 있는가. 그게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라고 생각한다. 배달원의 용모가 단정하다고 해서 맛도 없는 식은 피자가 맛있어지는 건 아니니까.


피자는 맛이 최우선이다, ⓒ노지


 한국에서 외모로 어떤 평가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솔직히 한두 군데가 아니다. 평범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도 외모를 평가한다는 말이 한때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 구직자 10명 중 4명은 외모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아마 글을 읽는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한국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고, 따라 하고 싶어하는 영미권 문화에서는 이력서 같은 서류에 사진 부착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편견과 차별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 속에서 경쟁한다고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능력 있는 인재를 선별하지 못하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외모가 뛰어나면 분명히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외모가 뛰어나지 않다고 해서 혹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마이너스 평가를 받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비정상회담


 한국이 다양한 기회가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차별과 편견을 만드는 학력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도 말은 쉽게 하지만 사실 이런 편견을 극복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갖가지 요소로 차별하는 일을 어른으로부터 배웠고, 우리는 그 차별 요소를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요인으로 이미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외모 차별, 학력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게 현실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라는 책에는 한국 사회의 이런 문제점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데,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 있던 외모 차별에 관한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작은 회사에서는 더 심각했다. 그곳에서는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뽑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통했다. 짐작하건대 마초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주식 트레이더 아닌가. 물론 여성 지원자들의 이력서도 들어왔다. 남자들은 모여서 이력서에 붙은 사진을 보며 외모 평가나 할 뿐이었다. "패스, 패스, 패스…… 오, 예스!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반드시' 면접 봐야겠는데." 하지만 면접은 없었다. 어차피 남자만 뽑을 요량이었기 때문에.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하는 관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 이는 단지 여성 지원자만 환영할 일이 아니다. 외모에 고민이 많은 남성도 있으니 사실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남자 친구가 있습니까?"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십니까?"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도 금지되어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방법은 정부에서 감시단을 구성해 지원자로 가장한 사람들이 실제로 면접을 보며 어떤 기업들이 구시대적 사고 방식에 젖어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반성차별주의 법규가 도입됐을 때처럼, 한국의 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은 처음에는 죽는 소리를 하겠지만 결국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세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합리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래야 맞다. (p204_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카페와 제과점 등 다양한 곳에서 우리는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킬이 아니라 용모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기를 요구한다. 외모 자체가 스펙이 되는 한국에서 성형 열풍이 남녀 모두에게 부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미 만연하는 이런 차별을 바로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이 먼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관행으로 자리 잡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점차 지금의 외모 지상주의에서 조금씩 탈피해서 고객 만족도 평가에 배달원의 용모 평가가 들어가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외모 스펙을 위해서 위험한 성형 수술에 손을 대는 사람이 적어지고, 외모 차별이 없어져 얼굴이 아니라 능력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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