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는 한 내가 결혼할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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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두고 엄마와 나눈 이야기, "엄마, 내가 미치지 않는 한 결혼할 일은 없을 거야."


 기온이 내려가면서 본격적으로 가을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초록 물결이 가득했던 세상은 점점 다양한 색의 옷을 입기 시작했고,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구멍이 송송 뚫린 낙엽은 마치 내 마음을 담은 것처럼 한없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은 공백의 계절인 것 같다.


 사람들이 가을에 붙인 별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연애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요즘 젊은 세대는 썸 타는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사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축제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결혼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 별명도 많다.


 오늘은 그 많은 별명 중에서 '결혼의 계절'이라는 별명을 두고 짧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주에 《개그콘서트》 '렛잇비'에서도 가을과 결혼을 빗대어 이야기했었는데, 결혼식 청첩장을 '겉만 예쁘게 꾸민 고지서'라고 말하면서 웃픈 공감을 샀었다. 아마 결혼식에 초청받은 사람은 큰 공감을 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나도 어머니 지인의 자제 분께서 결혼식을 하셔서 나도 함께 참여했었다. 주말 웨딩홀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방문했었는데, 몇 개의 커플이나 맺어지면서 결혼식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혼식에서 당연히 어느 정도의 부조금을 내고,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20대 중반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아주 낯설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내게 있어 '결혼'과 '연애'와 '사랑' 같은 단어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감정을 알 수 있고, 그런 감정 속에서 행복과 슬픔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이고, 연애는 무엇이고, 결혼은 무엇일까?


참석했던 결혼식 풍경, ⓒ노지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몇 가지가 없다. 어떤 소중한 연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그런 수식어를 사용해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책'과 '애니메이션'이다. 그 두 개가 있었기에 나는 작은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건 그런 감정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소중하다'는 감정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아니라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어제 소개한 책 《연탄길》은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소박한 사랑, 그리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말해주는 정말 소중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픔에 공감하고, 예쁜 마음에 눈물 흘리고, 작은 사랑에 감동하면서 '이게 사랑이구나' 하고 머리와 가슴으로 느낀다. 책은 정말 둘도 없는 내 인생이다.


 그리고 일본어 원서 소설로 읽은 《화이트 앨범2》 같은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사랑이라는 게 어떤 감정인 것인지 배웠다. 사랑이라는 게 그저 웃을 수만 없고, 큰 아픔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 건지도 배울 수 있었다. 누구는 코웃음 칠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사랑이라는 마음을 배웠다.


 그럼에도 내게 있어 '사랑', '연애', '결혼'이라는 단어는 정말 낯설다. 얼마 전에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 : 이렇게 부조를 많이 하는데, 엄마가 부조를 받는 경우가 되면 얼마나 들어오겠노? 한 명당 5만 원씩만 줘도 1,000명이면 5,000만 원이다.

나 : 천 명이나 오겠나?

엄마 : 오지는 못하더라도 돈을 붙여주기야 하겠지. 우리 아들은 언제 결혼할려나?

나 : 엄마, 그건 포기해라. 평생을 가도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내가 미쳤다고 어떤 여자에게 눈이 뒤집혀서 결혼하겠다고 하겠나? 30살이 되더라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차라리 그런 확률을 기대하는 것보다 로또 복권에 3회 연속 1등 당첨되는 게 더 높을 거다.


 우스갯소리도 아니고, 결혼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 소리도 아니다. 그냥 내 개인적인 마음을, 정말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한 이야기다. 20대 중반의 나이인 내가 30대에 이를 때쯤 결혼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어떤 이성과 할 수 있다는 것도 잘못된 전제다.



 그런 일은 지구가 멸망하는 일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다. 글쎄,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180도 달라진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상처를 혼자 치유하는 데에도 너무 힘들고, 여러모로 부족한 내게 그런 일은 정말 로또 1등에 3번 연속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내 인생을 보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 앞에서 나와 마주했을 때, 나와 이야기를 했을 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아픔을 알고 있기에 난 섣부른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사랑해줄 이성도 없겠지만.)


 나는 평생 지금처럼 혼자서 길을 만들어가는,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그 길을 가면서 스쳐 가는 인연으로 사람을 만나고, 무수히 많은 책을 읽고, 낙서 같은 글을 쓰면서 '오늘도 하늘은 파랗구나.' 하며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게 내가 지금을 살 수 있는,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사는 방법이니까.


 어머니가 말한 결혼식과 결혼식 부조. 안타깝지만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남몰래 사랑을 키우거나 남몰래 호기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나는 언제나 내가 서 있을 자리에 서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는 일만을 할 것이다. 이게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침 해는 밝게 뜨면서 새로운 하루를 알린다. 그러나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사는 즐거움을 잊었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책을 읽을 때, 애니메이션을 볼 때,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작은 이야기를 할 때뿐이다. 영원하지 않을 시간이지만, 이 고독한 여정은 영원할 거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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