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이 보여준 부모의 잘못된 사랑

반응형

드라마 상속자들이 보여준 부모의 잘못된 사랑과 욕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생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조연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들에게 끌려가기만 하는 삶을 누가 살고 싶어할까. 비록 직접 잘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는 그런 꿈이 잠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도 '내 삶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가슴 속에 있는 그 꿈을 외면한다. 아니, 외면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그 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에 항상 부모님께서 사사건건 끼어들어서 두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알지도 못한 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영영 그런 꿈을 잊어버린다. 너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절망 속에 사람을 빠뜨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모의 잘못된 사랑과 욕심 때문이다. 대게 많은 부모가 '내 아이는 잘 되었으면 하니까.' '내 아이는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내 아이는 내가 바라는 일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까' 등 다양한 생각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꿈과 욕심을 맡긴다. 아이의 의견은 조금도 들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부모 자신의 말만 들으면 인생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아이는 절대적으로 부모 자신을 믿고 따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도 부모의 그런 잘못된 사랑과 욕심이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주제 자체는 이런 교육적인 이야기와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교육'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내가 보기에 여러 장면이 상당히 눈에 익었다. 지난번에 학교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드라마 '학교 2013'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도 보고 배울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KBS 드라마 상속자들


 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수능을 치진 않은 이효신이 자신의 아버지께 훈계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수험생이 수능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저 일방적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요하는 부모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과감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효신이라는 고3에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고통은 감히 쉽게 말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탄이 이효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했던 '도대체 어떤 지옥에 살고 있는 거야?'는 그 질문이 얼마나 잘 표현해주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일방적으로 아이의 의견을 뭉개버린 채 자신의 의견만 피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정말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아빠 어디가' 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건 그런 잘못된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참다운 부모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성인이 된 사람들도, 지금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도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아이를 이해해주는' 부모의 사랑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질 테니까.


 학생들이 겪는 스트레스 중 상당수가 '가정불화'로 인한 스트레스이다. 이 스트레스는 '학업 스트레스'로도 이어지는데, 그런 고통 속에서 아이가 부모에게 거역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건 다른 폭력적이거나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친구를 괴롭히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장난이었다' '그냥 이유 없이 괴롭혔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져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부모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부모 혼자 모르고 있다.


예수의 언설에는 예수다운 가르침이 있다. '진짜 자비'가 있다. 사랑의 지극함, 누구도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자비로움이다. 나는 내 수준의 자비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예수 같은 성자들은 능히 지극히 자비로 상대를 감화시킬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건 그 감화력이다. 하지만 방법은 다르다. 방법은 적용되는 것이고, 적용은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패션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강퍅함이 도를 넘어서, 자비를 베풀면 기어오른다. 후려치는 게 오히려 자비일 수 있는 시대다.

가령 요즘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내용이나 방법이나 실질이 옛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나친 사랑'이라고 해야 맞는, 사실은 사랑이 아닌 '사랑'을 자식에게 퍼붓고 있다. 이런 시대에 왼뺨을 맞고 오른뺨을 내미는 건 '지나친 사랑'이 된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내놓아라"는 사탕처럼 달콤한 말이다. 그래서 이를 썩데 할 수도 있다.

대상에 따라 다루는 방법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소는 노래로 홀려서 부리고, 말은 채찍을 쳐서 달리게 한다. 소나 말에게 모두 당근을 줘서 부리면 안 된다. 내 따귀를 갈긴 자에겐 채찍을 때려서 못된 버릇을 고치게 해야 한다. 예수의 시대엔 맞은 사람이 반대편 뺨을 내밀면 때린 자는 부끄러워서 돌아서거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부끄러워하고 진정으로 속죄할 줄 모르는 비정하고 무지한 시대가 안타깝다. (이외수, 마음에서 마음으로, p85)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감히 내 말을 거부해?!"라고 언성을 높이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 자격 실격이다. 아이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줬으니, 너는 내게 무엇을 해줘야 한다'는 조건식으로 사랑하고, 가르침을 주고, 배움을 주는 건 부모가 아니다. 어찌 부모의 사랑이 그런 조건의 계약이 될 수 있겠는가. 이건 조금 직설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요즘 적지 않은 부모가 이런 식의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신의 욕심과 꿈을 맡기면서 "너는 내 자식이니까 이래야 해!"이라며 아이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이효신과 그의 가족이 보여준 건 이런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다. 부모는 모두 자식이 행복해지길 바라지만, 그 행복이 정말 자식을 위해 생각하는 행복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인생을 뺏을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건 천륜도, 사랑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다.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