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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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서 읽는 이유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뭔가 너무 부질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거짓 모든 사람이 '욕심'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자신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투고,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하여 "네가 잘못했지? 그렇다고 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너무 허하다.' '모든 게 텅 빈 것 같다.' 같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마음을 느낀다. 오래전에 한 친구와, 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자신도 그러니까.


 '空'은 하늘을 뜻하면서도 비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한자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텅 빈 것 같지? 25년 동안 살면서 채워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지?'라는 고민에 잠겨 긴 시간 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놓쳐서 내가 이렇게 텅 비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온종일 침대에서 하면 되는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일을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상상도 못 해봤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텅 빈 가을 하늘 속에서 홀로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 텅 빈 마음을 채우고자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윤동주 시가 언급된 부분을 읽게 되었고, 나는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윤동주의 시를 책으로 읽어보고 싶어 그의 시집을 구매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노지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비싸지 않았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 인터넷 서점에서는 좀 더 가격이 내려가 다른 책을 구매하면서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뭔가 마음을 움직이는 제목과 배경 그림이 다른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내가 윤동주의 시를 처음으로 읽고, 처음으로 알게 되고, 처음으로 배운 건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시를 시로 받아들이기보다 시를 철저히 분해 분석 하면서 시가 쓰인 시대적 배경과 함께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시험 문제를 고민하는 식이었다.


 그 당시에 국어 교과서, 문학 교과서에서 읽은 모든 작품은 '문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과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시를 시로 읽지 못했고,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했고, 수필을 수필로 읽지 못했다. 오직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요약'을 하면서 '정리'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제약이 없어졌다. 그런 분석을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다. 시를 시로 읽을 수 있고, 소설을 소설로 읽을 수 있고, 수필을 수필로 읽을 수 있다. 20대가 되어야 비로소 나는 문학을 문학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2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윤동주의 시를 시로 그냥 읽었다. 그 허했던 마음이, 그 텅 비었던 마음이 가득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시를 조금씩 읽으면서 윤동주의 마음을 생각했고, 그 감정이 내 감정이 되어 조금이나마 가을 하늘에 솜털 같은 구름을 그리게 해주었다.



 무작정 그냥 '윤동주의 시가 읽고 싶다'는 마음에 구매해서 읽게 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릴 적 학교에서 탔던 문학상이 떠올랐고, 사진과 함께 작은 글을 붙이고 있는 지금을 돌아보며 '역시 나는 이런 일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나마 채워졌다.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외롭고, 허하고, 텅 빈 것 같으면 그 마음을 채워줄 사람을 만나라고.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다. 《화이트 앨범2》의 주인공 하루키처럼 나에게는 누구를 좋아할 자격도,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주변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혼자서 책을 읽는다. 무한의 서재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무한한 세계를 돌아다니고, 무한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비록 볼품없는 글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오직 내가 지금을 살아가는 이유이기에.


 오늘도 나는 윤동주의 시집 속의 시를 읽는다. 그리고 아침에 이 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 이 시를 읽으며 잠드는 나를 본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테루의 소박한 이야기》에 쓰는 작은 에세이는 언제가 누군가에게 이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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